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the Classic Era)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이스-로마 신화(the Greek-Roman Mithology)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The Middle Ages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Christianity를 알아야 한단다.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외워서 시험점수만 맞으려고 하는 사람들일 거야. 그런 사람들은 시험이 끝나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단다. 그것은 오직 시간 낭비일 뿐인데 그 길을 택하고야 말지.
사람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경탄을 하지? 그런데 그 경탄을 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정말 ‘자연이 아름다워서’일까? 아니면 사람이 ‘경탄을 하는 감정’을 가져서일까? 만일 ‘자연이 아름다워서’ 경탄을 하는 것이라면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도 그 자연을 보면서 경탄을 할 것이야, 그치? 결국 ‘멋진 자연을 보고 경탄하는 일’은 ‘자연이 멋있어서’가 아니라 ‘경탄하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란다. 이때 그 경탄하는 사람의 마음을 외부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예술’이란다. 따라서 예술은 경탄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를 물질적으로 표현한 것이요, 경탄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는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이란다.
인간의 교육이란 바로 이 ‘경탄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를 가르치는 것이야. 그리고 예술이란 것은 바로 이 ‘경탄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를 그림, 음악, 시, 소설 또는 그냥 그대로의 자연 등, 그 이름이나 형태와는 관계없이 사람이 감각기관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무엇인가로 표현된 것이란다.
그런데 예술이란 것은 위에서 말했듯이 ‘아름다움’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의미하게 되.
먼저, ‘느낄 수 있는 마음’이란 것이 있어야 하겠지?
둘째, 이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크기가 커야 할거야. 왜냐고? ‘콩쥐팥쥐’를 읽으면서 그냥 조금 ‘재미있다’라고 느끼는 사람과 ‘너무너무 슬프고 괴롭고 또한 마지막에서는 너무너무 기쁘다.’라고 느끼는 사람 중에 누가 예술가, 학자, 위대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겠니? 예술을 보면서 느끼는 마음의 크기는 작은데 자기 자신은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겠니?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치? 따라서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크기’를 키워야 한단다.
이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크기’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느끼려고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작동이 되지 않는거야. 예들 들어서 어떤 사람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는 예수와 그를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나도록 슬프고 감동스러워서 그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하자. 또한 이 그림이 너무나 잘 그려져서 이것을 보는 사람 누구나가 경탄할 수 밖에 없다고 하자.
어느날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이 기가 막힌 그림을 보았어. 너무나 신기해서 며칠 동안이나 이 그림 주변을 맴 돌았는데 그 사람은 기독교나 성경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어. 예수도 모르고, 성모 마리아도 모르고, 그리고 십자가 형벌이란 것도 전혀 몰랐어. 그래서 그 사람이 이 그림의 내용을 ‘한 여자가 자신을 좋아하자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만세를 부르는 어떤 남자’를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했다면, 정말 이 사람이 그 기가 막힌 그림을 탄생하게 한 예술가의 ‘마음’ 즉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는 자기 아들의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는 성모 마리아의 심정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가슴이 찢어졌을까? 생각하면서 그 고통을 표현하고자 한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
그 ‘마음’이 아니었으면 그 예술가가 그 기가 막힌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고, 어차피 예술이란 그 ‘마음’을 오감으로 느끼도록 현실화 한 것일 뿐인데…
그래서 기독교, 성경, 십자가 형벌을 이해한 사람만이 이 ‘예술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는 거란다. 그리고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우리가 만일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예술적인 기능’을 연마하는 것보다 ‘예술적인 마음’을 가지기 위해 책 읽고, 여행하면서 온갖 주변의 것들을 느끼고 공부하는 일을 더 중요시해야 하는 거야.
어쨌든, 이런 이유 때문에 만일 Greek-Roman Mythology를 모르면 Greece와 Rome에 가서 고대문명과 그와 관련된 예술을 느낀다는 것이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지. 그런데 여기다가 Christianity에 대해서도 모른다면 the Middle Ages와 그의 문명의 소산을 느낄 수가 없으므로 이 두 문화가 섞여있는 Greece나 Rome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질 수 있겠니?
예술작품의 제목들이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하데스” 또는 “피에타(죽은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의 모습) 등인데 페르세포네, 하데스 피에타 등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말 그대로 공부를 하는 이유는 오직 금방 까먹을 가짜 지식을 진짜처럼 위장한 뒤 시험을 통해 점수만 달랑 받기 위해 공부하는 것 이란다.
그것은 역사를 기만하고 국가를 속이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속이고 학교를 속이고 부모를 속이며 더군다나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란다. 그런 것은 영혼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야. 그 폭력에 저항하는 자만이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지.
