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공부’라고 하는가? (2009년 1월 칼럼)
- Ernest Han, U.S.L.I 언어연구소 소장 -
우리나라의 교육의 왜곡은 사실 매우 긍정적인 사실에 기인한다. 상대적으로 매우 빠른 경제성장의 근저에 있는 ‘교육열’은 부모에게는 오직 자식을 성공시키려는 ‘자식사랑’의 대표적 행위로 나타났고, 자식들에게는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부모님에 대한 ‘효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들에게는 자신의 노후대책을 마련할 틈도 없이 치루어 내야 하는 의무로 변질되었고, 자식들에게는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이 ‘효행’자체라는 왜곡된 인식을 갖음으로 인해 이 세상을 점수와 물질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게 되는 ‘인격’의 위기의 원인으로 변질되었다.
매우 윤리적이되 윤리 시험에서 점수가 낮은 인간은 ‘윤리적’인 존재가 아니고, 지극히 비 윤리적인 노력을 통해서 윤리점수를 높이는 것이 이 나라가 원하는 ‘윤리’의 개념이 되어 버렸다.
현재 초,중고의 교육과목 중에서 국가적 화두가 되는 것으로서는 단연 영어가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영어가 세계공통어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 이러한 영어가 아무리 해도 쉽게 정복할 수 없는 과목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에 대해, 반대의견을 피력하려는 사람은 필시 영어의 중요성이나 그것이 가진 난해성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과는 다른 증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어서 작금의 한국의 영어시장은 이래 저래 매우 왜곡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왜곡은 ‘역시 아무리 해 보아도 영어는 힘들다,’라는 인식을 학습자에게 심어줌과 동시에 학습자들이 스스로의 ‘인내심’이 남들보다 적다, 또는 ‘집중력’이 남들보다 떨어진다, 라는 자괴감을 갖게 되는 이차적인 왜곡을 필연적으로 낳는다.
이러한 왜곡된 인식은 결국, 학습자들로 하여금 더욱더 형식에 접근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결국 영어가 가지고 있는 측면에서 지극히 형식적인 부분인 ‘영어문법’에 집중하게 만들고, ‘점수’에 집중하게 만들고, 결국 실질적으로는 모르되 형식적으로는 아는 사람이 되어, 아무 양심적 고통도 없이 ‘선생님’이란 지위까지 올라가고야 만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실패한 방법은 ‘올바른 학습방법’으로 변해서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이것이 국가적 상황으로까지 번져서 결국 정부의 영어정책이란 것이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서 교실에 비디오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에 집중하고, 원어민을 대규모로 채용해서 각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안심하고, 가짜 햄버거가게를 만들어 놓고 가짜 미국 돈으로 햄버거를 사 먹어 보는 기이한 것을 ‘현장학습’이란 명목으로 장려하게 되었다.
‘공부’라는 것과 ‘교육’이라는 실질적 명제에 대해 형식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은 계속되는 왜곡의 심화만을 가져올 뿐이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 단체와 학부모들이 이제는 ‘공부’와 ‘교육’에 있어서 ‘인격’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모티브를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할 때이다.
갈럼니스트 ERNEST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