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버지가 넘어지셨습니다.
고관절이 완전히 부러지셨답니다. 안타깝고 답답하고, 그 아픔이 얼마나 클까를 생각하니 속이 탑니다. 그런 고통이 없이 사시길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랬는데 삶이란 어쩔 수 없이 그 크기만큼의 아픔을 가지는가 봅니다.
문득, 고통없는 세상을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곧, 그런 세상이 아님이 다행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냅니다.
고통이 없는 세상, 행복한 가정, 그리고 성공한 자신을 보고자 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꿈입니다.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결국 따지고 보면 그것 하나지요... 그런데 고통없는 세상이라는 말과 행복한 가정이라는 말, 그리고 성공한 자기자신이라는 말에 있는 '고통' '행복' '성공'이라는 단어들이 필요로 하는 조건이 무엇일까요?
정치인의 구호나 종교단체의 전도 그리고 교육자들의 미래비전이란 것은 모두 '고통없는 세상'을 향한 것입니다.
만일 어떤 정치인이 나를 따르면 '고통'이 더 많아진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선거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매울 적을 것입니다. 종교단체나 교육자, 부모님의 자식을 이끄는 목표 또한 고통을 없애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그래서 말해 봅니다. '고통없는 세상'이 무엇인가요? 이때의 '고통이 없는 상태'라는 말은 '행복'한 상태 = '성공'한 상태와 동의어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고통이 없는 상태가 행복을 느끼게 해주지 못한다면 그 상태를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테니까요.
결국 . 그러면 다시 생각해 봅니다.
'고통이 없는' 상태 즉 행복을 느끼는 상태란 어떤 상태임을 말말까요?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조하는 의미로는 '몸이 아프지 않고, 돈이 많으며,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정치인, 종교인, 교육자들이 사람들에게 약속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자기 당을 지지하면,' '자기 종교를 믿으면,' '자기한테 배우면,' 몸이 아프지 않게 되고, 돈을 잘 벌게 되며, 자기 맘대로 살 수 있게 된다.'는 상태입니다.
모든 정치인 늘 '남이 하는 정책'은 실패한 것으로 봅니다. 왜냐고요? 그 어느 때라도 사람들은 '아프고, 돈이 충분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공약은 '의료', '경제활성화' '자유' 세가지에 집중되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언제나 이것들은 반대파의 정의에 의해서 '실패한 정책'으로 낙인 찍힐 수 밖에 없습니다.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종교들은 '아픈 것을 낫게 했다,' '죽은자를 살렸다,' 에서 시작해서 '자기들의 종교를 택하고 나서 사업이 잘 되었다. 가정이 화목해졌다.'를 거쳐서 '진정한 자유를 찾았다.'로 이야기를 끌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대중들로 부터 외면을 당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인생은 '물질'이 아니라 '형이상학'임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행위'가 아니라 '의미'가 중요함을 되새깁니다.
인생은 영원히 '고통'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바라는만큼의 '행복'을 가질 수 없으며, '자유'라는 개념은 자신의 한계에서 그만 만족해야만 하는 절망스러움 때문에 생긴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이 없고 행복하며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는 인간은 오직 '형이상학'에서만 가능합니다. 이 세상의 물질에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왜냐고요? 그것이 바로 물질 자체의 속성이기 때문에 그러습니다. 어떤 물질이 육면체이면 그것은 육면체이지 동시에 '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면체이자 동시에 '구'이며 동시에 투명한 물질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미 그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물질적인 세상에서 고통이 없고, 행복하기만 하며,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인간은 오직 '인간말종'이외에는 없습니다. 즉 완전히 고통속에서 살며, 행복이란 절대로 느끼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도 없는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완전한 절망 속에 멋대로 되라... 라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고통이 있음으로 남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고, 행복하지 않음으로 자신 자신에게 깨달음을 향한 길을 보여줄 수 있고, 자유롭지 못함으로 인해 정신적 자유를 추구할 수있는 능력이 샐길 수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불행하며,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독서와 사유를 통해 고통과 불행 그리고 부자유로부터 해방시키는 노력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고통을 통해 인생의 불완전함을 깨닫고, 저렇게 고통스러운 상태에 놓인 아버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확인하여서, 답답하고 속상함을 통해 완전함으로 걸어 올라갈 수 있기를 나 자신에게 주문해 봅니다.
항상 건강조심하시고...
그 건강을 독서와 사색하는데 사용하시기를 바라면서...
ern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