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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편지

 

첫 눈과 상념


참 많은 것을 돌이켜 보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지난 시절의 추억으로 한 없이 들어가며 그렇게 보냈던 몇 주 간 이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이 세상에서 떠나 보내는 것은 참 별것 아니면서 동시에 매우 큰 일입니다.
정말 별것 아니게 태어나서,, 별 것 없이 이 세상을 떠나는 이치는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너무나 큰 정신적 부담이었습니다. 거부하고 싶었고, 저항하고 싶었던 일이었지요...

이제 그 쓸모없는 고민에서 벗어날 정도로 정신이 자라고 나자... 인생의 덧 없음이 또한 너무 가벼워졌습니다. 그 가벼움을 없이 하고자 노력하다가, 이제 그 가벼움도 없앨 정도가 되자, 이젠 뽑는 것을 포기할 만큼의 흰 수염이 내 얼굴에서 자라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첫눈을 어제 맞았습니다.

서울에 첫눈이 오던날 저는 순천에 갔었기 때문에 어제사 첫눈을 보았습니다.

첫 눈은...
어렸을 때는 기다림으로 맞았고, 청년일 때는 아픔으로 맞았고 장년일 때는 잊고 살았습니다.

턱 아래 흰털이 제법 용을 쓰는 나이가 되니...
또 다시 회한에 젖습니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2008년에는 시도 한 수 읊지 못하고 보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첫 눈을 보고 깨닫는 군요...

괜시리
내 지나간 어릴 적 아픔과
젊었던 시절의 눈물과..
이제 주름진 내 얼굴이 기억하는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첫 눈은
그 아픔과 눈물이 추억의 창고에 기억될 만큼의 양을 넘어서면...
내리는 것 같습니다...

삶은 그렇게 지나가는 것을....

2008년이 다 지나가는 때 올해의 첫 시를 써 봅니다.


첫 눈

첫 눈은
시커먼 아픔으로 내린다.
어디 갔는지 모를 엄마를 기다리며
한 겨울 어두운 저녁마당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아이의 타들어가는 설움으로 내린다.

첫 눈은
녹슨 눈물로 내린다.
회색빛 향수를 두 가슴으로 부여잡고
먼 타향에서 부는 서릿바람에 몸을 맞긴채
갈라진 기침을 털어내는 나그네의 한으로 내린다.

첫 눈은
가슴저민 추억으로 내린다.
긴 인생의 뒤안길에 핏발 서린 눈으로 서서
헤진 고무신처럼 초라한 가슴을 쓸어
세월의 주름을 달래야 하는 노인의 기억으로 내린다.

아! 첫 눈은
설움과 아픔이 모질게 쌓여
기억의 창고에 머물수 없는 고통이 되면
수 없이 내려서도 또 첫 눈이 되어
또 다시 하이얀 눈물로 젖어 내린다.


ern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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