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이 저물고 대망의 2010년이 시작되던 달에, 대한민국에서는 세계미술사에 커다란 한 획을 그은 문화의 대제전이 열렸음을 미래의 역사서에는 기록하게 되리라.
인류가 이 지구상에 모습을 나타내고 문자의 발명에 의해 고대의 역사가 기록으로 전해진 이래, 서양의 르네상스라는 시대(14~16세기)는 동서양 문화의 커다란 전환점이요, 인류 문명이 한 단계 도약하여 문예부흥을 구가한 위대한 시기였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인본주의와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감상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아마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고, 그 위에 이런 문화가 생성되고 소멸해 간 역사적인 배경을 알며, 왜 그런 예술이 나타날 수 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하고, 그 시대의 미술의 기법이 어떠했던가, 등등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평생을 투자해야 할지도 모른다.
설사 이런 사실을 모두 알았다 하더라도 이탈리아를 비롯 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는 미술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 올 수는 없는 일이며, 만약 각각의 소재지를 방문한다 해도 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벽화나 천정화 또는 교회를 장식하던 작품들은 프레스코(Frescoes)라는 기법을 기본으로 하고, 텐페라(Tempera)라는 기법을 추가하여 그려진 것들이다. 프레스코라 함은 우선 회반죽을 벽면 등에 바른 후에 이 반죽이 마르기 전에 물감을 회에 스며들게 하여 작품을 완성해 가는 기법이며, 종종 그 위에 물감과 계란을 반죽하여 덧칠하는 기법으로 템페라기법을 이용했는데, 이는 장기 보존성은 없으나 좋은 색감을 낼 수 있었기에 보조재료 등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런 위대한 문화유산을 당시의 색감과 기법을 재현하여 세계에 알리고자 이탈리아의 라차리 가문은 300년여를 복원 등에 힘써 왔는데, 최근 이 가문이 개발한 “아프레그라피(Affresco_graphy)” 기법을 이용하여 작품들을 세계 최초로 원형에 가까운 빛과 색으로 복원하는데 성공하였다. 따라서 바로 이 작품들은 첨단과학과 철저한 장인정신이 빚어 시대를 뛰어 넘은 예술작품 바로 그 것인 것이다. 아울러 14미터에 이르는 대형벽화 등은 이를 운반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음을 감안하여 축소 제작하기도 하여, 전체 재현된 작품의 복원사업을 지원한 우리나라에서 세계최초로 전시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어찌 세계미술사에 기록될 큰 경사요, 세계에 자랑할 쾌거가 아니겠는가?
이런 역사적인 행사가 바로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고, 또 그 곳에 숨어 있는 많은 문화사적 지식과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음을 알게 해준 것은 어니스트 한이라는 걸출한 안내자(도슨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보면, 토요일에 이 전시회를 같이 감상하게 된 우리들은 너무나 큰 행운을 잡았다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모던포엠” 카페에 이 행사를 알리며 참석을 권하는 안내문이 올랐을 때만 해도 이렇게 중요한 문화유산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인줄은 몰랐다. 그저 여느 전시회를 전문적인 지식을 보태어 설명하는 정도의 것으로만 알고 있었으나, 막상 1시간여의 사전 지식을 위한 설명과, 3시간여에 걸친 자세한 배경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거침없는 설명에, 명화들은 다시 살아 꿈틀대기 시작했고, 작품을 완성한 당시의 대가들의 용트림에 우리는 마치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가 서 있는 듯한 감격에 빠졌으며, 그 현란한 표현 하나하나를 복원한 경이로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여행이든 작품 감상이든, 그 사람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술에 거의 문외한인 필자조차, 르네상스 미술이 그 이전의 비잔틴, 고딕 예술과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으며, 미술사의 발달이 2차원 표현기법에서 원근법과 소실점의 대입에 의해 3차원으로 발전하게 된 점, 이어 인상주의를 거치며 현대 미술로 발전하는 과정이 4차원의 도입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었음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로댕의 “고뇌하는 사람”의 조각이 원본만도 열 여덟인가가 있고, 영광스럽게도 우리 나라에도 그 진본이 있으나, 이를 알지 못하고 해외가 주관하는 로댕 작품의 순회전시회라도 열리면 전시장이 터지게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사실과, 피카소의 그림이 왜 가치가 있고 명화로 대접 받고 있는지의 이유를 비로소 이해했으니, 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소득이었던가?
그의 설명은 끝 없이 계속되었다. 르네상스와 고딕의 경계선 상에 지오토가 있고,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마사초(에덴에서의 추방), 베아토 안젤리코의 기념비적인 작품 “수태고지”, 르네상스의 전기는 피렌체(플로렌스)를 중심으로 발달하다 후기는 로마의 미켈란젤로, 밀라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로 발전해 가는 동안, 시에나, 아시시, 페루지아, 파도바, 베네치아 등의 도시로 우리들을 안내하며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미술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으니, 마치 우리들을 타임머신을 타고 르네상스 시대의 이태리를 여행하고 있는 착각에 빠져들게 히기에 충분하였다.
이는 모두 그가오랜 기간 동안 자비를 들여 세계를 돌며 쌓은 지식과 경험과 연구하고 조사한 지식의 보고를 그대로 우리들에게 열어 보여준 것이니, 그 시간들이 얼마나 신나는 시간이었을지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오랜 시간 피로한 줄 모르고 설명이 계속된 관람을 마치고 나서며, 그는 왜 아무 소득도 없는 이런 힘든 설명을 기쁘게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건 자신이 알고 있는 소중한 지식이나 경험을 다른 사람에 나누어 주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기뻐하는 모습에서 삶의 의의를 느끼고, 인생의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지식인들이 말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쉽게 입에 올리고 있지만, 우리시대를 사는 참다운 천재의 모습이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한없이 부푸는 마음을 안고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는 예술의 전당을 뒤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