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스팅스 전투에 들어가기에 앞서 몇가지 언급을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마가 멸망하면서 유럽에서 고대가 종말을 맞이하고 중세가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B.C. 753년 4월 21일 로물루스Romulus가 로마를 세웠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천년도 넘게 지속된 로마가 단 1년만에 또는 하루아침에 망했다고 하는 것은 쉽게 믿을 수 있는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로마의 마지막 황제가 로물루수 아우구스툴루스Romulus Augustulus 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 황제가 오도아케르Odoacer에 의해 살해 당했고 그로인해 로마가 멸망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 이후에도 로마는 더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유명무실해지고 와해된 것이지요.
오도아케르에 의해 로마가 멸망했다고 교과서에 나오는 것은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이후에 황제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로마가 멸망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로마의 마지막 황제가 죽은 이후 몇백년간 서유럽은 어느곳도 안정된 국가를 이루지 못한체 부족단위로 로마라는 선진문물을 행한 대대적인 이동만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갈리아Gallia라는 종족은 골Gol족이라고도 불리었는데(갈리아는 라틴어로 불리는 말입니다) 프랑스에 골이라는 지역에 정착했었다고 합니다. 이들 갈리아 또는 골족 위에 정착한 종족으로는 게르만Germanen 족이 있습니다. 영어이름에서도 벌써 우리가 현재 독일을 왜 Germany라고 부르는지 아시겠지요. 더 위로는 바이킹도 있지요.
이들 종족들은 로마문화를 받아들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적으로 국가를 형성하기 시작을 하였는데 사실 국가라고 말하기 보다는 왕국kingdom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을 것 입니다. 왜냐면 왕이 통치하는 것이니깐요. 그리고 이 왕들이 자신의 왕국을 통치하는 기본적인 방식이 바로 봉건제feudalism입니다. 왕이 기사들에게 봉토fief를 주고 충성의 서약을 맺게 됩니다. 일종의 계약관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도 그렇듯이 계약이라는 것은 꼭 지켜지지만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왕과 기사들 사이에 중개자 역할을 할 뭔가가 필요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교황Pope입니다. 교황이 이런 분쟁을 조절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로마 교황의 지지를 받는 다는 것은 로마교황이라는 것은 이미 사라진 로마제국으로부터 오는 정통성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교황의 지지를 받은 왕들은 정통성legitimacy을 세우고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황에게 왕이 파문 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충격인지가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보면 유럽에서 왕들이 왕국을 세울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첫번째가 바로 봉건제이고 두번째가 기독교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 두가지를 기반으로 세워지 첫번째 나라가 바로 프랑크 왕국 인 것입니다.
이야기가 잘못하면 프랑크 왕국이야기로 흐를수도 있지만 그건 나중에 언급하도록 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두가지 조건에 의해 유럽은 서서히 왕국들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영국은 노르만 공 윌리엄때가 되서야 위 조건을 성립하게 되지요. 윌리엄 이전에 알프레드Alfred 라는 걸출한 왕이 있었지만 알프레드 대왕 이후를 보면 알프레드 이후의 영국왕실의 가계가 프랑스의 카페왕조Capetian Dynasty나 독일의 작센왕조Sachsen Dynasty와 같은 왕실가문과 같은 수준이라고 보기에 어렵지요.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참회왕 에드워드는 아버지가 죽자 왕위에 올라야 하지만 데인계 출신인 크누트가 왕위에 오르고 자신은 노르만으로 망명을 떠나야 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왕위에 오르지만 알프레드 대왕의 가계인 앵글로-색슨Anglo-Saxons이 영국왕실의 정통을 승계했다고 보기에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왕국형성의 두가지 조건인 봉건제와 기독교가 정착하게 되는 노르만 가문을 영국왕실의 정통으로 보고 노르만 공 윌리엄이 영국을 점령하게 되는 1066년 해이스팅스 전투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해이스팅스 전투가 시작되는 1066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설픈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