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주일의 시작입니다. 시간은 살처럼 빠르게 지나갑니다. 늘 사색하여서 느리게 시간이 흐르도록 배려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을 아껴서 쓰라....라고 말하면 형식주의에 바져있는 사람은 같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뛰어 놀게 하라...라고 하면 아무 생각없이 동물처럼 키우라는 이야기로 듣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걸 하나 하나 설명하려고 하면 불가능한 일이 되고.. 하나 하나 설명하고 있다고 해도 이미 그 사람은 저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없는 사람이므로 또한 하나 하나 설명하고 있는 것이 의미가 없는 거지요.
그래서, 올바른 충고를 한다고 했다가 결국 입을 닫아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남는 말은 책읽고 공부하고 사색하라....라는 말 이외에는 결국 없게 되는 겁니다. 그것도 길면 그냥 비 스마트 하세요...라는 말만 하게 되지요...
그런데...이 또한 자다가 봉창 뚫어지는 소리가 될 뿐입니다.
아니... 내 자식의 교육에 대해서 질문을 했더니.. 결국 결론이 내가 공부하고 사색하는 것으로 나는 군...소장님이 나의 질문을 잘못 이해하셨군... 내가 아니라... 재 자식이 어떻게 공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물었는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결국 선문답이 되고 말게 됩니다.
그렇게 결국 본질과 관계없게 되듯이....그러나 스스로는 안다는 확신이 들듯이..
모든 일은 그 본질과 관계없되 스스로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결국.,,, 이 확신이 강하면 강한 사람일 수록. 본질과는 먼 삶을 살게 되고... 본질과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그 겉 모습은 화려함을 띄고, 영광을 띄고, 아름다움과 정의와 진실의 옷을 입고 여러분의 머리 속에 바로 '본질'의 모습 자체를 하고 존재하게 됩니다...
성경에는 이것이 '마귀'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지요...
이미 예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되어서 예수가 "난 너를 알지 못하노라"라고 하고 있는데.,, 스스로는 아무리 생각하고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자신만큼 예수에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 구원의 확신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만큼 많고, 천당과 지옥에 관한 구분이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처럼 뚜렷하게 인식되지요...
그리하여 결국 예수로 부터 완벽히 멀어졌으되... 이 이야기를 하면... 맞아 정말 요즘사람들은 그래....라고 동의하고 걱정하고 이 세상을 염려하되 바로 그 이야기가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인정할 수도 없게 됩니다.
모든 문제는 오직 '남' 때문에 일어 나지요...
이해를 하려면 '시험'이란 놈이 당장 앞에 있어서 할 수 없이 암기하게 되고...
남을 위해 살고 싶지만 돈과 시간이 없어서 그러지 못하고...
올바로 회사를 운영하고 싶지만 요즈음 경기가 않 좋아서 그러지 못하고...
자식을 잘 키우고 싶지만 내 자식의 성향과 현재의 학교제도가 있어서 그게 내 뜻 대로 되지 않고...
통일을 하고자 하되.. 정부 당국자가 정책을 잘 못해서 안 되고...
민주주의를 하고자 하되, 독재자가 있어서 안 되고...
오직, 내가 아닌 다른 것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니... 이것만 해결이 되면 될 것이라서.. 오늘도 밖을 향해 투쟁하고, 싸움을 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되.. 모든 문제가 남으로 부터 온 것이니.. .나는 그대로 완벽한 존재로 남는 것..
논리의 불가역성..
왜 그러면 이 완벽한 존재가 그토록 답답하게 살까?
그토록 답답하게 사는 것 자체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은 어데로 사라졌을까?
"남" 때문에 답답하게 살 뿐이라고 우겨 보았자.. 이미 그 것 때문에 자기 자신이 매우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왜 모를까?
불완전한 존재라면 '남'이 아무리 완벽하게 주변의 조건을 만들어 준다고 해도 그 불완전성 때문에 완벽한 조건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왜 모를까?
그러니..
결국, 내가 완벽해도 남이 완벽하지 않아서,,, 남이 완벽해도 내가 완벽하지 않아서... 문제는 끊임없이 생길 뿐인것인데.... 그리하여 결국 문제의 해결을 원한다면 스스로 완벽해지는 것 뿐이 없는 일인 것을..
본질을 벗어나면.. 그 어떤 조건에서라도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이를 제발 그냥 놀게하라..."라고 말하면서 돌아다닌 지가 꽤 오랜 세월이 되었군요...
지난 달에 어느 학부모로 부터 전화르 받았습니다.
"소장님 강의를 듣고 감명받아서... 아이를 모조건 놀게 했거든요? 그랬더니 이젠 고등학생인데.. 이제 와서 공부를 하려고 해도 너무 늦었는지.. 공부를 못합니다. 스스로 하려고 해도 잘 안 되나봐요..."
이런 분이 지금까지 단 한 분 뿐이란 것이 다행일 뿐....
본질과 관계된 것은 통으로 생각하시면 형식과 관계된 것은 만가지로 분리되어 생각되게 되어 있습니다. 본질과 철학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을 통으로 생각하는 분의 머리에는 형식적인 모듯 것이 분리되어 있게 되어서... "공부하라"라고 말하면.. 느닷없이 공부가 아닌 것을 공부하되 기어이 "놀지 못하는" 방법을 강구해 냅니다.
"놀아라"라고 하면,,, 그 머리 속에는 희한하게.. "공부에 관계된 것은 절대로 어떠한 것도 하거나 생각하지 말아라"라는 말로 들립니다.
뛰어 놀게 되니까.. .생각하는 뇌세포가 발전하게 되어서... "근데, 왜 자꾸 땀이 나지?"라는 생각을 아이가 하면... "소장님이 뛰어 놀라고 했지 공부하라고 하지 않았어.. 커서 공부를 잘하려면 지금 뛰어 놀아야 해.. 땀이 왜 날까?라는 문제는 공부니까 지금 하면 안 된다..."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공부"와 "노는 것"은 완벽히 분리가 되어 있는 이 사람들은 그러한 자신의 능력에 스스로 대견해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자식에게 조차 공부와 노는 일에 대해 확실한 구분을 명확하게 주게 되지요...
그리하여..
결국 옳은 것을 가르친다는 사실은 잡을 수 없는 뜬 구름을 좆는 일 보다 더 의미없는 일이 되어서,,, 올바른 것을 가르치려한 선생들은 의미없는 헛된 노력만 하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꼴이 되어 버립니다.
여러분은...
털끝만큼이라도 깨달아서...
"공부한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논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단 두 가지 단어의 뜻만이라도 죽기 전에 깨우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침잠하여..
책읽고, 사색하고, 운동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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