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을 매우 추웠다. 마치 겨울 같았다.
사방은 짙은 안개로 마치 거대한 로마의 수로안에 갖혀 있는듯 했다. 먼저 올라온 원석샘과 시골촌장님은 즐기듯이 누워 있었다. 조금있으니 나머지 비스마트 식구들이 올라왔다. 다같이 사진도 찍으면서 정상에 오른 기쁨을 즐겼다. 나도 너무 기쁜 나머지 소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뚜뚜뚜....안 받으신다...
소장님이 많이 바쁘신가보다. 푸른바람님이 메세지를 보내라는 말에 메세지로 정상에 올랐음을 전했다. 저녁에 하산해서 다시 전화를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오느니 함께 고생하면서 얼굴을 익힌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즐거워 하는 모습이 아이들 같았다. 우리는 사진을 몇장찍고 바로 내려왔다. 원석샘이 천왕봉을 어떻게 부술거냐는 말에 난 그냥 용서해주기로 했다며 웃었다. 그리고 다음에 또 보자고 맘속으로 약속했다.
이제는 내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나의 진정한 고행의 시작이었다. 차라리 몸이 힘들고 지치는 것이 낫지....무릎통증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처음에 어느정도는 잘 내려왔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준비한 무릎보호대 때문에 잘 내려오고 있었다. 한시간정도 내려왔을까...이젠 더이상 빠른 속도로 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최대한 천천히 내려가기로 했다. 찌릿 찌릿한 통증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게다가 중간 중간에 있는 층계는 정말 죽음이었다. 뒤로 걸어내려오기도 하고 난간을 잡고 한발로 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느것도 크게 도움이 되지를 않았다. 그러면서 소장님이 로마에서 무릎보호대를 하셨던 것이 생각 났다. 얼마나 힘드셨을까...그러면서 소장님의 무릎보호대가 좋아보이던데 그것을 하면 덜 아플까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푸른바람님이 내 옆에서 계속 지켜주셨다. 정말 좋은 형님이다. 덕분에 차근차근 내려오다보니 다시 법계사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여기서 잠시 쉬기로 했다. 좀 쉬면 나아질 것 같았다. 법계사에서 우리가 처음 올라왔던 중산리로 가는 방법은 두 길이 있다. 하나는 처음 우리가 올라왔던 그 길로 다시 내려 가는 것이다. 하지만 단점이 너무 가파르고 힘들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옆길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 길은 과거에 법계사로 오르던 길이란다. 지금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고 약간은 가파르지 않고 평지가 좀 있다고 했다. 푸른바람님이 나한테 그길로 가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왔던 길로 가는게 낫지 않을까 했지만 푸른바람님의 말씀에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그길로 내려가면 올라왔던 길보다 조금더 길고 내려간 다음 버스를 타고 중산리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약간의 평지가 있지만 대신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내 무릎은 버스가 아니라 택시를 타야한다. 약간만 뒤틀려도 상당한 통증이 몰려온다. 그래서 푸른바람님이 말씀하신 길로 내려 오기로 했다. 처음엔 나만 가려고 했는데 다들 내가 길을 잃어 버릴 수도 있다며 모두 함께 긴 길을 택했다. 역쉬 비스마트....^^*
하지만 그 길도 절대 만만치 않았다. 나는 푸른바람님과 혜원원장님과 함께 내려왔다. 그 길이 길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말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정도면 다 내려 왔다는 느낌이 와야 하는데 이건 정말 끝이 없었다. 무릎의 통증은 급기야 내 잎에서 신음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얼굴이 계속 구겨지며 계속되는 통증에 짜증이 최고도에 올랐다. 지리산은 올라갈때나 내려갈때나 쉴 만한 장소가 없다. 어디던지 잠깐 몸을 쉬게 할 만한 장소가 없었다. 게다가 나 때문에 혜원 원장님과 푸른바람님이 빨리 내려가 쉬지 못하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무릎보호대를 최대한으로 꽉 조여맸다. 통증을 최대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무식한 짓이었다. 너무 조여맺더니 다리에 쥐가 나는 것이 아닌가........이런 쥐잡이를 내가 스스로 만들어 하다니.....미리 준비해간 사혈침으로 쥐가 난 곳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솔직히는 원래 경남지사장님이 지리산산행에 오신다고해서, 그리고 열정원장님이 오신다고 해서 혹시나 해서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나에게 사용하다니...스스로 참 한심했다...어쨌든 사혈을 하고나니 바로 쥐가 난 것이 풀렸다. 무릎통증이 있는 곳도 사혈을 하고 싶었는데 테잎을 동여맨 상태라 적절치 않았다. 눈 앞에서는 시골촌장님과 총알같은 원석샘 그리고 청주지사장님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난 최대한 천천히 내려가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서둘렀다. 하지만 서두른 것이 별 도움을 주지는 못해서 내려가는 속도가 빠르지는 못했다. 신음처럼 악 악 거리며 내려가다보니 지리산이 정말 정말 장난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쩜 이렇게 끝이 안보이나 하는 생각에 울음이 날 뻔했다. 하지만 간간히 푸른바람님이 들려주는 말..."이제 거의 다 왔어..."라는 말 한마디에 다시 힘을 내서 내려왔다. 결국
버스 정거장이 보였다. 우리는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 중산리에 가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것이 좀 못마땅했다 아무리 아파도 걸어올라왔으면 걸어 내려가야지 어설픈 중간에 버스를 타고 간다는 것이 찜찜했다. 이것은 지리산에 와서 천왕봉에 올라가지 않고 가버리는 것과 같았다. 더군다나 푸른바람님이 오늘 산행이 별로 운동이 안되었다며 가방을 우리에게 맡기시고는 뛰어 가시는 것이 아닌가...
남아있는 혜원원장님과 나는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거리는 약 3~4km정도이다. 무릎은 아프지만 나 역시 버스타고 가는 것은 맘에 들지 않았다. 바로 그때 혜원 원장님이 우리도 걸아가자고 하신다. 맘이 통했다...우리는 즐겁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멀기는 했지만 그리고 기다리는 분들께 미안하지만 걸아가는 즐거움이 너무 남 달랐다. 오히려 버스타고 가는 분들이 좀 답답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니 중산리 매표소가 나왔고, 우리가 출발했던 곳이 보였다. 반갑기가 꿈만 같았다. 이제, 드디어 지리산을, 천왕봉을 정복했구나 하는 감격이 솟구쳐 올랐다....가슴이 꽉 차오르는 감격에 주위를 둘러보며 우리 비스마트 식구를 찾았다. 푸른바람님과 시골촌장님 그리고 청주 지사장님이 식당에서 파전과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너무나 너무나 반가운 분이 우리를 반기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