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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편지

 

천왕봉을 용서하고 내려오다-1

새벽에 일어났다. 지리산에 가려면 일찍 출발해야 하니 서둘러야 한다.
나와 같은 자취하는 사람들에게 컵라면은 너무나 고마운 음식이다. 신속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을 꾸렸다. 조금 있으니 전화가 울렸다. 비스마트 혜원학원의 윤원장님이다. 집앞에 오셨단다. 서둘러 가방을 들고 나가보니 진짜 와 계셨다. 농담인줄 알았는데...^^ 조금있으니 청주지사장님이 오셨다. 지리산에 가는데 음식이 상할까봐 아이스박스까지 가져오셨다. 나는 지사장님과 원장님 덕분에 편하게 지리산으로 향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행운이다...행운....게다가 차안에서 잠까지 잘 수 있었으니 말이다...차가 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리산행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중산리...
처음들어보는 곳이다. 솔직히 지금도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여하튼 푸른바람님이 그곳으로 오라고 했으니 우리는 그냥 찾아 갔을 뿐이다. 우리는 도착하면 시골촌장님과 푸른바람님 그리고 원석샘이 마중나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다...순간 '어제 일정선을 넘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뒤에 통화를 하니 그냥 천왕봉으로 올라오라고 하신다. 우리셋 모두 지리산은 처음이데 그냥 올라오라니...해서 그냥 올라갔다. 올라가다보면 금방 만나겠지 하는 큰 착각을 혼자하고 있었다. 비스마트는 그냥 시키는대로 한다....!! 라는 구호하에 올라갔다. 북한산에 오르던 것이 생각나 처음에 좀 달렸다. 혜원 원장님이 왜 이렇게 빨리 가냐고 해서 '여긴 북한산이 아니지...'하는 생각에 조금 천천히 가기로 했다. 1915m...이것이 천왕봉의 높이이다. 그러나 나는 차로 어느정도 올라왔기 때문에 '에휴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어...'하는 솔직한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여기 왜왔지..'하는 후회가 팍팍 들기 시작을 했다. 경사도 심하고 돌이 많아 오르기가 정말 힘들었다...끝도 없이 이어지는 돌층계들....오르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다리가 풀려 버린다. 몸의 중심도 잡기 힘들정도로 한걸음 한걸음이 힘들었다. 지금은 짧게 쓰려고 많은 언급을 안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 만해도 사실 지리산을 만만하게 생각했다...뭐 누구나 다 오르는 지리산..우리도 올라갈 수 있겠지...그리고 천왕봉에 오를 생각도 없었다. 그냥 맛난 거 먹고 즐기다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오르다 푸른바람님과 시골촌장님 그리고 원석샘을 만나면 바로 내려가서 먹을 생각만 했다. 즐거운 저녁생각에 혼자 싱글거리기까지 했다. 그분들을 오랜만에(일주일만에) 만에 만날 생각을 하니깐 기분이 너무 좋아 실실거리고 농담도 하며 올라가다보니 본격적인 산행코스입구가 나온다. 대충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했다(정말 대충했다...다른분들은 그러지 마세요...) 이제 가방을 꽉 조여매고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난 입을 닫아야만 했다. 나의 심장과 폐과 어떤 에너지 낭비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소장님과의 산행에서도 이정도로 헉헉 거리지는 않았다. 이건 마치 100m 질주를 한 것과 같이 헉헉거렸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얼마 뒤에는 그럴 정신도 없었다. 사람들이 보던 말던 난 헉헉 켁켁 거렸다...다리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의 몸은 미리 준비도 없이 고생을 시키자 어떻게든 주인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정말 주저앉고 싶었고 그냥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드는 생각이 '난 히말라야 안되겠다'하는 생각이었다. 이 정도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히말라야는 그야말로 꿈인 것이다. 그리고 고질적인 무릎에 통증이 왔다. 시작부터 통증이 오니 앞으로 올라갈 것이 정말 깜깜했다. 사실 그때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든 일이 남아 있는지 모르니깐 올라갔다. 그렇지 않았으면 난 그냥 내려 갔을 것이다. 혜원원장님과 청주 지사장님이 천천히 쉬엄 쉬엄 올라가자며 격려를 해주셨다. 그래서 '아하...천천히 쉬면서 올라가자..그러다 봐서 푸른바람님 일행을 만나면 내려가자고 꼬셔야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올라가기로 했다.
그때 또 드는 생각이 '아니 이양반들 어디 계시지...이 정도 올라왔는데도 보이지 않는다니....'하는 의심이 들었다. '혹시 여기가 올라가기 힘드니깐 어딘가에서 쉬면서 우리를 기다리는 거 아냐?!' 아주 강한 의심이 들었다.

10시 47분에 내가 푸른바람님께 보낸 문자메세지다 "지금 웃고 계시죠 전 이제 안올라가요 내려 오세요"

그러자 자기들도 지금 질질 땀빼고 있는 중이라는 메세지가 왔다. 난 믿고 싶지 않았다. 이들은 분명 어느 멋진 바위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누워서 지리산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하게 메세지를 보내기로 했다.

11시 06분 "그냥 포기하고 내려갈까해요 물이 없어요" 물이 없다...

