교실붕괴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인권조례를 발전적 경과규정으로 해석해야…
오늘, 7월 8일 금요일자 경인일보 칼럼입니다.
한희송(“가슴으로 쓴 어느 선생의 편지”의 저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몇 개의 기억들을 공유한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은 대부분 군에 다시 입대하는 꿈을 꾸어야 한다.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자신은 이미 제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내용의 꿈은 정상적인 군생활을 한 사람들을 오랫동안 괴롭힌다.
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는 일이 있다. 입시와 관련된 기억들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입시지옥이라 불리는 통과의례를 어떤 수단으로든 겪어야 성인이 될 수 있다. 대학교 졸업장에 대한 전폭적 신뢰는 종교적 신앙심보다 더욱 확고하게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또 한 가지, 우리나라에서 성장했다는 확실한 증거로서 역할을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실붕괴에 관한 경험이다. 교실 안에는 가르치는 교사와 배우는 학생이라는 두 가지 주체가 있다. 교사는 교육을 공급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지위와 인격형성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이끌어야 하는 ‘스승’으로서의 지위를 동시에 가진다.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사회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객관적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 수요자로서의 지위와 함께 친구와 스승을 통해 사회성을 고양하고 내면적 인격형성과정을 겪는 ‘제자’로서의 지위를 동시에 가진다. 교육이란 이 두 주체가 부단한 교류를 통해 각자에게 주어진 두 가지 지위에 관한 비율을 매 순간 조정해 나가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이 두 주체의 존재는 교실붕괴의 모습을 두 가지로 나타나게 한다. 하나는 교사에게 ‘스승’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교실붕괴현상이다. 이는 학생과 그의 법률대리인인 학부모에 의해 주로 시도된다. 스승으로서의 지위는 추상적인 인격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 경우의 교실붕괴는 교사들에게 내면적 상처를 준다.
또 다른 의미의 교실붕괴는 교사에 의해 일어난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을 인격형성과정에 있는 ‘제자’로 인식하는 것과 체벌을 가할 수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종종 상관관계를 가진다. 특히 그런 인식이 강한 사람들에게 ‘교사에 의한 교실붕괴’라는 말은 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조어(造語)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교사에 의한 체벌의 대상자로서의 경험은 지우기 힘든 기억으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 역시 자라나는 학생들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를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녀야 할 운명적 요소로 해석한다면 이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비관적 잣대로 재는 일이 된다. 경기도 교육청의 교권보호헌장과 학생인권조례를 위한 수고는 이 두 가지 의미의 교실붕괴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고뇌에 기반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즉, ‘교육’이란 상품의 공급자인 생활인으로서의 교사와 그 수요자인 학습자로서의 학생 사이에서가 아니라, ‘스승’과 ‘제자’ 관계에서 교실붕괴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승’과 ‘제자’는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인격’이란 추상적 개념을 중심으로 두 교육 주체간에 맺는 주관적 관계에서 파생되는 말이다. 따라서 객관적, 물리적인 제재를 최종수단으로 하는 조례를 통해 교실붕괴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존재한다.
결국 교권보호헌장에 의해 교권이 지켜지는 일과 학생인권조례에 의해 학생의 인권이 지켜지는 일은 그것 자체가 이미 ‘스승’과 ‘제자’의 개념이 최소화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헌장과 조례는 본질적으로 경과규정적 성격을 가진다.
이것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논쟁에 있어 체벌을 인용(認容)하기 위해 조례폐기를 주장하는 일이 발전적 기능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질적으로 교권과 학생인권이 아름답게 보호됨으로써 선언과 조례가 필요 없어지는 방향으로 가면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해야 할 시점임을 적시(摘示)해 보고자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