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Δχ x Δp = h
Δχ는 위치의 불확정성을 나타내고 Δp는 운동량의 불확정성을 나타내며 h는 플랑크 상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위 식은 위치의 불확정성과 운동량의 불확정성의 곱은 플랑크상수와 같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실제 식은 좀 다르지만 이해를 위해 저렇게 적었습니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이해를 하자면 위치와 운동량을 측정하는데 우리 주위에 있는 질량이 큰 물체들은 측정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미시 세계로 들어가면 측정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뜻하지요』
아인슈타인....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중 하나입니다. Time지에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델로 뽑히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런 천재 중의 천재였던 아인슈타인은 양자론이 활개를 치기 시작하면서 왕따가 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를 한번 보기로 하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론에서 말하는 확률이나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고개가 끄덕여 지시나요? 전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을 때 ‘엥~?? 뭔 소리여??’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요. 그냥 싫어하면 싫어하는 것이고 불만이면 불만이지 강한 의문은 또 뭔 말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알다시피 물리학에 양자론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데 큰 몫을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양자론에서 말하는 애매함이라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니깐 아인슈타인이 양자론을 ‘틀렸다’ 또는 ‘엉터리다’라고 말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 애매함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한 것이지요.
양자론에서 말하는 확률이라는 것이 단지 어떠한 법칙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확률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리학자들이 잘 모르니깐 확률로 해석을 하려고 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전자의 위치 역시 아직 그 법칙을 발견하지 못해서 모르는 것일 뿐 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양자론을 최종적인 이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보어와 유명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서로가 극강의 사고실험을 통해 상대의 논리를 깨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지요.
이들의 논쟁을 보면 인간의 사고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들이 논쟁을 벌인 1930년 솔베이 물리학회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