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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편지

 

혁신교육정책 담당자들에게 드리는 글

지난 수요일 화성신문에 실린 칼럼을  씁니다.

10자릿수 이상의 곱셈이나 100자릿수 이상의 덧셈 또는 뺄셈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석가모니, 공자 같은 성현들이 바로 그들이지요 진법의 개념이 일반화되어있지 않았던 시절에 살았으므로 이 들 중 사칙연산을 쉽게 할 수 있었던 분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요즈음은 초등학생일지라도 덧셈, 뺄셈은 말할 것도 없고 곱셈까지도 할 줄 압니다. 이 성현들과 요즈음의 초등학생들 중에 누가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까요?
오늘날의 교육제도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교육 자체가 '형식적 주지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덧셈과 뺄셈을 할 줄 알고 또한 이를 묻는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는 사람이 그걸 모르는 사람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더 합리적인 인격을 지녔다고 사람들을 믿게 하지요.
그러나 현재의 교육정책을 옹호하는 분들에게는 매우 안타깝게도 역사는 이런 생각이 옳지 않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지구의 종말이 오는 그 순간까지 청동기 시대를 살았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지식이 21세기 한국의 초등학생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의견에 동의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쌓아감으로 인해 깨달음의 기회를 더 많이 만날 수 있고, 그렇게 만나는 깨달음의 기회를 통해 좀 더 깊고 넓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전제가 없다면 ‘교육’은 오히려 학습자들로부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역할을 떠 맡지요. 공교육이 비판 받는 본질적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려불화를 보면서도 감동할 수 없고, 고흐의 그림 앞에서 숙연해 질 수 없는 이유는 이 화가들이 얼마나 많은 '새로운 생각'을 했고 그 ‘새로운 생각’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뇌를 했는가를 기준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교육제도를 기준으로 삼으면 컴퓨터 프로그램과 1000년 전의 고려불화를 그린 화공의 그림대결에서 언제나 컴퓨터가 이길 것입니다. 그러나 남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대로 그린 컴퓨터의 그림이 고려불화를 그리기 위해 한 화공이 가졌을 집중력과, 고뇌와, 신앙심과, 그리고 가슴 속 가득찬 성취감을 능가하는 가치를 지녔을 리가 없지요.

요즈음 경기도는 ‘혁신교육’이라는 화두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혁신교육을 실행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들이 많은 예산을 들여서 시설과 제도를 바꾸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교육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세계역사와 지난 수 십년 간의 우리 스스로의 헛된 노력을 통해 이미 증명되지 않았는지요? 경기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혁신교육 정책 담당자들이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수 천년 동안이나 있어왔던 성현들의 말을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어 보기를 바래봅니다. 본질이 빠진 교육정책을 이용해서 국민들의 혈세로 자신들의 정치적 업적을 쌓으려는 욕구보다 교육과 지식의 본질적 개념을 추구하는 것만이 인생의 성공을 가져옴을 몸소 보여준 허다한 성현들의 일치된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역사가 기억하는 지도자가 되는 단 하나의 방법임을 잊지 말 것을 혁신교육 정책을 수행하는 모든 분들에게 긴 한숨으로 당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