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과 함께 하는 한국 신화-20
마침내 그놈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 하겠다는 듯이 연신 눈을 비비며 바라봤다. 이놈과 곰을 비교한다면 수탉과 병아리라고 해야 할까. 거무칙칙한 몸통에 푸석푸석한 털 그리고 유난히 긴 코가 맨 먼저 눈에 뜨였다.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땅의 기운을 모조리 흡수하는지 이놈이 지나가는 자리는 검게 퇴색되었으며 길고 두툼한 발톱은 어떤 것이라도 짓이겨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발톱이 인간을 향해 휘두른다면 바위에 깔린 것 보다 더 처참해 질 것이다.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던 이놈은 후문의 군사를 바라보았다.
“으하하하하~”
수명장자는 자신의 맹수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세상의 어떤 무기로도 이놈의 가죽에 상처를 낼 수 없었으며 어떤 괴물도 이놈을 능가하는 놈은 없다고 자부했다. 모두가 인정하는 괴물중의 괴물이었으깐 말이다. 이놈은 푸른색의 거신이 만들어낸 최후의 괴물이었다.
수명장자에게 남편을 잃은 한 과부가 미쳐서 남편을 위해 준비한 밥으로 이 괴물의 형상을 만들었고 그 형상에 푸른색의 거신이 정기가 모여 탄생한 극강의 괴물이었다. 물론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고 수명장자도 몰랐었다. 단지 이 괴물은 자신이 기르는 맹수가 아니라 자신과 동급이라고 생각했다. 이놈은 수명장자의 명을 듣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데로 움직일 뿐이었다. 가두어 둔다고 가둘수 있는 놈이 아니었고 오로지 본인 스스로가 어두운 동굴에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동굴에서 지내왔던 것이었다. 그런 이놈이 후문의 군대 앞에 나타난 이유는 오랜기간 잊고 지내왔던 살육을 저지르고 싶어일 뿐이었고 수명장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수명장자는 일어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너를 위해 커다란 잔치상을 준비해놨다. 이제 니가 즐기기만 하면 되니라. 자 불가사리여~ 불가사리여~ 마음껏 먹고 마시며 훨훨 날아라...하하하하...”
쿠우오오오~~~
수명장자의 웃음소리와 함께 거대한 포효가 세상에 진동했다.
쿵쿵쿵쿵~~
이놈 불가사리는 입에서 거품과 침을 내 뿜우며 후문의 군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후문의 명을 받은 귀네기또는 곧 공격을 명령했다. 그러자 불가사리를 향해 여기저기에서 불과 화살이 날아들었고 불붙은 수레와 바위가 땅위에서 춤을 췄다. 자청비와 문, 장상, 사라는 기름칠한 나무에 불을 붙여 공격했다.
쿠우오오오~~~
후문 군사들의 무자비한 공격을 온몸으로 받던 불가사리가 포효하며 두 발로 일어섰다. 그러더니 땅을 쿵~하고 내리찍었는데 그러자 푸른색의 거신이 응답을 하듯 천지가 진동을 하더니 땅이 갈라졌다. 수많은 군사들이 땅 속으로 사라져갔다. 불가사리는 땅을 몇 번 더 갈라 놓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후문군사들을 향해 높이 도약했다. 그러더니 단번에 강림부대의 방패진 한 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삽시간에 방패진이 무너졌다. 병사들은 당황한 나머지 미친 듯이 도망쳤다. 몇몇 군사들은 불가사리의 몸에 칼을 꽂아 봤으나 목숨만 잃을 뿐이었다. 불가사리는 닥치는 데로 짓밟고 다니며 긴 코를 휘둘렀다. 코에 맞은 병사들이 우두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내팽겨 쳐졌다.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땅에 넘어지면 그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발로 얼굴을 짓이겨 버렸다. 덕춘공주와 내일낭자가 불수레를 굴려봤지만 불가사리는 오히려 그 뜨거운 열기를 즐기며 코와 발로 수레를 사방으로 던져버렸다. 그로 인해 온몸에 불이 붙으며 쓰러지는 병사들의 숫자만 늘어갔다. 자청비와 친구들도 불붙은 나무로 공격했지만 모두 산산조각이 날 뿐이었고 범을왕과 오구대왕이 기름을 붙고 불을 붙였지만 불가사리는 꿈적도 안했다. 오히려 온몸에 불이 붙은 불가사리의 가공할 모습에 후문의 군사들이 겁을 더 먹을 뿐이었다. 땅에 함정을 파 놓고 그 안에 죽창을 꽂아 놓기도 했지만 바위밑에 깔린 이쑤시게 만도 못했으며 그물을 던져보았으나 썩은 동아줄처럼 모조리 끊어지고 말았다. 불가사리는 후문의 진영을 그야말로 무풍지대처럼 달리고 있었다.
