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여행-(1); 로마가는 날 [2]
시계를 산후에 다시 집합장소로 가보니 어느새 많은 분들이 도착하셨다. 서로 너무나 반가워하며 웃고 즐기고 있는데 소장님이 오신다. 난 그냥 달려가서 ‘소장님’하고 외쳤다. 소장님이 맑게 웃으시며 손을 흔드신다. 모두들 소장님이 오시는 곳으로 모이고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우리가 있는 장소는 꽤나 소란스러웠다. 7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니 당연한 것일 것이다. 70여명의 사람들이 갖고 온 짐들도 상당하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선민정 원장님의 짐이었다. 나름 많이 줄인 것이라고 하는데 난 ‘헉’하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얼마 뒤, 여행사에서 나오신 분들이 여려가지 이야기를 해주고 비행기 표와 여권을 나눠 주었다. 비행기 표와 여권을 받으니 살짝 긴장이 되었다. 조장들만 불러서 주었으니 ‘이제 자기조는 확실히 책임지시오!!’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조장들도 사실 살짝 긴장했으리라.
다들 약간은 굳은 표정으로 돌아가서 각자 자기 조를 부른다. 그리고는 비행기 표와 여권을 나눠 주고는 각자의 조를 이끌고 출국수속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역시 3조를 이끌고 가서 수속을 시작했다. 일단 줄을 서라고 말한 다음 가방을 하나씩 들어 자물쇠를 확인했다. 다들 가방 튼튼하게 자물쇠로 챙기고 꽉 묶었다. 그리고는 다른 조는 어떻게 하나 둘러보니 다들 아무 문제없이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조도 아무런 문제 없이 모두가 출국수속을 마치고 언제 들어갈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공항방송으로 이름을 부르며 어디 어디로 오라고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우리 비스마트 식구들 아닌가...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가방 속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물건, 혹은 하나 정도만 허용되는데 그렇지 않은 것들이 들어있어 전부 빼라는 것이었다. 기내 금지 물품과 제한물품이라는 것이 있다. 간단히 말해 금지물품은 총, 칼 등의 아주 위험한 물품을 말한다. 그리고 제한 물품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예를들어 스프레이가 있다. 제한되는 것인데 이것이 안된다는 것이 아니다. 말 그래도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보면 몸에 뿌리는 모기약이 걸리신 분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도 너무 크다. 어느 분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다행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바로 이 순간 그분의 성함을 적었을테니 말이다^^* 어떤 분은 가방이 걸려서 빨리 오라고 난리인데 이미 공항안으로 들어가 버린 분도 있었다. 아마 다른 분이 대신 가방을 찾아 오셨을 것이다. 우리도 빨리 들어가서 면제점 구경하자고 해서 들어갔다. 하지만 난 왠지 들어가기를 머뭇거렸다. 마치 다른 세상으로 떠나면서 이곳에서 잡고 있던 손을 놓는 느낌이었다. 해외여행이 처음도 아닌데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지금도 이해를 못하겠다. 하여간 잠시 머뭇거리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신종플루 때문에 검사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전혀 그런 거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검사를 안해도 괜찮은가’하고 걱정이 들 정도였다. 인천공항은 굉장히 큰 공항이다. 그래서 전부 구경하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잠시 구경을 하려고 했으나 시골촌장님이 그리 시간이 넉넉히 남은 것이 아니라고 하는 바람에 서둘러 탑승구로 향해 갔다.
가는 길도 멀다. 무슨 비행기타러 가는데 전철?까지 타고 가야 한단 말인가...다른 나라 공항이라면 잘 상상이 안 갈 것이다. 그 정도로 인천공항은 크단 말이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네덜란드 항공이다. 그동안 대한항공만 타고 다녔지 타국의 항공사 비행기는 처음이다. 아~ 아니다. 뉴질랜드 비행기도 타 본적이 있다. 비록 경비행기 같은 것이지만.....^^*
해외여행을 하면 사실 제일 힘든 것이 비행기타는 것이다. 장시간을 좁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힘든 일이다. 난 창가 바로 옆의 옆에 앉을 수가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창밖을 보며 비행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청주지사장님을 비롯한 몇몇분들의 친절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그래도 복도 옆이라 다행이다. 시골촌장님과 푸른바람님 그리고 원석샘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건너편에는 은아샘도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갈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초등학생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바로 드는 생각이 ‘복받은 아이들’이었다. 난 우리 아이들이 떠올랐다. 이런 귀중한 여행에 같이 왔으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을까. 확신하건데 비스마트로 내가 정성들여 키운 아이들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다 이겨내고 다닐 수 있을 것이며, 누구보다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다 아이들아...’ 나로선 대신 내가 많이 배워 더 많은 것을 알려줘야 겠다는 의무감 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아이들은 프랑스로 가는 아이들이었다. ‘후아~ 프랑스라...’ 난 나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잠시 감상에 젖었다. 비상한 머리를 갖고 있으며 언제나 여유롭고 유머 넘치는 성길, 든든한 체구의 소유자 진기, 언제나 씩씩하지만 은근히 마음 약한 소연,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늘 너그럽게 이해하는 현지, 터프하지만 여리고 여린 경주, 이쁜 만큼 공부도 따라주었으면 하는 종현, 내 품에 늘 안기는 상연, 종훈, 혜나, 혜련, 근주, 영소...등등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 하나 스쳐갔다. 그리고 부모님과 내 동생. 이 모두를 위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내가 하나라도 더 알아서 그들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다는 생각. 뿐만 아니라 내가 버티고 있는 이 세상에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아랫입술을 서서히 물어야만 했다.
