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맨날 같은 소리를 다른 예를 들어서 하는 것에 불과하니까.. 안들어도 좋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읽고 생각할 시간이 없는 희한한 분들이 있으니까… 책을 읽는 것의 이유와 책을 읽는다는 것의 우선순위를 밝혀보겠습니다…
먼저 책을 읽으라면 시간이 없다는 분들을 위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만일 여러분이 앞이 안볻인다면.. 매우 불편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앞이 안보이는 상황을 스스로 선택하시겠습니까? 절대 아닙니까?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앞은 보이는데… 팔.다리가 없고..정신지체에 걸려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지독스런 질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눈을 빼어 남을 주면.. 이 나머지는 모두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것.. 모든 생각.. 모든 느낌..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허무한 상대적인 가치를 위해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려고 노력할 뿐인것이지요…
이렇듯.. 인간은 항상 변하는 기준과 생활 속에서.. 자신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존재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 또는 나는 앞이 보이느냐 아니냐.. 의 문제와 아무 관련없이 존재합니다.. “진리는 절대적이다”라는 말조차 진리와는관계가 없습니다.. 왜냐고요?
제가 여기에서 “진리”라고 말하는 순간.. 제가 “진리”라고 미름 붙이고자 하는 그 것은 이미 아니니까요..
여러분이 어떤 것에 대해 잘 안다… 라고 말할 때.. 예를 들어 “나는 한국에 대해서 안다..”라고 말하면.. 진리와 관계없는 세상에서는 머리가 끄덕여 집니다. 겉모습으로 보면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열심히 살았고.. “ 한국에 대해서 잘 알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한국에 대해서 잘 안다는 사람이니까 제가 한국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을 물어 봅니다.. 대답해 보십시요..
“한국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지요?”
“그렇게 추앙하는 세종대왕의 키는 몇 센티미터인지요?”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은 호남지방에는 몇 명인지요?”
한국에 대해서 드리는 질문… 약 천억개 중에.. 99.9%센트는 죽을 때 까지 노력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일 것이고.. 나머지 0.1퍼센트 중에 또 99,9퍼센트는 질문이 너무 어려워서.. 모를 것이고.. (예를 들어.. 세종대왕의 군사정책은 어떠했는지요? 같은 질문)… 나머지는 알고 있는 것 같되.. 그보다 더 실력이 좋은 사람이 보면.. 아는게 아닌 지식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안다”라고 생각하고. 이를 굳게 믿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대해서 아나요? 라고 물으면.. 이 “한국”에 대해서 “자신이 알고 밌는 불과 0.0001퍼센트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한국이라고 칭하면서..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십니까?
단순히 “한국”이라는 사실만 해도 이런데.. “진리”라는 것은 그 것의 극한배 만큼 그럴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진리”라고 이름 붙인 그 객체는 이미 제가 알거나.. 추상적으로.. 이럴 것이다. 라는 추측만 하는……….. 예를 들어 “번하지 않는다.. 늘 옳다.. 어디엔가 있다..”정도의 지식으로 아는 어떤 것일뿐 이미 제가 말하는 “진리”는 아닌 것이지요..
노자가.. “명가면 비상명.. 도가도 비상도…”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 뜻입니다..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면.. 이미 그것이 아니고.. 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
뜬 구름 잡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게 사실인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 또는 “도” 등의 이름을 붙여서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미 “진리”라고 이름 붙이면 이미 “진리”가 아니지만.. 이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이 우리가 명명한 “진리”라는 것을 향해 가기는 가야하니까…. 이걸..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진리”리는 이름을 붙이는 거지요..
이렇게 본질로 침잠하여 진리의 옆동네라도 붙어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깊은 생각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이 하고 싶다고 해서 그냥 쉽게 된다면… 누구나 ‘진리”를 원하는 시간에 찾게 되겠지요..
바로 ‘진리’라는 것의 근처라도 가 보려면.. 생각을 해야하는데.. 이 생각이란 것이 그냥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생각할 수 있는 근본을 가지고 태어날 뿐입니다.. 이것을 저는 “생각의 씨”라고 표현합니다..
이 씨는 뿌려져서.. 땅에 뿌리를 내리고.. 물과 영양분.. 그리고 햇빛을 받아야만이 자랍니다.. 이 생각이란 것이 자라기만 하면.. 그리하여 독립된 생각의 나무가 자라가만 하면 되겠지요..
“생각의 씨”는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물을 주고 영양분을 주지 않으면. 이 생각이 자라지를 않습니다. “물, 영양분, 햇빛”은 매우 여러가지 형태로 존재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래서 정말 무식한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정성드려 해 주시는 김이 모락 모락 피어 오르는 한 숟갈의 밥에도 존재하고.. 봄날 눈을 뚫고 솓아 오르는 이름모를 들풀에도 존재합니다. 이것들을 모두 모두 경험해야.. 이 생각이란 나무는 자랍니다..
그런데.. 인간이란 것은 생각의 씨는 가지고 태어나되. 생각이란 나무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영양분은 늘 주변에서 모자라게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서 매일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듯이.. 생각이란 나무도 끊임없이 이런 희생을 요구합니다..
이때.. 이 희생의 종류 중에 가장 결과가 큰 것.. 즉 하루의 일을 하는 중에 가장 일당이 많은 것을 골라야 하듯. 생각의 나무를 위한 영양분 중에 가장 많은 영양분을 가지고 있는 거시 그것이 “책”입니다..
사실.. “책”이라고 말하는 순가.. 이미 “책”이 아니지요.. 겉모습은 “책”이되.. 그 속은 이미 책이 아닌 것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요….
그러니.. 진정한 “책”을 찾아서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책을 찾아내는 실력은 비 스마트 하다 보면 생깁니다…
그렇게 하라고 비 스마트 하라고 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생각의 씨”를 잃어 버리면.. 그것은 이미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야 기회가 되면. “진리”라는 것에 난 솜털이라도 만져볼 기회를 갖게 되겠지요…
이것이 최소한의 조건인데.. “인간”의 조건과는 상관없는 먹고사는 문제에 시달려…. “책”을 볼 여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책”을 읽는다. 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일 뿐입니다..
바라기는 이런 분이라도.. 아직 “생각의 씨”자체를 태워 없앤 분이 아니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안중근 의시가.. 왜 그 고통 속에 “3일만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힌다.” 라고 했는지.. 왜 안창호 같은 많은 천재들이 국가의 위기 속에서.. 국가를 구하기 위해.. “책읽기”를 권면했는지….
자기의 목숨을 버려가며 책읽기를 권면한 분들이 세운 나라에 편히 살면서..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한다. 는 것은.. 안중근을 모독하고.. 김구를 비웃는 일입니다…
오늘도 침잠하여.. 책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목숨의 가치를 알기 위해 노력하면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잘 모르면.. 계속 비 스마트 하시지요…
ERN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