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과 함께 하는 한국 신화-21
수명장자는 이상한 웃음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갑자기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이놈들. 무슨 수작을 벌이는 게냐”
하하하하하하하~~~
선문이 하늘에 던진 검붉은 색의 꽃은 빙글 빙글 돌며 하늘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구름을 타고 살랑 살랑 춤을 추며 자신의 분신인 꽃가루를 여기저기에 퍼뜨렸다.
깔깔깔깔깔깔깔깔~
호호호호호~
낄낄낄낄낄낄낄낄~
모두가 웃음소리에 취하는 동안 하늘에는 검붉은 꽃가루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레멸망악심꽃의 흉흉한 웃음소리와 그에 맞춰 추는 춤 또한 기괴하기 이를 때 없다. 가지를 비틀어 잎을 흔들고 꽃잎은 바르르 떨고 있었으며 꽃망울을 연신 터뜨리면서 꽃가루를 뿜어대고 있다. 동그란 몸체에 사방에 가시가 달려있는 꽃가루들은 하늘에서 춤을 추며 천천히 사람들의 곁으로 내려온다. 그 아름답고도 괴이한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수레멸망악심꽃은 천천히 춤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꽃봉오리를 숙여 세상을 바라보았다.
히히히히 싫다 싫어...
나를 죽여 놓고 자기들은 신나게 놀다니....
미워~ 미워~ 히히히히
수레멸망악심꽃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분노는 사람들의 가슴 속 깊이 파고들었다. 인간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뭔가 잘못 되었다는 본능적인 공포가 솟아 올랐다.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며 사람들은 도망을 쳤다. 서로가 밟고 넘어지며 이곳을 벗어나려 했다.
~낄낄낄낄낄~
수레멸망악심꽃은 그런 인간들을 보며 소리 죽여 웃는다.
어딜 가시려고... 나랑 놀아야지~히히히히
그녀는 고개를 돌려 선문과 후문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선문과 후문.그런 선문과 후문을 보더니 그녀는 온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수레멸망악심꽃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온 몸을 비틀었다.
이~ 으으으으으 아아악~~~!!
그녀의 비명에 모두가 하늘을 바라 보았다. 그러자 수레멸망악심꽃은 울분을 토해내듯 자신의 분신에게 악을 썼다.
분노, 분노, 분노, 분노
아아악~ 다 미워~~~~!!!!
죽여~~~~
하늘을 돌던 삼족오 무리와 신조들은 이 광경을 보더니 재빨리 날개에 힘을 주고 사라져 버렸다. 꽃가루들은 곧장 날아가 인간들의 콧속과 입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이 막히면 눈을 뚫고 들어갔다. 어떤 꽃가루들은 인간의 상처를 파헤치고 들어가기도 했다. 꽃가루가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가자 인간들이 미치기 시작한다. 분노하는 것이었다. 인간들은 눈이 점점 붉어지며 입에서는 침을 흘리더니 점점 광기에 찬 야수의 모습으로 돌변했다.
으으으으 아아아악~~~
그들의 입에서는 인간의 말이라고는 할 수 없는 저주스런 소리가 울려 퍼졌고 곧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손에는 칼과 도끼를 쥐고 자신의 옆에 있는 자를 향해 내리쳤다. 칼에 맞은 자는 팔이 떨어져 나가고 피를 뿜었다. 하지만 그 자 역시 자신을 친 자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칼이 없는 자는 맨손으로 덤벼 상대방의 목덜미를 뜯어냈고 이빨로 핏줄을 씹어 버렸다. 상대방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에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손목이 잘려 나가도 다른 손으로 움켜잡으려 했고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닥치는 대로 살인을 저질렀다. 자신들의 몸에 도끼가 박히는 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로지 상대방의 목덜미를 찢어 놓으려고 악을 쓰며 발악을 할 뿐이었다. 모두가 미친 것이다.
수레멸망악심꽃은 공중에서 계속 발악을 하고 있었다.
미워~ 미워~ 나를 이렇게 만든 놈들이 미워...
다 죽어~! 모두 죽여~
광기에 사로잡힌 자들이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평소 친한 사이였던 자들도 무슨 원한이 쌓였는지 욕을 하며 칼과 도끼로 서로가 난도질해댔다. 부모 형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머리채를 잡고 발로 차며 몽둥이를 휘두르고 장독을 던지며 싸우고 있었다.
이 처참한 광경에 수명장자는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꽃가루가 자신에게 덤비는 것을 막기 위해 성안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곧 맹수로 변해 버린 벼락, 번개, 풍우가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저놈들을 막아라~!!!”
수명장자의 외침에 비룡과 비천형제가 피 묻은 칼로 풍우를 공격했다. 비룡과 비천은 수많은 연습을 통해 얻은 칼솜씨로 풍우의 몸을 칼로 뚫어버렸다. 하지만 풍우는 괴성을 지르며 엄청난 힘으로 두 형제의 목덜미를 잡았고 다른 미친자들의 비룡과 비천의 몸을 순식간에 조각내 버렸다.
수명장자의 성은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사방에 온몸이 뜯어진 시신들이 널려 있었으며 피가 고여 냇물처럼 흘렀다. 잘려진 팔다리가 여전히 꿈틀거리는 모습은 죽은 고기를 즐기는 새들도 피하게 만들었고 그 피비린내는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놈들 감히 나를 해하려 하다니~”
수명장자는 자신의 칼로 번개를 내려쳤다. 그의 칼은 번개의 배를 갈랐고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수명장자는 연이어 자신의 부하인 벼락의 몸도 갈라버렸다. 하지만 벼락이 팔로 버둥거리자 두 팔을 모조리 잘라 버렸다. 번개는 바닥에 뿌려진 내장을 질질 끌면서 수명장자에게 뭐라고 악을 썼다.
“뭐라는 게냐~ 이놈~!!!”
번개는 알 수 없는 말로 악을 쓰며 수명장자에게 다가왔다.
“번개~!! 정신 차리거라 번개~!!”
수명장자는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잡으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몸을 돌릴 사이도 없이 칼을 휘둘렀다. 여우귀신 두 자매 중 하나인 노호정이었다.
“이 늙은 여우년이~”
수명장자가 칼을 휘두르자 노호정의 꼬리가 잘려 나갔다. 그때 또 다른 여우가 수명장자를 덮쳐왔다. 구미호였다.
“미호~ 너도~~!”
구미호는 으르렁 거리며 수명장자를 노려보았다. 수명장자는 자신이 아끼던 장수와 맹수들이 자신을 공격하자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그토록 잘 대해 주었건만~'
수명장자의 귀에 뭔가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바로 풍우였다. 그는 몸에 두 개의 칼을 달고 미친 상태에서 수명장자를 죽이러 온 것이었다.
“풍우 너마저~”
번개, 풍우, 노호정 그리고 구미호
수명장자는 이들이 왜 자신만을 해하려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명장자는 칼 잡은 손에 힘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