수명장자의 불사가리의 활약을 보며 미친 듯이 즐거워하더니 군사들에게 총공격을 명령했다. 불사가리에 의해 파괴된 후문의 진영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명령을 받은 수명장자의 군사들은 흥분했다. 이것은 전투가 아닌 일반적인 살육의 잔치였기 때문이다. 또한 수명장자가 많이 죽인 병사들에게는 큰 포상을 약속했으므로 모두가 거대한 함성을 지르며 후문의 진영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이미 쓰러진 후문의 군사들의 목을 베었으며 목이 없으면 팔을 잘랐다. 살려달라는 비명도 이들에게는 잔치의 즐거움을 더하는 노래에 불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칠성형제의 부대와 삼태성 형제들의 부대가 전멸했고 몇몇 형제들은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불가사리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인지 아니면 수명장자의 부하들에게 살해당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청비는 어깨뼈가 부러졌고 장상은 폐에 구멍이 났다. 문과 사라는 실종되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범을왕도 말에서 떨어져 다리와 늑골을 다쳤으며 오구대왕은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황우양부부는 피를 많이 흘려 기절직전에 있었으며 왕장군을 화살을 많이 맞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덕춘공주는 불가사리에게 밟혀서 온몸의 뼈가 다 부서졌고 내일낭자 역시 불가사리에게 채여서 온몸이 피범벅이 되었다. 강림은 단도를 가지고 불가사리에게 대적하였으나 칼은 곧 부러지고 맨손으로 불가사리의 머리통을 움켜쥐었으나 그것도 잠깐 어디론가로 날라가 버렸다.
완패였고 전멸이었다.
수명장자의 군사들은 승리의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살인을 저지르며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약탈했다. 모든 것이 자신들의 것이었고 이보다 더 기쁠수가 없었다. 모두가 깔깔거리며 웃었고 심지어 춤을 추는 자들도 있었다. 살해당하는 자도 목숨을 포기하자 모든 것이 허망한 듯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포로가 된 후문의 장수들마저 깔깔 거리고 있었다. 얼마전까지 미친 듯이 분노하며 싸우던 사람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웃고 있었다. 죽은자들의 목과 팔과 다리를 흔들어대며 미친 듯이 웃었다. 이미 죽은 시체를 칼로 내려치면서도 웃었다. 너무 웃어 배를 잡고 쓰러지는 자들도 있었다. 살육의 현장이었던 전장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 괴이한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후문은 이미 알고 있었다. 형 선문이 이곳에 왔다는 것을. 그리고 선문이 무엇을 가지고 왔는지 말이다. 할아버지 소천국과 함께 서천꽃밭에서 본 그것. 바로 웃음꽃이었다.
수명장자와 번개, 풍우, 벼락, 비천과 비룡형제도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이렇게 웃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배 속에서 멈추지 않고 터져 나오는 이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단지 수명장자만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으나 그 자신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런 수명장자 앞에 후문과 선문이 조용히 나타났다.
“수명장자. 그대는 이 전쟁에서 패했다.”
선문의 말은 조용했다. 수명장자는 고개를 들어 전장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하나 둘씩 쓰러지고 있었다. 끝없이 터져 나오는 이 웃음을 견디지 못해 실신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명장자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군사들은 아직 살아있었으나 후문의 군사들은 전멸했기 때문이다.
“웃기지 마라. 전쟁은 분명 내가 이겼다. 니 놈들이 무슨 요상한 술수를 벌였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이긴 전쟁이다”
그러나 후문이 방울을 들어 흔들었다.
칠성~ 칠성~ 칠성~
놀랍게도 사방에서 들여오던 웃음이 멈추었다. 수명장자의 부하들은 정신이 들었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놀라워했다.
후문이 수명장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을 돌려보내라. 그래야만 네가 저지른 악행이 멈출 것이다”
후문의 말에 수명장자가 분노했다.
“이~ 미친 놈~!! 네놈에게 지금 한 마리의 병사들이라도 남은 줄 아느냐. 나에게는 아직 셀수 없이 많은 군사들이 남아있다. 네놈 혼자서 나의 불가사리를 어찌 대적할 수 있다고 건방이냐~!!!”
그러자 후문이 다시 말했다.
“수명장자 너에게 수많은 군사들이 있다해도 결국 질 것이다”
후문은 수명장자를 보면서 힘주어 말했다.
“난 이승의 왕 후문이다. 나에게 항복하고 나를 따르라”
수명장자는 후문의 말에 미친 듯이 웃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이봐라. 여기 후문이라는 미친놈이 지 형과 함께 와서 나에게 지랄을 하고 있다. 냉큼 와서 이들을 포박하거라”
그러자 벼락, 풍우, 번개, 비천과 비룡형제가 달려와 선문과 후문을 포박했다.
한동안 조용히 있던 선문이 수명장자에게 말했다.
“너의 불가사리는 이미 우리가 제압했다. 지금 나를 따르는 죽은자들이 불가사리를 잡아 놓고 있으니 더 이상 날뛰지는 못할 것이다”
수명장자는 선문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럴 리가 없다. 설혹 불가사리가 없다 해도 나에게는 수많은 군사들이 있다. 네놈들은 한주먹거리도 안된단 말이다”
수명장자는 군사들로 하여금 이번에는 선문과 후문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수명장자의 부하들이 칼을 들어 내리치려 했다.
후문은 눈을 찡그리더니 수명장자에게 후회할거라 중얼거렸다. 동시에 선문은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들더니 하늘 높이 날렸다.
낄낄낄낄낄~~~
하늘에서 요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하하하하하~
호호호호~
깔깔깔깔~~~
이 괴이한 소리에 모두가 넋을 잃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보지 못했다. 하늘에 퍼지고 있는 검붉은 꽃가루를 말이다.
후문이 수명장자에게 말했다.
“목숨을 부지하고 싶으면 눈을 감아라”
그러나 수명장자는 후문에게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이번에는 또 무슨 술수를 벌이는 것이냐~!!”
선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수레멸망악심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