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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편지

 

니나노^^ 대둔산

교육이 끝났습니다. 그동안 수학공부 안 한 것을 후회하는 시간이었지요. 왜 그리 공부를 안했을까..이렇게 재미있는 것을..하고 후회를 했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젠 집에 가서 꼭 수학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집니다. 하지만 이런 비장한 마음도 잠시.. 오늘 밤에는 어떤 잼난 일이 생길까 하는 기대감이 팍팍 생겼습니다. 내일 대둔산을 오르지만 오늘 저녁을 그냥 내일을 위한 충전의 시간으로만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100% 넘치는 기대감이 있었지요, 아~ 그런데 박이사님이 내일 등산을 안가시고 오늘 바로 서울로 올라가신다고 하시네요. 민원장님과 김부장님이 아무리 조르고 땡기고 협박하고 수단방법을 안가리고 못 올라가시게 했지만 서울을 올라가시겠다는 그 굳은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전 함께 당연히 올라가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영암 조원장님이 삐진 듯이 그냥 올라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돌려 협박을 하시는데도 박이사님은 꿈적도 안하시네요. 그래서 저녁이라도 드시고 올라가라고 말씀드리니 “안돼.. 선민정원장님이 오기전에 올라가야 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호~ 박이사님이 가장 두려워하는 분이 바로 열정원장님이구나..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열정원장님은 어디에 계신지 오시지 않고 결국 박이사님이 서울로 올라가시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박이사님이 떠나신 다음 우리 모두는 이사님이 올라가시기 전에 식당을 예약을 하셨다고 해서 식당에 미리 가기로 했습니다.
2층에 있는 복어집이었는데 손님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테이블이 미리 셋팅되어 있었구요.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는데 소장님이 밖에 서성이시네요. 식당을 찾고 계신 듯 해서 얼른 나가서 모시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런...이 식당은 완전히 복어 전문집이라서 소장님이 드실 수 있는게 없다는 군요. 너무 뺍고 짜다는 것입니다. 상의 끝에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근처에 있는 삼겹살집으로 갔는데 사람들로 붐비더군요. 그곳에서 설렁탕이나 부대찌개를 간단히 먹었는데 음식이 짜다고 해도 얼른 바꿔주지 않더군요. 식사 중간에 차근차근 원장님과 식구들이 오셨습니다. 그곳에서 다음날 저를 고개 숙이게 만든 지성이를 보았습니다. 식사 후에는 자연스럽게 맥주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이야기 할 것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일정이었지요. 맥주를 마시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저는 그곳에서 많은 놀림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못한 것이 매우 큰 죄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는 저의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항변을 했지만 그건 별로 큰 도움이 안되더군요^^* 모두가 웃고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평소 친구들을 만나면 별로 말을 안하는 편이었는데 그곳에서 만큼은 무엇이든 실컷 이야기할 수가 있어 자유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 였습니다. 그곳에서 나와 모텔로 들어갔는데 5층에 위치한 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5층이 거의 비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하...김부장님이 기타를 갖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모텔방에서 벌어진 소장님과 민원장님의 기타배틀....그리고 김부장님의 기타연주...모두가 대단하셨습니다. 어떤 노래라도 주문만하면 바로 바로 연주가 나오니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반면에 노래가 나오고 연주가 되는데 정작 가사를 몰라 노래를 조금 부르다 바로 다른 노래를 부르고 또 그것도 조금 부르다 다른 노래로 바꿔 불렀습니다. 60-70년대 노래부터 최근의 신승훈의 노래까지 아주 다양한 노래를 부르고 목이 컬컬하면 냉장고에서 바로 나온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부르다보니 시간은 잘도 흘러 2시가 넘었습니다. 산행을 위해 소장님과 열정원장님은 들어가시고 남은 우리는 더 놀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3시반을 지나고 다음날? 등산을 위해 잠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한껏 흥이난 민원장님과 조원장님이 김부장님을 편안히 주무시지 못하게 방해를 했지요. 바로 이부자리 위에서 김부장님을 굴리고 이불로 감싸고 완전 초딩들을 방불케 했지요. 너무나 재미있어 전 꿈까지 꾸었습니다.

