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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편지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 헤멥니다. 진리는 어느 곳에 있는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해야 진리에 다다를 수 있는지, 알려고 합니다. 그렇게 알고자 노력하다 보면 진리의 위치와 생김새, 그리고 진리를 얻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들이 안내하는 바에 따라서 진리에 다가가는 모든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 읽어야 하는 책과 읽지 말아야할 책, 만나야 할 사람과 만나지 말아야할 사람, 꼭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사람과 이야기조차 나누지 말아야할 사람, 보지 말아야할 것과 꼭 보아야 할 것, 등등의 많은 것들이 명확하게 정해집니다.

그런데 사실 논리적으로 보면, 이런 조건들이 진리와는 별 상관이 없지요.

만일 진리라는 것이 어떠한 규범에 따라 찾아지는 것이라면, 안타깝게도 ‘진리’라는 것은 ‘선(善)’ 또는 ‘완전함’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얻는 물질적 풍요와 그다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진리가 ‘진정한 이치’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타당한 이치’ ‘완전함’ ‘철학적 사유’ 등의 개념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옳다면 이것을 찾기 위해서는 형이상학적인 사유가 동반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고 오직 남에게 유익하기만하다고 해서 어떤 미생물을 ‘진리에 도달한 존재’로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단순히 어떤 규범적 행위에 순응하는 것이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라면 훈련을 받은 동물들이 어떤 인간보다 더욱 ‘진리’에 도달하기 쉽겠지요.

‘진리’는 철학적, 지적 사유를 통해 그 존재를 확인하는 대상입니다.

이때, 이 철학적, 지적 사유가 진리를 찾는 ‘행위’입니다. ‘진리’라는 것이 물리적 개념이 아니므로 그것을 찾는 행위가 물리적일 수는 없겠지요. 물리적이지 않다는 것은 그 한계나 모양을 물리적으로 결정지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물리적’일수록 오히려 ‘진리’를 찾는데 방해가 될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규범’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어떤 ‘규범’을 통해 진리에 다가가려는 일반적인 노력은 대부분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오지요. 


왜 그럴까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진리를 찾아 헤메인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이 말로 미루어 보아도사람들은 ‘진리’가 주변에 없어서 이를 찾아 내야하는 문제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진리가 ‘물리적’이지 않다, 즉 ‘무형적이다,’ 라는 말은 삼차원의 공간의 일로서 인간의 물리적 감각으로 인식되는 문제와 진리는 상관이 없다라는 말입니다. 즉 진리가 주변에 없어서 어떤 노력을 통해 다른 곳에서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의 존재라는 것과 얽히고 설켜있는 개념으로서의 ‘진리’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그러니 사실, ‘진리를 찾는다’라는 말에서 쓰인 ‘찾는다’라는 표현 조차도 그 의미가 추상적인 것이어야만 하지요. 즉 진리는 어떤 모양을 띠고 어느 상태로 어느 장소에서 어느 시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물질적 존재개념에 반대되는 철학적 개념으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 인간은 이미 누구나 ‘진리’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숨을 쉰다. 그러나 숨쉬는 모든 것이 인간은 아니다.’라는 말과 같이 대소의 포함관계로서 ‘인간은 누구나 진리 속에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 속에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철학적 개념이 ‘진리’이므로, 우리 모두는 당연히 진리 속에 삽니다. 그러나 우리가 속이 비어 있지 않으면 진리는 우리를 완전히 싸고 있으면서도, 즉 단 한 순간도 우리 인간과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속에는 들어올 수 없지요.

우리가 아주 작은 구멍이라도 우리의 속에 만들어 놓아야 진리가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무한한 사유의 방황을 통해 사고를 넓혀 놓아야 거기에 진리가 들어설 확률이 높아지게 되지요.
진리가 들어올 수 있는 ‘속’을 만드는 행위대신 오히려 ‘규범’으로 겉을 단단히 만들어서 형식적으로 보면 완전한 존재가 되되, 실질적으로는 진리가 들어갈 틈이 없는 사람이 되는 방법, 이것을 만나면 사람들은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으로 착각하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빈 공간’을 내 속에 만들기 위해 그 출발점에서 누구나 해야하는 ‘독서’와 ‘사유’를 겁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책을 읽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진리’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지 마시고, 꼭 독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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