어떤 사람들은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Greek-Roman Mythology는 거짓이기 때문에 공부하면 안 된다고 하기도 한단다. 그런 사람들은 ‘콩쥐와 팥쥐’ ‘신데렐라’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읽지 않아야 할 것이고, ‘인어공주’ ‘라이언 킹’ ‘토이 스토리’같은 재미있는 영화가 나와도 인어가 사람이 되거나 사자가 말을 하거나 또는 인형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모두 거짓이기 때문에 자기 자식에게 이런 것을 전혀 보지 못하게 키울 작정을 해야만 할거야.
그 사람들은 같은 종교의 사람들이 조금만 고생해도 역사에 기록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말로 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죽어가면 ‘나쁜 사람들’이라서 그 사람들이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단다. 가슴 속에 ‘예술을 느낄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지.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그런 희한한 주장을 하면 할수록 추종자가 많아지는거야. 오직 이 세상에서 자기만 옳고 다른 것은 다 거짓이다,라고 주장 할수록 절대적인 추종자가 생긴단다. 이 사람들은 매우 포악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지. 자기 자신을 낳게 해준 국가와 사회와 부모와 나아가서 자기 자신마저도 속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니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이겠니?
그러니 이 세상의 진정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느낄 수 있는 마음’을 키우고 그 결과물인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서 ‘진리’를 죽이기 위해 자기의 것만 ‘진리’라고 우기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이들에게도 ‘예술을 느끼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단다.
‘토이 스토리’보고 그 재미난 발상과 살아있는 것처럼 그림을 표현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기술에 대한 경탄이 생기는 사람도 있고 인형이 사람처럼 느끼고 말을 한다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거짓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려는 말도 안 되는 나쁜 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단다. 이 둘 중에 어느 삶을 선택할 것인가는 바로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느끼는 마음’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는 것이야.
자! 그러니까 the Middle Ages를 공부하면서 혹시 a Christian이 아니더라도 Christianity에 대해서 이해해야 하는 거야 알았지?
사실 이 법칙은 이 세상 삶의 모든 부분에 적용된단다. 지금 유럽사를 공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란다. 아빠가 이 모든 것을 공부한 이유는 바로 그 Arete(그리이스 어. 영어로는 Art. 우리나라 말로는 예술)라는 것을 제대로 가슴 속에 가져보려는 욕심 때문이란다. 너희도 당연히 이 art를 가지고 또한 키우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야 한단다. 시험점수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라면, 그건 1억원과 1천만원을 선택하여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둘 다 버리고 오히려 자신이 마지막으로 가진 1백만원 마저 버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실수란다.
바로 그런 멍청한 선택을 최상의 선택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바로 현재의 교육시스템이야. 그리고 그 결과로서 이 세상은 이렇게 어지럽단다. 돈을 위해서 살인을 하고 남을 속이는 일은 어떤 사람이 나쁘다기 보다는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이란다. 자기 자신이 그런 사회에 하루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 오직 시험점수와 좋은 대학만을 목표로 공부하면서 그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범죄행위를 욕하는 일, 그리고 휴일에 종교단체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자신은 천당이나 극락 등의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은 가지는 일은 오직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환상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너희는 환상을 좆지 말고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여 스스로의 가슴에 arete를 심어야 한단다. 이때 한 가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란다. 나 자신이 혼자 있으면서 arete를 가지고자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가 음악가요, 미술가이며, 철학가이자 동시에 모든 먹고 사는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신(god)’되어야 한다는 뜻이야. 즉 내가 수준 높은 arete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위대한 역사의 흐름과 위대한 예술가들의 존재 때문이란다. 즉 ‘남’이 있어서이지. 따라서 스스로 노력해서 높은 arete를 가지게 되면 그건 바로 스스로 노력한 결과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arete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에 성공한 것일 뿐이지. 따라서 일단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면 바로 자신이 이룬 그 arete를 사회를 위하여 다시 내어 놓아야 하는 것이야.
인류의 역사는 그런 순환과정을 거쳐서 발전하는 것이란다.
이것을 절대로 잊지 말고 단 한 시간도 공부로부터 멀어지면 안 되. 알겠지?
자, the Medieval Christianity를 이해를 하려면 먼저 이런 마음 바탕을 가져야 하겠기에 한 이야기이니 오히려 다른 부분들 보다 더 깊고 오래 생각해서 실력을 키우고 스스로의 생각을 다스리는 일에 이용하기 바란다.
오늘은 말이 길어졌으니까 그만하자.
잘 자거라.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