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과 함께 하는 한국 신화-12
이승의 왕이라 칭하는 후문의 군사와 대치하게 된 수명장자의 진영에는 정적이 흘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후문의 군사 정도는 걱정거리가 안된다는 것인지 성벽 너머로 누구 하나 쳐다보는 사람조차 없었다. 성안에서는 밥을 짓는 연기조차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발자국 소리나 짐승들의 울음소리조차 사라졌다.
“괴이하군”
귀네기또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해원맥이
“괴상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우리 측의 기세를 떨어뜨리려는 수작입니다”
“그런 수작이라면 성공한 것 같구먼, 안 그런가”
귀네기또가 갑자기 사기가 떨어진 군사들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후문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화덕을 불렀다.
“우리에게도 방법이 있지”
후문이 화덕에게 무언가를 지시 하자 화덕은 즉시 달려가 왕장군에게 달려갔다.
왕장군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일으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어이~ 너 어디가니? ”
왕장군이 어딘가로 향하자 강림이 물었다. 하지만 왕장군은 강림을 쳐다보지도 않고 수명장자의 성문이 바라보는 평지로 나갔다. 강림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왕장군은 보는데 순간 왕장군의 입에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오오오오~~~~
사람들이 놀라 귀를 막고 말들이 주저앉았다. 날아가던 새들도 날개 힘이 빠져 밑으로 떨어졌다. 왕장군은 한참 동안 괴성을 지르더니 어디선가 나무 한그루를 뽑아 가지고 왔다.
사람들이 놀라 입이 떡 벌어지는 순간 왕장군은 나무를 통째로 돌멩이 던지듯 수명장자의 성안으로 던져 버렸다.
콰쾅~~!!
왕장군의 놀라운 힘에 후문의 군사들은 한동안 입을 닫지 못했다. 그때 후문이 나서 소리를 치자 정신이 돌아온 군사들이 환호성을 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군사들의 사기가 돌아온 것이다. 왕장군의 놀라운 힘은 금방이라도 수명장자의 숨통을 끊어 놓을 것만 같았다. 멀리서 북과 장구를 가지고 온 너사매와 쇠철이가 때에 맞춰 북장구를 치자 군사들의 사기는 더 끓어 올랐다.
그때였다.
꽝~!!!
후문의 진지 앞에 조금 전 왕장군이 던졌던 나무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땅 속에 박혀 있었다. 후문이 놀라워하며 성을 바라보자 성벽에 누군가가 씩씩 거리며 서 있었다. 바로 수명장자였다.
분위기는 삽시간에 수명장자 쪽으로 넘어갔다. 성벽에서 수많은 무리들이 모습을 보이더니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맹수들의 울음소리까지 더해지자 후문의 군사들은 금방이라도 오줌을 쌀 것 같았다. 이 때 강림이 후문의 진지 앞에 박혀버린 통나무를 스윽 뽑아 버리더니 한쪽으로 치웠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수명장자를 가르키며 말했다.
“너 힘 좀 쓴다~!!”
강림은 돌멩이를 들어 수명장자를 향해 휙 집어 던졌다. 성벽 위에서 바라보던 수명장자는 강림이 던진 돌멩이를 가볍게 한손으로 잡아 버렸다. 그러더니 무서운 힘으로 돌멩이를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수명장자가 무서운 힘을 내보이자 군사들이 더욱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강림은 돌멩이 몇 개를 더 던졌고 그때마다 수명장자는 그 돌멩이들을 모조리 잡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약이 바짝 오른 강림은 눈에 보이는 돌멩이란 돌멩이는 전부 던져 버렸고 수명장자 역시 그때마다 전부 잡아채서 가루로 만들어버리니 강림으로서는 미칠 정도로 화나갔다. 강림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하면서 돌멩이든 나뭇가지는 닥치는 대로 던졌는데 그 모습이 너무 민망하여 해원맥이 나서서 말릴 정도였다.
“강림도령 이제 그만 하시지요”
하지만 마지막에 던진 강림의 돌멩이는 수명장자의 손에 들어 오기는 했지만 했지만 가루로 변하지는 않했다. 그것이 돌멩이가 아니라 단도였기 때문이다. 강림이 던지 단도는 수명장자의 손을 뚫어 버렸고 수명장자의 손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뜻밖의 상황이었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던 강림은 수명장자를 실실 웃으며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이것을 노리고 돌멩이를 던진 것이었다. 수명장자의 입에서는 끄응하는 신음소리가 나왔다. 그것이 고통에서 나온 소리인지 아니면 분노에서 나온 소리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강림의 다음 한마디에 수명장자가 분노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아프지?! 요 자식아~!!!”
수명장자는 당황하다 화가 폭발했다. 이런 모욕은 처음이었다.
“저, 저, 저 쳐 죽일놈~!! 내 오늘 니 놈의 심장을 질겅 질겅 씹어 버리겠다”
수명장자는 피묻은 손으로 입을 닦더니 그 손으로 칼을 높이 뽑아 들었다.
“성문을 열어라 성문을 열고 진격하라”
“화살을 쏘아라 모조리 퍼부어라 놈들의 면상에 화살맛을 보여줘라”
수명장자는 들고 있던 칼을 강림을 향해 던졌다. 칼은 피융~ 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강림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강림은 옆으로 한 걸음을 옮겨 가볍게 칼을 피하며 말했다.
“헐 고마운 걸.... 마침 칼이 한 자루 필요했는데 말야”
그는 성벽위에서 씩씩 거리는 수명장자를 보며 말했다.
“잘 보라구 내가 이 칼로 니놈들을 어떻게 요리하는지를...”
선문은 죽은 자들 앞에 서 있었다. 죽은 자들은 해와 달을 피해 다니며 살아있을 때의 기억을 잊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선문은 그런 그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왠지 자신이 이들에게 미안했다. 죽은 자들이 선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는 우리와 같은 눈을 하고 있구려. 뉘십니까? 그대는..”
선문은 입을 조금 열고 말했다.
“나는 해와 달을 떨어뜨린 자다”
“나는 암흑에서 너희들을 풀어준 자다”
“나는 너희들을 인도할 자다”
그러자 죽은자들이 말했다.
“오~ 당신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분입니까~”
“그렇다”
“그럼 당신이 우리들의 왕이십니까~”
“그렇다”
그들은 선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왕이시여~ 왕께서 저희들을 어둠에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고통은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죽은자들을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흘리고 흐느끼며 말했다.
“죽었음에도 이렇게 이승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너무 괴롭습니다.”
“저희가 살던 집이 눈앞에 있고 자식들이 힘들게 사는 모습을 지켜 본다는 것이 너무나 괴롭습니다”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의 심정을 헤아려 주십시오”
“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제 남편은 오늘도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제 속이 찢어지는 듯 합니다”
죽은자들은 선문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그들은 이제 돌아가지도 못하는 이승을 영원히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운지를 눈물로 선문에게 털어 놓았다.
선문은 죽은자들에게 말했다.
“죽은자들은 들어라. 이승에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 이승에 머무르는 것은 천지대왕의 뜻이 아니다. 이미 너희들이 지낼 수 있는 저승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라”
죽은자들이 웅성거리다가 선문에게 물었다.
“저승에 대해서는 저희들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승이 어딘지 가 본자가 없으니 저희들로써는 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들을 그곳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어떤 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소문을 듣고 홀로 가 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길이 너무나 험하고 강도 너무 깊고 넓어서 도저히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왕께서 저희를 인도해 주십시오”
선문이 미처 생각 못했던 말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 하나 깨닫기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