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늘은 Medieval Christianity 의 사건적 시간적 변화를 관찰해 보자.
어느 민족(people)이나 대부분 어느 정도의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어. 유대인들(Jews)은 유대교(Judaism)을 통해 자기들만이 우주를 만든 신에 의해 선택된 민족(chosen people)이라는 생각을 키웠단다. 그런데 하나님(God)이 Jews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자녀들(God's Children)로 선택되는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어. 이 사람들은 그 기회가 오직 Jesus라는 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졌단다. Jesus는 이스라엘(Israel)의 베들레헴(Bethlehem)이란 곳에서 태어났는데 이때 Israel은 바로 Rome의 점령지였어. 이 당시 Rome은 공화정(Republic)에서 황제정(Caesarism)으로 이동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 Jesus가 바로 Rome 최초의 황제인 Octavianus시대에 태어났으니까.
Caesarism은 황제(Emperor) 한 사람에게 모든 권위가 집중되는 정치형태라서 Emperor보다 높은 존재는 신(神-gods and goddesses) 이외는 있을 수가 없었지. 그런데 Jerusalem에서 태어난Jesus라는 청년이 Emperor보다 높다고 하니 당연히 Caesarism과는 마찰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야. 이 문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e I, the Great)가 자신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스스로 Emperor가 Jesus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전까지 Roman Empire 내에서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었어.
일단 Constantine I, the Great가 313년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으로 기독교를 종교로서 인정하자 Emperor의 지위에 관한 논쟁이 즉각적으로 벌어졌지. 즉 그때까지는 Emperor가 최고의 자리였는데 Jesus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이 세상에서 두 번째 자리로 강등되는 것이었어. 그런데 만일 Emperor의 위치가 가장 높은 자리라는 것을 가정한다면 Jesus는 인간이 아니고 신(god)이어야 했지. 당연히 Jesus의 신성(神性-deity)을 놓고 한 바탕 논쟁이 벌어졌겠지? 이 논쟁을 끝내기 위해 Constantine은 326년에 니케아(Nicaea)에서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종교회의(ecumenical conference)를 개최한단다. 즉 Rome 영토에 있는 모든 bishop들을 모이라고 한 다음 그들이 의견을 수렴하여 Jesus가 God인지 아닌지 정하도록 했지. Bishop of Rome을 포함한 많은 bishops들이 참여하지 않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Jesus가 God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어. 이 결론은 Roman emperor를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했어. 이 때문에 Emperor들도 Christian이 되는데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어졌단다.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God였어. Christianity는 유일신(Monotheism)사상인데 Jesus도 God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된 것이었지. 그런데 여기에도 해결점이 있었어. 바로 God의 성격과 그 존재하는 모습의 관련성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지. 즉 God가 Jews이외의 사람들도 구원(salvation)의 대상이 되도록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직접 왔을 때 그 존재를 바로 사람들이 Jesus라고 하는 것이다, 라는 논리였어. 이때 이 모습을 성자(God the Son)라고 하는 것이야. 또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God를 인정하고 salvation에 관한 확신을 가져야 God로 부터 선택 되는데 이런 일을 담당하는 존재는 바로 Spiritual God 즉 성령이라고 하는 the Holy Spirit이야. 이래서 God는 그 일하는 모습에 따라서 God the Father, God the Son, the Holy Spirit의 세 가지 모습으로 보일 뿐 진정으로는 하나의 God라는 것이지.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설(Trinity theory)이란다. 이 Trinity는 나중에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state religion)로 정하는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 때 the Holy Spirit를 God로서 최종적으로 결정 함으로서 완성되지.
어쨌든 이렇게 결론이 나니까 Christianity는 이제 발전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도 이론적인 측면과 형식적인 측면 모두에서 요건을 갖추게 된 것이야.