나에겐 아주 결정적인 이유였다. 사실 그때 물부족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조그만 물통하나 갖고 온 것이 다인데 워낙 물을 많이 마시는 나로서는 물부족은 큰 문제였다. 물 많이 마시면 당뇨를 의심해야 한다는데 난 원래가 물을 많이 마신다. 이제서야 내 비밀을 말하는데 내 피부미용의 핵심이 물마시기와 과일이다. 그리고 땀빼기...ㅋㅋㅋ
로마에서도 난 분수만 보면 물담기에 정신이 없었다. 가방에 물통만 6개를 들고 다닐 정도 였다. 그러다가 가방이 찢어지고 그것이 결국 로마에서의 모든 사진과 정보가 들어있던 넷북을 잃어버리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푸른바람님께 물이 없어 내려가야 겠다고 할때는 앞서 말했듯이 물부족이 큰 문제였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삼국지에서의 조조의 지혜였다. 그래서 가방에 비타민C가 있을 것이 생각해내고 입에 하나씩 물었다. 그랬더니 침이 입안에 고이고 너무 힘들어 몽롱했던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났다. 그때 푸른바람님이 문자로 조금만 올라가면 물이 있으니 포기말고 계속 올라가라고 하셨다. 정말이지 그말 하나 믿고 올라갔다. '물이 있다!'는 말이 정말 큰 힘을 내게 주었고 나는 손과 발을 이용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혜원원장님과 청주지사장님도 정말 잘 올라가신다. 그분들보다 훨씬 젊은 나는 한심, 그 자체였다...게다가 청주지사장님은 캠코더를 들고 계속 찰영을 하며 올라가신다. 난 내 손목의 시계도 무겁게 느껴지는데 그리고 손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올라갈 수 없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정신없이 오르다보니 어디선가 목탁소리가 들린다. 바로 법계사 이다. 저곳에 물이 있겠다싶어 힘을 뽑아내서 올라갔다. 지금의 나에겐 지리산의 풍경이 눈에 안들어온다. 그저 물이었다...이렇게 올라가다보니 음식 냄새가 코 깊숙히 자리 잡는다. 정신 차리고보니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면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난 배고픔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물이 어디있나 찾고만 다녔다. 그때 혜원 원장님이 매점에서 물을 한통 사오셨다. 정말 꿀맛이 따로 없었다. 눈치없이 벌컥 벌컥 마셨다. 그리고 조금만 오르면 샘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바로 샘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혜원원장님과 청주지사장님은 점심식사를 걱정하셨다. 푸른바람님과 연락을 시도하셨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 시골촌장님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시골촌장님이 음식과 코펠등 다 갖고 있는데 버너를 안 갖고 올라왔다고 한다...허걱....물을 마셔 갈증을 해결하자마자 허기가 몰려왔는데 버너가 없다니...'이런 허기를 갖고 계속 산을 오를 순 없다...결국 내려가야 한단 말인가...'
이런 드라마적인 비극?적인 상황을 상상하고 있을때 청주지사장님과 혜원 원장님이 매점에서 자유시간과 영양갱을 사고 계신다. 저거라도 먹고 정상에 오르자는 것이다. 난 자유시간과 영양갱을 태워버리고 싶었다...저것만 아니면 내려갈 수 있으니깐 말이다...푸른바람님 일행을 만나려면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대신 쉴수 있는 시간은 조금 생겼다. 바로 위가 법계사였다. 모두 올라가서 한번 둘러보자고 했다. 난 계속 취사장에서 올라오는 음식냄새, 특히 라면 냄새를 맛고 싶었으나 하는수 없이 따라 올라갔다. 법계사를 올라가니 생각보다 멋있고 웅장했다. 층계를 오르다보니 무료급식이라는 말이 보였다. 난 이때 글자만 읽고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혜원원장님이 이미 벌써 급식을 받고 계셨다. 청주지사장님이 나에게 빨리 오라고 외치셨다...'우와...이런 행운이..'
정말 생각지도 못한 행운에 난 입이 벌어졌다. 산사에서 주는 비빕밥과 미역국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혔다. 짜다는 핑계로 밥을 더 얻어 먹었다. 역시 환상적인 맛이었다. 시골촌장님께 전화를 해서 빨리와서 식사를 하라고 전했다. 그런데 촌장님의 목소리가 너무 힘이 없었다. 난 식사때인데 제대로 먹지 못해서 일거라고 생각했다.

식사를 한뒤 자판기 커피까지 마신뒤 잠시 앉아 있으려니, 청주지사장님이 "저기오네!"라고 말씀하셨다. 보니 푸른바람님과 시골촌장님 그리고 이원석샘이 올라오고 있었다. 다들 땀에 푹 젖은 모습이었다. 모습을 보니 분명 어디서 쉬다 온것 같지는 않았다. 너무 반가워 서로 담배를 같이 피웠다?...각자 만나게 피운뒤 식사를 했다. 그런데 다들 너무 힘들게 식사를 하신다. 알고보니 전날 너무 달리신 것이다. 어쩐지 술냄새가 났다. 그래도 식사를 해야 술도 깨고 올라갈 수 있다고 식사를 강요했다.

식사를 마친뒤 푸른바람님이 안 올라가신다고 한다. 전날의 과음때문에 계속 쉬고 싶다고 하신다...옆에서 같이 쉬고 싶어 하시는 시골촌장님과 1시간 20분만에 정상을 찍고 오겠다는 원석샘이 내 눈에서 대조가 된다...그리고 거기서 같이 쉬고 싶어하는 내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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