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서정시에 어느 정도 지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서정시를 쓴다고 하면서도 내용은 서정적이지 못해서 오랜 세월 '시'라는 것에 미안해 했지요. 감각적으로는 '해체시'에 가까이 갔으면 합니다만 저의 이성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논리적 조각들의 꾸러미를 마구 흐트려 놓고 싶은 마음에 '입체파 시'를 기웃거리기도 합니다만,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반죽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한 것들을 '시'라고 써제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슴속 한 켠에서는 언젠가는 인문적 감성이 과학적 객관을 껴 안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아직 시의 역사에는 없는 그 일을 하고 싶다... 라는 객기도 부려봅니다.
오랫만에... 끄적임을 했습니다.
서정적이지 못함을 이해하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찰나’ 뒤에 숨겨진 ‘영원’의 독백
난 가년스런 고독을 입고 2차원의 계절을 지나가는 양복입은 신사야. 시커먼 구두에 밟히는 시간들로 찰나를 찍어 내며 끝없는 길을 걷고 있지. 팽겨쳐진 발자국들은 나일강변의 모래바람에 묻혀 미이라로 박제되어 가고 있어.
나는 저 시커먼 하늘 속으로 던져진 각시탈이야. 짚신벌레보다 작은 광물의 손짓들을 쌓아 만든 규화목이야. 담배연기에 한 쪽 눈을 찡그리며 취객을 향해 손짓하는 새벽 4시의 창녀야. 칼질보다 더한 고통으로 배를 채운 깡마른 기침이야. 질척거리는 어느 가을날 스멀대며 뱀처럼 물가를 기어가는 안개야. 굉음을 내며 자전하는 지구의 푸른 색 몸짓에 맞추어 밤 12시를 때리는 초침이야. 그렇게 찰나를 살아가는 아련함이야…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영원이라 부르지…
사월의 햇살에 타오르는 아지랑이보다 요염하고, 저 안나푸르나 칼리-간다키 계곡의 황량함보다 막연하며, 12월을 몰고 오는 겨울의 옷깃보다 더 세련되고, 월 10만원짜리의 지하 사글세 단칸방에서 마스터베이션이외는 할 것이 없는 지루한 젊음처럼 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아! 나는 강파른 몸을 이끌고 끝없는 시간을 걸으며 몸서리쳐지는 세월의 그악함을 견디어 내고 있어. 그것은 사람들의 찬란한 칭송으로 만든 화려한 외투를 온전한 거짓 웃음으로 치장하는 일이지.
난 그렇게 끝없는 시간을 밟아 석화된 찰나를 만들고 있어. 그렇게 굳어진 찰나의 등 뒤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어.
ern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