아침 7시 정도에 민원장님이 전화를 받고 일어나시더군요. 교회에 가기로 약속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정말 일어나서 조용히 나가셨습니다. 전 자면서도 힘들텐데...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잠을 청한 다음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조원장님이 일어나시고 민원장님이 들어오셨습니다. 김부장님이 지난밤에 벌어진 레슬링 때문인지 빨리 못일어나시더군요. 조원장님이 연식대로 일어난다고 해서 모두가 한참을 웃었습니다. 김부장님부터 저까지가 모두 2살 차이로 이어지더라구요...^^ 소장님의 전화가 오고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으로 가보니 소장님과 겨레샘은 벌써 식사를 다하셨더군요. 늦장을 피운 것 같아 저도 빨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니, 자 드디어 산행을 위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차 2대가 소장님 차를 따라 열심히 갔습니다. 생각보다 대둔산이 멀더군요. 이 산이 대둔산인가 저 산이 대둔산인가하며 창밖을 바라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대둔산이 저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대둔산의 첫 모습은 “으악!!”이었습니다. 산 봉우리가 돌산이더라구요... ‘에고 저기를 어떻게 올라가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둔산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정말 정말 정말 많더군요. 소장님과 비스마트 식구들이 아니라면 그냥 발걸음을 돌려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많은 사람들이 산속으로 들어가면 모두 사라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많아도 산속으로만 들어가면 보이지 않으니 마치 마법 같았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입은 등산복이 모두가 비슷비슷하니 마치 수십만의 군인들이 모여 전쟁준비를 하는 것 같더군요. 모두가 답답할 정도로 비슷비슷한 모습들... ‘한국인들....’이란 말이 입가에 맴 돌았습니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소장님이 대둔산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순서를 정해서 올라오라는 말씀을 하신 다음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사람에 치인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싸온 음식들 드시는 분들이 보였습니다. 술에 취해 “너나 올라가라 난 안 올라간다”고 외치는 분들..“여기까지 왔는데 일단 올라는 가자”며 잡고 올라가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조용히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전 소장님이 천천히 올라가 주시는 덕에 간신히 따라 갈 수가 있었지요. 가방에는 열정 원장님과 겨레샘이 준비한 음식이 잔뜩 들어 있어서 몸의 중심을 잡기는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마른 오징어는 왜 준비하셨는지 아직도 의문이네요...마른 오징어....
여기서 지성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처음에는 아직 나이가 어려 이런 산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케이블카를 타면 올라갈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케이블 카를 뒤로하고는 아빠따라 열심히 올라갔습니다. 저는 힘들어서 땀이 송골 송골 맺히고 숨이 가빠지는데 지성이는 별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올라가면서 속으로 지성이에게‘내가 못 올라가고 힘들어한다면 지성이 너를 볼 낯이 없게구나’하고 말했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돌이 많고 경사가 매우 심한데도 너무나 씩씩하게 잘 올라갔습니다. 헐떡이는 제 스스로가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앞은 절대 보지않고 무조건 소장님 발만 바라보면서 올라갔습니다. 너무 열심히 소장님 발만 보고 따라가다가 몇 번이나 소장님 발을 밟았네요.. 소장님 죄송합니다. 수많은 인파속에 그냥 우연히 밟히신 것으로 생각하시겠지만 실은 저였습니다^^*
이렇게 발따라 올라가다보니 문득 느낀 것이 겨레샘이었습니다.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그랬다가 또 사라지고 어느 순간에 획 나타나고...무슨 홍길동인 줄 알았습니다. 보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사진기와 큰 물통을 3개나 무거워 보이는 가방에 매고는 열심히 사진을 찍더군요. 전 올라가는데만 정신이 팔려있어 경치 구경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그 어느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땀 한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겨레샘이었습니다.한편 우리의 시골촌장님은 여전히 터미네이터 썬글라스를 쓰시고는 전날의 피로 때문인지 굳게 입을 닫으시고는 부지런히 올라오고 계셨습니다. 어떠한 역경이 덤비더라도 끝까지 간다는 각오처럼 보였습니다. 반면에 등산 고수이신 푸른 바람님은 물 흐르듯이 산을 타고 계십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고 돌이 많아도 물 흐르듯 빠져 나가십니다. 마치 ‘이런 것도 산이냐!’하시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우리의 열정 원장님...평상시에는 사람속에 묻혀 있으시다가 사진 찍을 때가 되면 쏜살같이 나타나십니다. 그러면서 항상 밝은 웃음을 선사하십니다. 많이 힘들실텐데도 내색한번 안하시네요. 대단하세요 열정원장님... 김부장님은 제 느낌대로라면 늘 소장님 주위에 계십니다. 분명히 밑에 계신 줄 알았는데 어느새 보면 소장님 주위에 계시네요. 전 김부장님이 주신 스틱 덕분에 그나마 힘 덜 들이고 올라 올수 있었습니다. 늘 세심하게 신경써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낙엽이 비처럼 쏟아지는 속에서 소장님의 발을 따라 열심히 오르다보니 그 유명한 구름다리가 보였습니다. 탄성이 절로 지는 풍경속에서 구름다리는 건너는 것은 그야말로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탄성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탄성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살짝 무서워지고 짜릿하기도 한 구름다리 위에서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열정원장님의 절규어린 탄성 덕분이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덜덜 떨면서 울려퍼진 탄성은 산으로 둘러싼 구름다리에 경련이 일 정도였습니다.
열정 원장님의 탄성은 다시 삼선계단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곳은 아까의 구름다리와 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살벌하더군요. 하두 겁이나서 소장님을 바짝 따라갔습니다. 계단이 흔들릴 때 소장님 발을 꽉 잡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열정원장님은 얼마나 겁이 나셨을까요.

