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트 정신
하나,
시작하면 끝을 본다.
둘,
일단 들이대고 아니면 만다.
우리는 하나의 정신을 사랑한다. 일단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그러다가 다친다던가 아니면 기절을 한다던가의 일이 생기면 그때 그만둔다. 그게 둘의 정신이다. 지금까지는 모두가 멀쩡하다. 그러니 올라가는 것이다.
이런 끔찍한? 비스마트 정신으로 무장된 분들이라 모두가 결국 천왕봉으로 향하신다.나는 솔직히 끌려갔다. 그냥 내려가고 싶었다. 몸이 너무 피곤하고 특히 무릎이 아파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가 무덤덤히 "올라가는 길이 어디야?"하고 외치는 바람에 끌려가게 되었다...
'지리산에 오지않고 집에 있었으면 잠이나 실컷자고, 영화도 보고 할텐데...흑흑...' 이렇게 속으로 울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원석샘은 정말 대단하다..나한테 "재미있죠...재미있지 않나요?!"하며 정말이지 비호처럼 올라간다...그 뒤를 시골촌장님이 "천천히 좀 가라"하면서 따라 올라 가신다. 나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올라갔지만 허벅지, 종아리 그리고 무릎에 오는 통증때문에 따라갈 방법이 없다. 그렇지않아도 체력이 약한 나에겐 저런 도사들을 따라잡을 방법이 없다. 점점 거리는 멀어지고 난 포기하기에 이렀다. '그냥 내 페이스대로 가자'하는 생각에 내 몸이 허락하는 정도로 오르기로 했다. 거기서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던 내 몸이 한 1,2분만 쉬어도 다시 생생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팔팔하게 오르다가 또 통증이 오고...그러면 다시 잠깐을 쉬다가 기운을 차리면 다시 뛰어오르고...이런식이었다...혼자 생각에 '난 회복력이 뛰어나..ㅋㅋㅋ'하며 즐거워했다.
나중에 푸른바람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누구나 그런 것이란다...
어찌되었건 난 그런식으로 계속 올랐다. 그러면서 천왕봉에 욕을 하기 시작했다. 정상에 오르면 찬왕봉을 부쉬고 앞으로 아무도 이런 고생을 안하게 하겠다는 결심도 하고, 지리산신령이 유일한 여신령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니 싸가지가 없다는 등 하면서 욕을 욕을 하며 올라갔다. 원석샘에게 천왕봉에 오르면 머리로 박치기를 해서라도 부순다고 하면서 올라갔다.
이렇게 헉헉 거리며 올라가는데 내려가는 분이 한말씀 하신다...
"벌써 힘들어하면 안되지...이제 시작인데....."
헉....이게 무슨 말인가...이제 시작이라니...절망이다...지금까지 얼마나 힘들게 올라왔는데 이제 시작이란....짜증이 팍 났다...
'지가 얼마나 높은 곳에 있길래 아직도 시작이야....' 이땐 정말 천왕봉을 없애고 싶은 심정이었다. 호랑이를 만나려면 산속에 들어가야 하듯...난 천왕봉을 없애기 위해서 올라야 했다. 이제서야 드디어 천왕봉에 올라야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여담이지만 우리는 소장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신 것에 대해 안도하고 있었다.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다. 경험있는 분들은 다 아실테니깐...ㅎㅎㅎ 중간 중간 원석샘이 우리를 위해 기다려줬다. 그 옆에는 촌장님이 고개 숙이고 계셨다. 한 체력하시는 분인데 어제 많이 많이 달려 오늘 체력이 좀 아닌 것 같다. 그러고보니 언제나 진짜 당일날에는 촌장님의 컨디션이 좋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저번 대둔산도 그렇구 마라톤때도 그랬다...참 이상하다...
난 모든체력이 바닥에 가깝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도, 할머니도 올라갔다 내려오시면서 우리에게 힘내라는 말씀에 욱하는 심정으로 한발 한발 올라갔다. '할머니도 올라가는데 나라고 못가...여기까지와서 정상에 못가면 두고 두고 찜찜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힘겹게 한발 한발 올랐다. 오르다가 힘들면 잠시 쉬며 다시 힘을 내서 올라갔다. 그러다가 어느순간에 느낀 것이 쉬고 난 다음에 피로도를 느끼는 순간이 점점 짧아 진다는 것이다. 전에는 1~2분만 쉬면 한참을 올랐는데 이젠 쉬어도 곧 바로 피로를 느끼는 것이다. 이 상태로 오를수 있겠나 싶은데 내 눈에 천왕봉이 보였다. '익...저거야...'하는 생각을 하는데 내려가시던 분이 "힘들게 올라왔는데 조금만 더 가요...이젠 거의 다 온거에요..."
이 말에 힘이 났다. 그래서 기필코 정상을 밟아 보겠다는 결심이 섰다. 바로 끄때였다. 내 옆을 지나가는 두분....그 두분중 한분은 절음발이였다. 아마 소아마비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뚝 거리면서도 천왕봉에서 내려 오시는 것이다. 머리속이 멍해졌다. 난 뭐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내 옆을 지나는 한 외국인...난 최고급 30만원짜리 등산화를 신고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데 이 친구는 샌달을 신고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내가 놀래 쳐다보자 한국말로 "안녕하세요"하곤 올라간다. 난 최대한으로 눈을 크게 뜰수 밖에 없었다. '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어....'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뒤에서 누군가가 내게 한마디했다..."아니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못 올라가...빨리 올라가지.." 고개를 돌려 바라본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할머니 아닌가...그것도 고개가 굽은....소장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정상을 코 앞에 둔 상황에서 기막히게 일어난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때 부처님이 생노병사를 알게 해준 일화가 떠올랐다. '올라가자...!!' 난 억지로 올라가지 말고 악으로 올라가자. 이건 누구나 오르는 것이다. 누구나 오르라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내가 부족해서 못 오르고 있을뿐...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누구가 깨달을 수 있다..결국 스스로가 부족해서 오르지 못할 뿐이지....옷은 엉망이 되고 이젠 물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오르고 또 올랐다. 사실 정상은 좀 위험했다. 잘못해서 위에 오르는 사람이 잘못하면 돌이 굴러 다칠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상관하지 않고 올랐다. 그러다보니 점점 정상에 다가가는 것을 느꼈다.. 사방에 안개가 끼여 있는 것을 봐도 확실히 정상에 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소장님과 겨레샘은 5000m도 올라 종주했는데 이까지 쯤이야...'하는 마음으로 헉헉 거리며 올라갔다. 바로 앞만 보고 올라갔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살핀 겨를이 없었다. 내뒤에 누가 올라오고 있는지, 내 앞에 몇명이나 올라가고 있는지 전혀 신경쓸 수 없었다. 그저 돌을 붙잡고 오르고 또 올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잡을 돌이 없다는 것을 느꼈을때 사람들이 좋아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드디어 정상에 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