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 8월 24일 오후 1시경 베수비오 화산은 폭발했다.
분화구가 거대한 먹구름을 토해내며 이어서 불덩이와 돌덩어리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건물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생지옥을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거렸을 것이다. 분명 먹구름 때문에 사방은 칠흙처럼 어둡고 사람들은 탈출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 했을 것이다.
하늘에서 날아온 화산재와 흙은 점차 폼페이를 덮어가고 밑에서는 용암이 도시를 쓸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유독가스에 숨이 막히고 엄청난 열기에 사람들은 쓰러졌을 것이다.
배를 타기위해 바다로 나온 사람들의 운명도 그리 순탄치는 않았을 것이다. 화산이 폭팔하면 근처해안의 바닷물은 급격히 증발한다고 한다. 그러니 폭풍을 만난 것처럼 바다는 소용돌이치고 배는 뒤집히거나 운좋게 뒤집히지는 않더라도 육지에 다가갈 수 없었을 것이다. “박물지”를 쓴 플리니우스도 그때 사망했다.
티투스 황제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 이후에 폼페이의 재건을 명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 때의 기술로는 어림없을 정도로 폼페이는 철저하게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베수비오 화산이 불기둥을 토해내기 17년 전, 이미 이같은 대재앙을 예고했었다. 거대한 지진이 폼페이를 휩쓸고 지나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이 던지는 경고를 지금이나 그때나 알아듣는 사람은 없나 보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저 아름다운 산이 유럽대륙의 유일한 활화산이며, 약 2000년 전에 그런 끔직한 재앙을 인간에게 내렸다는 것이 절대 믿기지 않았다. 왠지 베수비오 화산이 싫어졌다. 주위에서 산에 한번 올라가 보고 싶다는 말이 들린다. 가이드분도 자신은 베수비오 화산에 가 보았다며 그곳을 설명한다. 하지만 난 눈을 감고 싶었다. 너무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2만여명이 넘는 폼페이와 그 주변의 소도시들을 한순간에 삼켜버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저렇게 뻔뻔히 서 있는 모습이 정말 보기 싫었다.
그 무서운 느낌에 무더위는 사라졌고 버스는 어느덧 폼페이 유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상당한 열기가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폼페이 유적지가 보였다. 고대유적치고는 꽤 튼튼하고 요즘 건물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부팀과 각 조의 조장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우리 모두를 매표소 입구로 데리고 갔다.
난 유적지에 들어서기 전 담배를 물고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왠지 무거운 느낌이 들어서이다. 세계적인 유적지답게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보였다. 간단한 설명이 있었고 조원들 확인이 있고 난 다음 우리 모두는 드디어 폼페이 유적지에 들어섰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입구가 매우 좁았다. 강렬한 태양열을 느끼며 우리가 들어선 곳은 내 기억이 맞는다면 바로 포르타 마리아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