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이란 시간은 제가 어렸을 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2000년이란 것 자체가 올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지요.
그런데 2000년이 넘어가고 그것도 10년이 더 가더니 2011년이란 세월이 오더군요...
그런데 그 세월도 그 6분의 1이나 되는 2개의 달이 휙 지나고 3월이 왔습니다.
경칩이 다 되니 이제 완연히 봄이란 것이 느껴집니다.
정말 화살처럼 빠른 것이 세월입니다.
이 빠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손을 허우적 거려서 무엇인가 잡아 내야 하는데...
먼저 시간의 흐름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무엇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은 물리적인 양의 개념일까요? 아니면 추상적인 크기의 개념일까요?
사람자체가 추상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만일 물리적 개념으로 존재한다면 살기 위해 그 어떤 짓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사를 드릴 필요도 없고, 우정도 필요없고, 효도라는 개념도 필요없을 것입니다.
추상적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물들을 보면 당장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
시간은 추상적이며 철학적이며 형이상학적으로 보아야만 그 개념이 설정됩니다.
만일, 시간의 흐름으로 사람의 정신적 성숙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동물적 삶의 물질적 영위를 의미할 뿐입니다. 아무리 노력해 보았자 금새 흘러가 버리는 시간 속에서 찰나를 견디어 보고자 하는 헛된 욕망을 꿈꿀 뿐인 것이지요.
물리적으로는 모든 인간에게 같은 시간의 크기가 주어집니다.그러니 물리적으로는 그 누구나 시간으로부터 공평한 대접을 받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지는 각자가 결정할 일입니다.
이때, 시간을 물리적으로만 보는 사람은 그 시간을 물질을 얻는데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금새 가버립니다. 그 어떤 존재의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그냥 흘러 가 버립니다.
오직 질적인 승부만이 시간을 이길 수 있습니다. 물리적이고 양적인 측면에서 영원히 흐르는 시간 앞에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부분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적습니다.
시간을 양적으로 아무리 많이 차지하려고 해 보았자 의미없는 몸부림입니다.
인간이 시간을 대함에 있어서 질적인 즉 정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자세만이 의미가 있게 됩니다. 정신적이고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으로 시간을 개념화하여 나의 생각 안에 집어 넣는 것만이 시간을 지배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나의 생각 안에 집어 넣는다"라는 표현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우주의 그 어느 한 부분도 지구를 벋어나서 가 볼 수는 없어도, 그 모든것들에 관한 생각은 자신이 가진 특성과 관련해서 한 없이 넓혀 나갈 수 있습니다. 뉴턴은 우주에 나가보지도 않고, 그 넓은 우주를 관장하는 '중력'이란 개념을 찾아 내었고 아인스타인은 원자를 쪼개 보지도 않고 E=mc^2 라는 원자 핵 내부의 힘을 알아 냈습니다.
모두가 '생각'으로 우주보다 크거나 원자핵보다 작은 부분까지도 정복해 낼 수 있었지요. 만일 뉴턴이 우주를 직접 물리적인 개념으로 가 보아야 알 수 있었다면 그건 이미 우리가 존경해야할 뉴턴이 아닐테지요...
제가 물리학을 좋아하니까, 물리학적인 예를 들었습니다만 이 세상 모든 분야에서 이런 사람들은 존재합니다. 그 분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그 편리성을 누리면서 생각의 크기는 다시 물리적인 개념으로 돌아선다면 이 천재들에게 빚만 지는 책임감없는 행동입니다. 이 분들의 생각 즉 아무도 하지 못한 새로운 생각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철학과 과학과 형이상학에 가까워 질 수 있는 것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왜 모두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고, 혁신교육의 내용이어야 한다고 올바른 천재들이 주장하는지 이해가 가야 합니다.
오늘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정신 바짝 차려서... 인생에 있어서의 꿈을 돈이 많은 '부자'나 멋진 '집 한 채'나 주체할 수 없는 '건강'으로 한정 시켜서 자신의 인생을 자신으로 부터 빼앗는 우매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책읽고 사색하는 여러분이 되어서, 스스로의 인생에 진정한 의미를 줄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ern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