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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편지

 

희망과 절망의 상관관계-2

사람들은 인식하기 쉬운 것으로 어떤 인식 대상을 인식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기가 쉽고, 실력을 점수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내면적, 또는 본질적 문제를 외부적, 형식적 시각으로 보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이 성향이 어떤 사실을 판단하는데 있어서도 객관적인 면만을 보게 만듭니다. 이것은 또한 객관적인 측면 자체가 먼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인간들이 잘못 인식하게 합니다.

그래서, 모든 주관적이고, 본질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이 이 객관적인 측면에 의해 절대적으로 결정되어 지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따라서 “10년이나 노력하여 아들을 얻은 일”이 객관적이고 절대적으로 좋은 일이며, 이 일이 나의 내면적인 기쁨의 정도를 정하는 것으로 압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전에 말했듯이, 9년 노력하여 아들을 얻은 일과 11년 노력하여 아들을 얻은 일이 객관적으로 기쁨의 정도가 틀리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만일 사실이라면 여기에서 논리의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먼저 ‘9년 동안 노력하여 아들을 얻은 일’과 ‘10년 동안 노력하여 아들을 얻은 일’ 어느 것이 더 기쁜 일일까를 정할 수 없게 되지요. 이 일이 객관적으로 분명히 기쁜 일이라면 9년 동안의 노력과 10년 동안의 노력 중 분명히 9년이 10년보다 더 짧기 때문에, 그래서 9년이 10년보다 덜 노력하고도 같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9년 동안 노력해서 아들을 얻었을 때 분명 10년 동안 노력해서 아들을 얻었을 때보다 더 기뻐야만 합니다.

어떤 일이 객관적으로, 그 일 자체가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9년 동안 노력해서 아들을 얻었을 때’ ‘10년 동안 노력해서 아들을 얻었을 때’ 보다 더 기쁠 것입니다. 이 논리를 확대해 보면, 결혼하자 마자 그냥 쉽게 아들을 얻었을 때가 죽도록 노력해서 20년 만에 아들을 얻었을 때 보다 수 백배 더 기뻐야 하지요.

그러니 오랜 노력 끝에 아들을 얻을수록 그건 분명히 기쁨과는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아들을 얻으려고 오랜 노력을 하면 할수록 더 적은 기쁨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10년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게 기쁘지 안 기뻐?”라는 말이 매우 당연한 말 같지만 그러나 ‘10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 자체가 여러분에게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10년 동안 노력했을 때 보다 20년 동안 노력해서 아들을 얻었을 때 그 기쁨은 더 크고 그 아이가 금지옥엽이 되는 것입니다.

즉 어떤 일을 이루고자 그 일에 들인 공과 노력과 땀, 그리고 그 일이 갖는 의미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깊이 등이 그 일이 갖는 기쁨의 정도이지요.

아들을 매년 낳는 어떤 부부가 결혼 10년 째 또 아들이 생겼다면, 아마 인위적인 수술로 아이를 지워버리려고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이 세상 모든 일은 그것 자체가 여러분에게 기쁨이나 고통을 주지 못합니다.

그걸 먼저 깨닫는 것이 공부와 학문과 명상과 철학과 인생의 시작입니다. 그걸 먼저 깨닫기 위해 책 읽으라고 하고 여행하라고 하는 것이지요.

희망과 기쁨, 그리고 절망과 슬픔은 내 안의 문제일 뿐입니다.
10년만에 아들을 얻는 일 같은 객관적 사건이 그것 자체가 ‘기쁨’을 주는 일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내가 그 일에 현재 느끼는 만큼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주관적 기쁨의 창고가 내 안에 있을 뿐입니다.

그 창고는 늘 기쁨만을 넣을 수 없지요. 슬픔을 알아야만 기쁨이 무엇인지 아는 상대적인 것이므로 슬픔도 같이 저장하는 창고입니다. 그 창고 안에 저장해둔 슬픔의 깊이가 크면 클수록 여러분은 기쁨의 크기를 크게 할 수 있는 것일 뿐, 어떤 객관적인 사건이 기쁨이나 슬픔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새옹지마”의 이야기에서 처럼 이 세상 모든 일은 그저 그것 자체가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될 뿐입니다.

어제 Holly가 귀국했습니다. 몸이 아파와서 며칠 일찍 귀국했지요. 지금 몸살을 견디느라고 끙끙 앓고 있습니다. Holly가 어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얻은 또 하나는 내가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내 멋대로 인생을 설계하고, 내 멋대로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좋은 나라의 좋은 부모님 밑에서 살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난 정말 열심히 해서 이 세상에 이것들을 돌려 줄거여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지요. “그런 것을 느끼는 것, 책으로만으로는 안 되거나 책으로 해결하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바로 그런 것을 깨닫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인데, 겨레가 잘 해 내었군…

인간은 교육의 산물입니다. 교육이 제거되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첫째, 매일 책 읽고 생각하여서 나 자신을 매일 혹독하게 교육시키고,
둘째, 매일 채찍질 하여서 내 아내와 내 자식을 교육시키고,
셋째, 매일 권고하고 매일 노력하여 이 사회의 구성원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내가 많이 알면 아는 만큼 나는 그걸 남으로부터 받은 것이지요…
“받은 만큼은 꼭 돌려 준다”
사람들은 나쁜 일에 대해서는 이런 결심을 쉽게 합니다. 자기가 받은 피해에 대해서 이렇게 심각하게 자신의 인생을 집중시킵니다.

그러나, 올바른 희망과 절망의 상관관계를 아는 사람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은 그 위대한 생각과 본질과 내면적인 세계를 꼭 남에게 돌려주고자 하지요.

역사가 발전하는 것으로 보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받은 만큼만 돌려 준 것이 아닙을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 접근은 필연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가져오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문제는 형식적 문제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형식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건 이미 실질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내 가슴에 기쁨과 슬픔의 창고를 하나씩 짓기를 바랍니다. 이미 있는 분들은 그걸 허물고 더 크게 짓기 바랍니다. 그걸 매일 매일 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또 한 측면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면…
인생이란
“기쁨과 슬픔의 창고를 짓는 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권고드립니다.

그러니 내 가슴 속에 있는 기쁨과 슬픔의 창고를 매일 짓는 일 즉, 책읽고, 생각하고, 영작공부 게을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rn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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