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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편지

 

Learned Ableness

언젠가 Positive Psychology(긍정의 심리학)이란 분야를 만든  Pennsyvania 대학교 교수인 Martin Seligman란 분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Learned Helplessness(학습된 무기력)이란 개념을 말씀드렸었지요. 이 단어는 이제는 학문용어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이론에 대해 다시 말씀 드립니다. 동물은 '무기력'이 학습이 되면, 고통이 유발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 고통을 헤쳐나올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이 주어지더라도 그 상황을 헤쳐나오지 않고 그냥 그 고통을 감내해 버린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이 매우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 같이 소개되었지만 사실 깨달은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이 이미 있었음을 인간이 이성의 시대에 살게된 최초의 시간부터 알고 있었답니다. 이런 '학습된 무기력'을 가진 사람을 플라톤 식으로 표현한다면 '동굴밖에 나가보지 못한 사람들'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고대시대부터 이 '학습된 무기력'에 대해서 사람들은 알고 있었고, 또한 이 '학습된 무기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주지주의적 입장에서 보거나 이성과 합리적인 측면에서 아무리 보아도 이해가 안되는 이 상황이 알고보면 매우 일반적으로 인 사건이 될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범위와 정도가 다를 뿐, 인간은 누구나 '학습된 무기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합리성의 범위는 각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덧셈과 뺄셈을 할 때는 합리적이다가 나눗셈을 하면 감정이 앞서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들이 싸우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잘 설득하다가 정치이야기만 나오면 감정이 앞서버립니다.
저는 담배의 해악에 대해서 누구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알고 있고 남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데 스스로는 담배를 끊지 못하고 피우고 삽니다.

자기 자신의 이론과 이성을 근거로 한 합리성의 정도는 사람마다 방향과 크기가 매우 다릅니다. 그런데 이 합리성의 정도를 벗어나는 일들이 사실은 '학습된 무기력'의 범위가 됩니다. 저는 아직 '흡연'에 대해서 '학습된 무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학습된 무기력'은 왜 올까요? 그리고 그 '무기력'은 언제 학습될까요? 바로 자신이 사는 '사회'의 성격에 의해 정해지는 부분이 가장 큽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사회'가 정해준 '부기력'의 부분에 대해 나 스스로가 맏서 싸워서 어느 정도 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자기 스스로가 '학습된 무기력'의 상태에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이를 극복할 기회조차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스스로 '학습된 무기력'의 상태에 있음을 아는 것이 첫째의 도전이 될 것이고 그 이후에 '학습된 무기력'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두번째이자 마지막 도전이 될 것입니다. 결국 첫 단추는 '학습된 무기력'의 상태에 있음을 스스로 자각하는 일입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자각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깨달은 자가 많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각하는 일'은 이미 '학습된 무기력'에 그 자리를 내어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학습된 무기력'으로 부터 벗어나려면 그 상태를 '자각'해야 하는데 이 '자각'을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학습된 무기력'의 본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각하지 못함'과 '학습된 무기력'은 표리를 달리하는 하나의 윤회의 사슬입니다. 이때 윤회의 사슬을 끊는 일은 '학습된 무기력'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인데 이것은 '자각함'에서 부터 시작하므로 이 세상에서 '깨달음'을 얻는 일은 바로 '자각'하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혜초의 '돈오점수'는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돈오'는 깨달음이지요. 그 깨달음이 와야 그 다음에 '점수'를 통해 '학습된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없는 것은 '자각'하지 못함이요. 이 자각하지 못함은 자기 자신이 '자각하지 못하므로 자각하려는 의지조차 가지지 못해서 결국 학습된 무기력의 윤회를 뚫고 나오지 못함을 말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바로 이 의미입니다. "네가 자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 한다는것을 깨달으라"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결국 Seligman의 "Learned Helplessness"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플라톤의 '철인정치' 혜초의 '돈오점수'를 현재적 언어로서 다시 해석한 것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 즈음에서 새로운 단어를 하나 만들음으로서 장엄한 인류역사에 동서고금의 모든 깨달은 분들이 설파한 모든 이야기에 꼬리표를 하나 더 붙이고자 합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모르는 사람들에게 멋진 단어를 하나 소개하는 것이 되며 부정적으로 보면 아무 쓰잘데기 없는 헛수고를 하나 더 하여 괜히 사람들의 마음만 어지럽히는 꼴이 될 것입니다.

Learned Ableness (학습된 능력)

'자각할 수 없음'과 '학습된 무기력'의 윤회를 박차고 이미 먼저 이 세상을 살았던 셀 수도 없는 많은 천재들이 뛰쳐 나왔음을 봅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만이 아니라 정말 셀 수도 없는 별처럼 저 하늘에 떠서 이 세상을 유지시켜주고 있는 성현들.... 천재들....

그 분들을 공부하면 할 수록 나 스스로는 동물로 태어나서 '자각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오직 '학습된 무기력' 속에 살아야 할 운명에 있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또한 이 위대한 성현들의 모범을 통해 나 자신이 이 윤회의 사슬을 끊고 자유를 가질 수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성현들의 모범을 통해 나는 무지의 윤회에서부터 떨쳐 나올 수 있는 learned abeness(학습된 능력)을 선물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작게는 영어발음 하나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사람들은 '할 수 없다'라는 '학습된 무기력'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사회와 학교 가정 모두에서 아이들은 이것을 강요받습니다. 외워지지 않는 영어문법을 억지로 외우게 해서 스스로 '무기력함'을 깨닫게 하고.... 행여 이 어마어마한 문법을 모두 외웠다고 하더라도, 결국 영어가 안 되어서 스스로 '무기력함'을 깨닫게 만들고야 맙니다.

학교다닐 때 죽어라고 공부했었던 것이 사회나와서는 쓰일 곳이 없다는 것에 무기력함을 느낌니다. 그 '학습된 무기력'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돈'이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유일한 수단으로 '학습'되어져 결국 살고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인생 최종의 순간에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는 절대적인 '학습된 무기력'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 기가막힌 현실 속에서... 잠시만 눈을 들어 주변을 보면.... 정약용선쟁이 웃고있고... 혜초가 '정혜쌍수, 돈오점수'를 말해주고 있고,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든 손을 잠시 멈추고 나를 위해 기꺼이 그 잔을 마실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 분들이 그 많은 분들이 그 오랜 세월을 거쳐.... '깨닫지 못함'과 '학습된 무기력'의 윤회에서 나올 수 없었던  나에게 자기들 스스로가 학습한 'learned ableness'를 선보임으로 '나 자신을 알게'해 줍니다.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릴 뿐입니다.
몇 백년에서 몇 천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오늘 이 순간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는 인생을 깨달은 이 천재들의 손짓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고 오늘도, 오직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버는 행위에 집중하고 결국에는 그래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학습된 무기력'의 세상으로만 빠져 들어가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는 이 천재들의 눈물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눈물들을 생각하면 기가막히고, 가슴이 메어져서... 오늘도 그 분들이 쓴 책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스마트인들이여...
오늘도 독서하고... 사색하여서... 아무것도 아닌 나를 위해 우주를 깨우친 위대한 분들이 긴 시간을 지나, 스스로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학습된 무기력' 속에서 결국 의미없는 삶으로  자신을 학대하지 말고,
이 위대한 성현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학습된 능력"을 가지고 자신을 '무지와 무기력'의 윤회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신을 만듦으로 해서 이 천재들에게 보답하시기 바랍니다...

책읽고 사색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ern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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