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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편지

 

케빈과 함께 하는 한국 신화-8

케빈과 함께 하는 한국 신화-8

총명의 아이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두 노인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소천국과 백주부인이 설명을 했지만 쉽게 믿음이 가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서 한번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으니 당황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이래서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하는 거야”
선문이와 후문이가 계속 어색해 하자 소천국이 입을 열었다.

“그건 당신이 할 말은 아닌 듯 싶습니다”
남편의 지난 과오를 들추어낸  백주부인은 다시금 선문이와 후문이를 바라보면서 한동안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랫동안 총명의 아이들을 바라보던 백주부인은 늠름하게 성장한 아이들에게 기쁨을 느꼈다. 먼 하늘에서 계속 지켜는 보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것이 바로 혈연이라는 것인가 보다. 한참을 소리 없이 총명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 소천국이 그녀를 깨웠다.

“땅이 갈라지고 세찬 바람이 불 때까지 보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대왕님께서 지시한 것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소?!”

분위기 깨는 소천국의 말에 백주부인은 불끈 화를 내며 소천국을 노려 보았다.
“당신은 핏덩이가 눈앞에 와 있는데 반갑지도 않단 말이오?”

소천국은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말문이 막힌 것이다. 자신의 아내는 희한하게도 자신의 말문을 언제든지 막히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또 확인했을 뿐이었다.
백주부인은 총명의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에게는 수명장자를 멸하라는 대왕님의 지시가 있었느니라”

선문이와 후문이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알기로는 천지대왕과의 싸움에서도  살아난 자가 수명장자이고 결코 굴복하지 않은 자 역시 수명장자였기 때문이었다.

“대왕님은 너희들이 수명장자를 멸할 수 있어야 그 다음 일을 맡길 수 있을 거라 말하셨다.”

감당하기 어려운 지시라고 생각한 선문이는 백주 할머니에게 하소연 하듯이 말하였다
”수명장자라는 자는 스스로 왕이라 떠들면서 그 포악함이 극에 달아 천지대왕조차도 어쩌지 못한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를 어찌 저희들에게 멸하라 말하신단 말입니까?“

그러자 백주부인, 아니 백주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손자들에게 비책을 털어 놓았다.
“너희들의 장기는 할아버지를 닮아 활쏘기라고 알고 있다.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곳을 가던 출중한 사냥실력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을 것이다.”

후문이는 ‘네 그건 맞습니다’라고 강한어조로 답을 했다. 누가 들어도 불만이 강하게 쌓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백주할머니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내색하지 않았고 후문이 조차 자신이 내뱉은 말을 후회하고 있었다.

‘사냥만 잘 하면 먹고 사는게 문제 없는거 아닌가’

사람들이 사냥을 하기 시작하면서 동물들은 인간을 떠났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인간들은 언제나 사냥이 가능하다 믿었고 이런 믿음은 세월이 흘러야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수명장자를 멸하라.

선문이는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수명장자는 인간세계의 최강자이다. 게다가 천지대왕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소문이 돌면서 추종자들이 더 늘었고 그 결과 그 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이런 수명장자에 비하면 자신은 내세울 것이 없었다. 꾀가 많은 후문이 역시 고민에 빠졌다. 천지대왕을 이겼다는 수명장자는 어떻게 이길 것인가. 그 당시 수명장자의 이름은 세상을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후문이도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해봤지만 수명장자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소천국이 후문이의 방을 찾아왔다.

“이 밤중에 할아버지께서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모든 일은 스스로 알아서 풀어가는 것이 세상 법도이나 작금의 현실은 내가 심하게 걱정이 돼서 너를 찾았느니라”

소천국은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수명장자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귀네기또 숙부와 친구들이 군대를 모으면 수명장자 못지않게 군사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수명장자의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세력이 바로 맹수들이라는 것이다. 니가 그 맹수들만 제압할 수 있다면 세상은 모두 너의 차지가 될 수 있단 말이다”

할아버지의 말에 후문이는 아까보다 속이 더 답답해 졌다. 수명장자가 맹수들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맹수들을 어떻게 제압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에게는 그 맹수들을 이길 수 있는 재주가 없다는 것을 할아버지가 잊고 있는 듯 했다.

“대왕님이 계시는 천하궁에는 매우 강력한 칼과 방울이 있다. 그걸 이용하면 반드시 방법이 생길게야”

칼과 방울... 후문이는 그런 것이라면 귀네기도 숙부에게 말해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하궁에 있는 강력한 칼과 방울이라면 어떤 특별한 능력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같은 시각, 백주부인은 선문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아까 이야기 하려다 못하고 지금에서야 다시 말하련다. 선문이 너는 반드시 죽었지만 죽지 못한 자를 부려야 할 것이다. 그것들을 부릴 수만 있다면 수명장자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너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야”

할머니의 말씀에 선문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죽었지만 죽지 못한 자라니 그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어지는 말씀에 질문 할 기회는 없었다.

“천하궁에는 천근이나 나가는 활과 화살이 있다. 그 활과 화살로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가서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을 떨어 뜨려야 그 힘을 얻을 수 있을 게다”

“할머니.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은 무엇이고 죽었지만 죽지 않은 자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드디어 선문이는 질문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할머니가 쉽게 해 주실 것 같지는 않았다. 선문이의 얼굴이 굳어지자 백주할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은 어디라고 생각을 하느냐?”
“그야 물론 천지대왕이 있는 이곳 하늘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늘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그야 물론 고개를 들어 보면 보이니 알 수 있지요”
“무엇으로 보느냐?”
“당연히 어머니가 주신 눈으로 봅니다”
선문이의 답에 백주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했다.
“옳거니.. 그게 답이다”
“네~???”

곳간에 있는 말을 타고 한참을 달려온 후문이는 소천국 할아버지와 천하궁에 도착했다. 칼과 방울만 있으면 맹수를 제압할 수 있다는 말에 조금이라도 빨리 그것들을 손에 얻고 싶었다. 역시 급한 성격의 후문이였다.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지 허허”

이윽고 천하궁에 있는 보물창고에 다다르자 소천국이 말했다.
“칼과 방울은 저 안에 있으니 들어가 꺼내 오도록 해라”
“할아버지는 안 들어 가십니까?”
후문이의 질문에 소천국은 허허거리며 호통을 쳤다.
“이눔아 그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 내가 꼭 너에게 갔다 바쳐야 겠느냐”
그리고 이런 말도 남겼다.
“찾을 수 있을게다. 네가 주인이라면 말이다”

소천국의 질타에 멀쑥해진 후문은 창고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창고 안은 너무나 깊고 어두워서 칼과 방울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할아버지 도저히 어두워 찾을 방도가 없습니다”
후문이 창고 밖을 다시 나와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하지만 소천국 할아버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할아버지~?”

후문이는 순간 당황했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다. 이것은 할아버지가 자신을 시험하는 것임에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밤에 자신을 창고까지 데리고 왔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후문이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는 여전히 깊고 어두웠다.
‘할아버지 칼과 방울이 어디에 있을까요’

후문이는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창고 안을 서성였다.
‘칼과 방울이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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