이 여세를 몰아서 Constantine은 Roman Empire의 수도를 City of Rome에서 Constantinople로 옮긴단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와 매우 중요한 상관관계를 가지게 되. 자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
첫째는 기독교의 우월성 확보와 관련이 있어. 왜 그러냐 하면 the City of Rome에는 성전들(temples and basilicas)이 많았는데 그 동안 거의 모두 Greek-Roman gods and goddesses들에게 바쳐진 temples and basilicas였었지. 이것들을 개조해서 Christian churches로 사용한다고 해도 온 도시에 산재해 있는 Roman gods and goddesses들이 내는 분위기를 어쩔수는 없었지. 게다가 그 당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Roman gods and goddesses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 건물들을 한꺼번에 없앨 수도 없는 일이었어. 이들을 없애려면 도시 자체를 파괴하는 수 밖에 없었던거야. 즉 아무리 the City of Rome에서 노력해 보았자, Christian God는 Roman gods에게 묻힐 수 밖에 없었던것이었지. 이때 완전히 새롭게 Constantinople이라는 신도시를 지어서 Roman Empire의 수도로 삼았던 거야. 그러면서 Christian churches들만 짓고 Roman gods and goddesses를 위한 공간은 배려하지 않았지. 명실공히 Christianity가 중심종교로서 발돋움하는 기회가 된 것이었어. 그래서 313년에는 the Edict of Milan으로 탄압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만족했던 Christianity가 Theodosius황제에 이르러서는 380년에 드디어 로마의 국교(state religion)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
두 번째는 동서교회의 분리와 관련이 있어. The City of Rome이 Roman gods and goddesses들의 고향이었어. 그런데 바로 이곳이 Christian Churches의 두 기둥인 Peter와 Paul이 순교한 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했지. 그래서 the Christian Church의 총 본산은 아무래도 Constantinople보다는 Rome이라는 인식이 Christian들에게는 있었던거야. 그러나 이 문제는 곧 the City of Rome이 the German People의 수중에 떨어지면서 서로마(the Western Roman Empire)가 멸망하게 되자 로마교구가 상대적으로 힘이 없어지게 된단다.
그런데 Rome을 무너트리고 서유럽(the Western Europe)을 점령한 게르만 족이 문화적으로 더 높은 the Roman Culture를 오히려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 것이야. 즉 Frank족의 왕인 Charlemagne가 서로마의 황제로서 등극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지. 이렇게 되자 로마교구가 다시 탄력을 받게 되었어. 이것이 결국 동.서 교회의 분리(the Great Schism-1054)를 가져오게 하는 거란다.
세 번째는 세속의 황제권과 교황권의 우열에 관한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지. 교황(Pope)은 the bishop of Rome 즉 로마교구의 주교야. 그런데 성경의 기록에 보면 ‘king’은 하나님이 성직자의 손을 빌어 기름을 머리에 부어서(anoint) 임명하는 것이었어. 이때 the Roman Emperor가 Christian이라면 Emperor로 임명될 때 바로 bishop이 God를 대신해서 anoint해야 했었지. 즉 Constantine 이전에는 Emperor와 Bishop은 서로 상관이 없었고 오히려 bishops들은 emperors들의 탄압의 대상이었었지. 그런데 Constantine에 의해 기독교가 종교의 자유의 대상이 되면서 Bishop의 권한이 인정되게 되었어. 그런데 별안간 Constantinople로 천도하게 되자 the Bishop of Rome은 다시 불확실한 위치에 서게 되었던 거야. Emperor의 주도로 천도가 이루어지고 Emperor의 의도로 기독교 도시로 Constantinople이 건립되자 Christian church에서 차지하는 Emperor의 입장이 매우 강력해지게 되었지. 그래서 Emperor가 정치와 종교 모두를 틀어 쥐게 되었어. 그런데 the Western Roman Empire는 476년에 멸망하므로 Rome은 정치적으로는 지도자가 없이 오직 Pope 즉 the Bishop of Rome만 남게 되는 거야. 이것이 바로 동.서로마의 정치 종교적 특징을 이루지.