삼선계단을 지나 정상을 향해 가다보니 소장님이 20년전 사장님과 데이트하던 곳이라며 알려주신 곳이 보였습니다. 한사람 딱 앉기 좋은 곳이더군요. 밑으로는 절벽이었습니다. 한사람 앉을 수 있는 그 자리에 사장님이 앉으시고 그 밑에 소장님이 앉아 계시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 했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낙엽비가 내렸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자리에 이름을 붙여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후에 산을 내려온 다음 그곳을 ‘사랑을 꽃피운 봉우리’라는 의미로 “화애봉”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ㅎ ㅎ ㅎ
몸은 많이 지쳤지만 조금만 더 오르자해서 힘을 내니 정상이 보였습니다. 정상에서 눈으로 들어오는 대둔산은 그야말로 절경이었습니다. 수많은 바위들이 세월이라는 붓으로 그려 놓은 듯한 풍경은 웅장하며 세밀하기까지 했습니다. 저 밑으로 산을 올라오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세월을 만들고 각자 각자의 생각을 갖고 있는 저 사람들... 문득 저 사람들이 마치 개미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묵묵히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개미들...그런 개미들이 대둔산을 집어 삼키려는 듯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잠시 쉰 다음 소장님을 따라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전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시골촌장님도 무릎에 통증이 온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아픈지 한걸음 한걸음 움직일때마다 표정이 일글어지는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무릎이 화끈거리는 느낌도 났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민”자를 붙일 수는 없다는 각오로 내려왔습니다. 열정원장님도 아프실텐데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내려오십니다. 워낙 돌과 바위가 많아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간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도 푸른바람님이 주신 아대를 차고 통증을 줄일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다행인 것이 그때 푸른바람님이 아대를 주시지 않았다면 그날 전 분명 “민”자를 붙였을 것입니다. 지성이도 꿋꿋하게 내려옵니다. 아픈 무릎의 고통을 참으며 조금이라도 빨리 내려 가라는데 저보고 올라오랍니다. ‘아~ 얼마나 힘들게 내려왔는데....’다시 이를 악물고(정말 이를 악물었습니다^^) 올라가니 용문골(명칭이 정확하게 맞는지 모르겠네요..정신없이 올라와서 가라는 곳으로 갔으니깐요)이라는 곳을 꼭 갔다 와야 한답니다. 좁은 바위 틈을 통과해 가 보니 무슨 무협영화에서 주인공이 산속에서 복수를 위해 수행하는 곳과 같은 장소가 나왔습니다. 영화에서 보는 장면 같은 곳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멋진 장면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옆으로 돌아서 올라가보니 대둔산의 웅장함을 바라 볼 수 있는 기가막힌 장소가 있었습니다. 오는 사람마다 우와~~~하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여기서 다시한번 사진을 찍고 나니 소장님이 대둔산은 더 이상 볼 것 없다고 하십니다. 소장님 덕분에 대둔산 알짜배기는 다 본 것입니다.

이젠 정말로 하산입니다. 무릎이 아무리 아파도 올라오는 것처럼 내려가는 것도 결국 저의 몫입니다. 절대 “민”자를 붙일 수 없다라는 신념하에 한발로 껑충 껑충 뛰며 내려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젠 다른 한쪽 무릎도 아파오기 시작을 합니다. 결국 푸른바람님이 아대를 하나 더 주셔서 그 덕에 걸어 내려 오게 되었습니다. 등산화를 신고 오지 않은 저의 잘못도 있었지만 평소에 몸관리를 안한 저의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내려왔습니다. 결국 도데체 끝이 어딘가하며 내려오다보니 나뭇잎 사이로 차들이 보였습니다. 와 다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자 단풍진 잎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느껴집니다. 고흐의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하산을 하자마자 모두들 오리걸음을 시작합니다. 누가보던 말던 오리걸음을 합니다. 저도 무릎이 아파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따라했습니다. 뒤따라 오신 열정원장님도 오리걸음을 하고 겨레샘도 오리걸음을 했습니다. 아~ 지성이가 마지막 층계로 걸어 내려 올 때는 저절로 박수가 나왔습니다. 저 어린꼬마가 어른도 힘든 이런 산행을 해내다니... 진정 그날의 승자였습니다.

바다에 표류하고 있는 어떤 조그마한 배가 있었는데 그 배위에는 어린 꼬마와 엄마, 그리고 오랜 인생 경험을 하신 할아버지, 젋고 늠름한 남자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힘든 표류생활을 마칠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바로 꼬마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하다는 말이랍니다. 그날 지성이를 보면서 위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이상으로 대둔산 산행기를 마치겠습니다.

어설픈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ke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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