이런 저런 생각에 골똘하고 있는데 비행기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옆에는 청주 혜원학원 실장님이 계셨구 그 옆에는 내가 있는 대건학원 女원장님과 청주 지사장님이 앉아 계셨다. “이제 뜨려나봐요”하자 다들 기대에 부푼 표정을 지으셨다. 얼마 뒤 비행기는 속력을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몇 번 타보았다고 어떤 타이밍에 공중으로 뜨는지 알 것 같았다. ‘창밖으로 이 장면을 보면 좋은텐데.. 난 언제나 창가에 앉아볼까?’ 뉴질랜드에서 만 5년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생각이 난다. 난 영어를 거의 독학으로 배웠다. 물론 영어학원을 다니기도 했고. 영어학원에서 학생매니저로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의무적으로 비자를 위해 다닌 것이고, 수업에서도 내가 제대로 배운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수업시간에도 난 뭔가 심각한 것을 배우는 것이 싫어 자꾸 대화를 아줌마수다 수준으로 끌어 들였다. 그래서 수업시간 내내 잡다한 이야기를 하다 마치곤 하였다. 음식 만드는 이야기, 결혼 이야기, 하다못해 고민상담까지 말이다. 물론 이때 배운 것도 많다. 하지만 내 스스로가 배우려는 의지가 별로 없었기에 많은 것을 기억하지는 못했다. 대신 난 서바이벌 영어에는 나름 강했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해하고 알아듣고 대답하는 영어에는 나름 강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한가지 에피소드를 말한다면,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분들이지만, 한 한국교포가 아프다고 해서 통역을 위해 병원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의사가 그 환자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았었다. 그런데 그 한국인 환자 비몽사몽간에 “I'm fine, what about you?"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러자 그 의사가 웃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She is fine!“
뉴질랜드에서 이런 저런 각종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결국 있어야 할 곳은 한국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미련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큰 충격으로 몸져 누우시고, 동생은 말을 삼켰다. 하지만 난 왠지 자신이 있었고 답답하지만 한국의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것 자체에 큰 기쁨을 느꼈다. 만 5년간 뉴질랜드에서 만들어온 나의 모든 것들을 포기하기엔 아쉬운 것이 너무나 많았으나 결국 내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바로 포기해 버렸다. 그런데 한가지 분하고 너무 아쉬운 것이 남아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오클랜드 공항을 이용해야 한다. 거기서 티켓팅을 하는 데 직원이 게이였다. 오래살다보니 게이는 한 눈에 알아본다. 내가 창가에 앉고 싶다고 말을 하니 걱정 말라며 자기가 창가로 자리를 해 주겠다고 한다. 난 너무 감사한 마음에 내가 다시 뉴질랜드에 오게되면 너한테 술한잔 사겠다고 말하면서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내가 앉은 창가는 창문이 없는 기둥이 버티고 있었고 난 14시간동안 기둥에 붙어 잠만 자야 했다. 내가 기내에서 얼마나 그 사람을 욕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이라고 그것 까지 알았을리는 없다. 그저 내가 재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비행기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더니 드디어 공중으로 부양한다. 이때 정말 가슴이 뜨거워진다. 라이트 형제가 처음 비행에 성공했을때의 기분이 이랬을까...비행기는 성층권을 향해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급하게 오르는 것 같다. 난 심장에 상당한 자극을 받고 있었고 너무 답답했다. 뭔가가 꽉 심장을 조이는 것 같았다. ‘그만 그만..이건 우주왕복선이 아니란 말이야...’ 얼마전 우주에 다녀온 이소연 박사의 이야기사 생각났다. 그냥 비행기도 이 정도의 압박이 오는데 우주왕복선의 압박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한동안 지속되던 압박이 사라지자 비행기안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네덜란드 비행 승무원들의 서비스가 시작되고 한국꼬마들이 난장판이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