어쨌든,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 황제 때가 되자 Christianity는 또 한 차례 큰 변화를 겪게 되. 그것은 Theodosius의 개인적인 신앙심과 상당부분 관련이 있어. 이 분은 자신의 신앙심에 발로한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하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일은 380 A.D.에 Christianity를 Roman Empire의 국교(the state/official religion)로 채택한 사건이야.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탄압받았던 Christianity가 종교로서 허가 받더니(313 The Edict of Milan) 드디어 세계제국이었던 the Roman Empire의 the state religion이 된 것이야. 예수라는 젊은이가 십자가형(crucifixion)으로 죽은 지 불과 350여년 만에 세계제국의 the official religion이 되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어.
또한 Theodosius는 그 당시까지 the Eastern Roman Empire에서는 위세를 떨치고 있던 Arius파를 이단으로 낙인 찍어서 제국으로부터 퇴출시킨단다. 즉 380년 Constantinople에 입성하자 Theodosius는 당시 the bishop of Constantinople인 Demophilus를 아리우스파(an Arian)라는 이유로 내쫒은 다음 아타나시우스(Atanasius)의 이론 즉 Jesus가 God the Son이라는 생각을 지지하는 그레고리 나찌안주스(Gregory Nazianzus)를 the bishop of Constantinople로 앉혀 버렸어.
이 사건 역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바로 Emperor인 Theodosius가 Constantinople의 교구(diocese)에 대해서 그 신앙적 중요성을 Rome나 Alexandria에 비해 낮게 보았다는 증거가 되는 사건이야. 사실 그 이유는 당시 동로마 교회의 성직자들은 Arians들이 대부분이라서 Theodosius의 생각에는 모두 이단(heresy)으로 보인 것이지. 실제로 Demophilus를 쫒아 냈을 때 동로마의 성직자들은 조직적으로 반발했단다. 어쨌든 Constantinople 지역은 아직 생긴지가 얼마 안 되었고 자기가 아무 때나 성직자를 바꿀 수 있는 곳으로 생각했어. 즉 황제가 Constatinople의 성직자보다 높다라는 생각을 가졌지.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Peter와 Paul이 관계되어 있는 Rome과 Alexandria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통 교회였어. 그래서 380년에 Christianity를 the state religion으로 만들면서 모든 로마제국 사람들은 Rome과 Alexandria의 bishops들의 신앙에 복종해야 한다고 발표를 한 것이야.
이것은 Alexandria와 Rome 교구의 Bishops들의 신앙적 정통성을 확보하는 사건이었어. 그런데 나중에 Alexandria가 이슬람화 되면서 결국 기독교계의 신앙적 정통성은 Bishop of Rome만 갖게 되었지. 바로 the Bishop of Rome이 교황(Pope)이 되는 중요한 계기란다.
어쨌든 Theodosius는 the first Council of Constantinople(381)을 소집해서 ‘Jesus는 God이다,’ 라는 the 1st Council of Nicaea(325)의 결정사항을 확인하고, the Bishop of Rome의 신앙적 우위성을 확인했어.
Theodosius가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이 사건 말고도 바로 이 분으로부터 the Eastern Empire와 the Western Empire가 완전히 갈라지게 되기 때문이야. 사실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이 분의 자식인 호노리우스(Honorius)와 아르카디우스(Arcadius)가 각각 the Western Roman Empire와 the Eastern Roman Empire의 Emperors들이 된 뒤로 476년 the Western Roman Empire가 멸망할 때까지 다시 합쳐지지 않았기 때문에 Theodosius를 기준으로 동.서 로마의 분리를 종종 논하는 것이지.
오늘도 꽤나 길어 졌네…
그러니 오늘은 그만 하자…
자, 이제 한 번 정도만 더 하면 중세 기독교를 이해하는 기초가 잡힐 거야.
내일을 기대하면서… 아자! 아자! 핫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