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경인일보 '금요산책'이라는 칼럼입니다.
읽어 보시고 여러분도 같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서남표 총장과 김상곤 교육감의 교육개혁
대학교 2학년 때의 일로 기억이 된다. 국제경제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교수님은 학기 내내 교과서의 한 부분도 빼 놓지 않고 강의한 뒤 그 모든 내용을 시험문제로 출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 번의 시험에서 출제되는 문제는 대략 10여 개 정도였는데 그걸 다 푼다는 것은 책 한 권을 완전히 정리해서 시험지에 써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학생들은 누구나 그 문제들 중에서 자신이 있는 한 두 개만을 골라서 풀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연구실에 불려간 나는 10문제 중 3문제만 답을 썼으니 낙제라는 소리를 들었다.교수님은 “그렇다면 다른 학생들은 왜 F가 아니냐?”는 나의 항변을 듣는 대신 노기 띤 질책을 쏟아 냈다. 그리고“다른 학생과 같은 대접을 받고 싶은가?”라는 힐책을 덧붙였다. 나는 그 날의 깨달음을 잊을 수 없다. 그 후로 새로 산 볼펜이 하루나 이틀 만에 다 달아 빠지도록, 하루에 두 시간이상 자는 것에 죄의식을 느껴지도록 설쳐댔다. 나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시간을 보냈다. 볼펜이 닿는 부분에 굳은 살이 박혔고 손에 마비가 종종 왔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서야 교수님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공부에도 연단이란 것이 있다. 이 세상의 최고대학들은 이러한 연단 과정을 준비해 놓고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 잔인한 고통을 견디어 낸 사람에게만 학문의 의미를 알게 한다. 서남표 KAIST 총장은 기자회견에서 “MIT에 다니는 동안 소방 호스를 입에 물리고 물을 쏟아 붓는 것처럼 공부할 양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방식의 연단을 기준으로 KAIST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KAIST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자살하는 사건이 터지자 사람들은 그의 성적위주의 개혁에 대해 휴머니즘이 증발된 시대가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결과의 원인으로 몰아 세우고 있다.
한국인들은 고교시절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그런데 이 ‘추억’들은 많은 부분 ‘시험’ 또는 ‘체벌’의 부정적 측면과 관련이 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교육개혁의 내용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그는 토론과 탐구중심의 수업을 확대하고 일제고사를 없애는 대신 과정 중심의 평가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또한 두발자유와 학생에 대한 체벌금지를 조례화 했다.
그러나 서남표 총장과는 정 반대 방향을 추구하는 그의 혁신교육을 위한 행보는 지난달 30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11년 수능시험 성적자료를 발표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소식에 의하면 경기도는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12위를 차지했다 한다. 이 결과를 놓고 언론들은 김상곤 교육감의 현실성을 무시한 정책이 가져다 준 당연한 결과라고 평가하는 모양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우리는 약간의 논리적 결함을 발견할 수 있다. 서남표 총장의 경쟁정책에 대해서 “경쟁기반의 교육제도 개혁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김상곤 교육감의 평준화정책에 대해서는 “평준화를 통한 혁신교육의 실패”라고 비판하면서 동시에 “현실성을 무시한 정책”이란 동일한 수식어를 이 둘 모두에게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교육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언급하는 서양의 일류 대학들의 경우 학생들은 ‘소방호스를 입에 물리고 물을 쏟아 붓는다’라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의 과제물을 소화해 내야만 한다. 동시에 ‘체벌’이나 ‘암기를 종용하는 시험’으로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교육은 구체적인 외면을 가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교육이 본래 모든 인간 시스템의 ‘인프라’라는 추상적 개념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남표식 혁신이나 김상곤식 혁신이 갖는 모습을 “학생 4명이 자살했다.” 또는 “경기도 학생들의 수능시험성적이 떨어졌다.”라는 사건으로 평가 하는 것은 개혁의 내용으로는 정 반대인 두 경우를 같은 내용을 지닌 것으로 취급하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일이다.
서남표 총장이나 김상곤 교육감의 교육개혁은 어쨌든 제도개혁이라는 형식적 한계를 넘지 못한다. 이들의 노력을 내면화 시켜서 진정한 교육의 본질로 다가가는 것은 국민 각자의 노력으로만 가능하다. 따라서 이들의 정책에 대해 ‘실패’나 ‘성공’이란 잣대를 대는 노력보다 스스로의 깨달음을 위해 사색하고 공부하는 노력이 더 커야만 우리 모두가 원하는 교육개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끝
독서하고 사색하여 스스로를 깨달음의 길 위에 서 있도록 하는 것...
그것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임을 꼭 깨닫고 마음을 모두어 공부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