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민과 생각을 할 마음의 토양을 만드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에디슨은 "5퍼센트의 사람만이 생각한다. 10퍼센트의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85퍼센트는 생각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한다."라고 했습니다. 이 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생각'이란 단어와 세상이 정상적으로 존재하는데 필요한 '생각'은 다른 단어입니다.
생각의 가짓수와 종류로 말하면 보통 사람들이 하는 '생각'의 폭이 훨씬 넓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아침은 무엇을 먹을까, 어떤 옷을 입을까, 누구를 만날까, 이번 달 전기요금은 얼마나 나올까? 돈은 어디에 투자를 할까? 요즈음 정치는 왜 저럴까? 도대체 하루에 수 만가지도 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정말 심각하게 돈을 더 벌기 위한 생각은 자기의 인생을 걸고 합니다.
많은 방송과 신문이 이런 것을 생각이라고 가르치고, 학교나 학원, 또는 가정에서 어떻게 하면 점수를 더 올릴까 고민하고 깊이 생각하도록 가르칩니다. 서점에 가면 이런 것들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모든 것을 추구합니다. 사람들은 학과목을 공부 하거나 책을 읽거나 모두 이 시스템 하에서 잘 살아 남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보는 모든 인생을 깨우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 생각을 안 하나?"
수학공부를 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문제를 푸는 것은 기능을 배우는 것일 뿐입니다. 공부를 하고 문제를 푸는 것은 정확한 실력을 키우는 방법이 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문제를 푸는데 할애해야 하는 것으로는 실력을 키우기가 어렵습니다. 2와 3을 더한다면 그냥 5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2는 무엇이고 3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해야만 그것을 수학이라고 하기 때문에…결국 사람들은 수학을 잘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그것은 수학을 잘하기 위한 생각이 아니고 "점수를 잘 받으려는 노력"일 뿐이지요.
이 세상을 만들고 발전시킨 위인들은 모두가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것만으로도 생각을 집중하기에 시간은 턱도 없이 모자랐지요 계란은 분명히 껍질로 된 작은 알일 뿐인데 그것이 어떻게 병아리가 되고 닭이 되는지, 정말 궁금해 하는 것, 이런 것이 본질적인 생각인데, 이런 생각을 하루 종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쳤다"라고 말합니다. 달걀은 닭이 낳으니까 당연히 달걀이 닭이 되는 거지 그런 것도 모르냐?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그런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쓸 만큼 자신은 한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되, 다 아는 사람이 되어서 겉 모습은 인간이되 그 내면은 본질적인 인간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은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내린 의미로서의 생각" 을 하기 위해 생각의 근육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측면이라서 사람들이 이것을 ‘생각’이라는 범주 안에 넣기를 꺼려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마을에 의사가 세 명이 있습니다. 첫번째 의사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기 전에 미리 이를 알고, 사람들에게 충고하여 병에 걸리지 않게 합니다. 둘째 의사는 병에 걸리기 전에는 이를 알지 못하되 초기에 발견해서 치료해 줍니다. 셋째 의사는 병이 충분히 진행되어야 발견을 합니다. 그래서 고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고, 환자는 오랜 동안의 고통에 시달리고 또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누가 더 실력 있는 의사인지 다 압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첫번째 의사에게는 단 한 푼의 돈을 내는 것도 아까워 합니다. 그냥 말 몇 마디 해 준 것이 다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돈을 내라고 하면, 당장에 의사는 사기꾼으로 고소 당할 것입니다.
두 번째 의사에게는 작은 돈을 지불합니다. 혹시 병원비가 좀 많이 나왔으면 이걸 구태여 따져서 초과 청구된 부분에 대해서 항의하고, 의사가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세 번째 의사에게는 많은 돈을 가져다 주되 전혀 아깝지가 않고 인간적인 존경심이 마구 일어 납니다.
사람들은 물리적이고 객관적인 측면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현재의 상태를 개선시켜 본질적이고 내면적으로 인간 본연으로 다가서는 교육을 시키는 체계가 설 때까지 모두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ern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