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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편지

 

케빈과 함께 하는 한국 신화-17

케빈과 함께 하는 한국 신화-17

 
“왕이시여~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죽은자들의 질문은 계속되었으나 선문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리 알아야 저들의 마음만 더 다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죽은자 역시 산자와 다를 바 없는 것은 그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선문은 저들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자신에게 묻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으나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 공세에 더 이상 입을 닫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선문은 깊은 숨을 한번 쉬고는 죽은 자들을 바라보았다.

 

 

“난 암흑천지에 갇힌 그대들을 해방시켰고 또한 그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죽은자들은 선문의 말에 일제히 무릎을 꿇고는 절을 했다.

 

“오오~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저 쉬고 싶을 뿐입니다”

 

“모든 것이 왕께서 베푼 은혜 입니다”

 

“이젠 모든 것을 잊고 싶습니다”

 

“영원히 그 감사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왕이시여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지 마시기를”

 

“우리의 충심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죽은자들은 선문 앞에서 맹세를 했다. 하지만 선문의 굳은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이윽고 죽은자들의 맹세를 모두 들은 선문은 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앞으로 저승에서 안락하게 지낼 것이오. 더 이상 이승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며, 뜨거움과 차가움 속에서 고통 받지도 않을 것이며, 더 이상 숨어 지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죽은자들은 모두 절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저승을 찬양하고 선문을 칭송했다. 이들은 그동안 받았던 고통에서 벗어난 다는 것 자체가 진귀한 보석과 같은 행복이었다. 하지만 선문의 이어지는 말이 이들을 꿈에서 깨어나게 했다.

 

 

“그대들은 무엇을 줄 것인가~?”

 

죽은 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선문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려 했다. 무엇을 줄 것인가라니... 죽은 우리들에게 줄 것이라는 것이 뭐가 남았단 말인가. 자신들은 죽는 순간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체 두 개의 태양과 두 개의 달 아래에서 고통스럽게 이승을 헤메고 다녔다. 이승을 헤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언제 끝나는 것인지 기약이 없다는 것, 영원히 이승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지옥이었고 한번 살았었다는 것에 대한 댓가가 이토록 엄청난 것인지 처절하게 깨닫고 있었다.

 

‘차라리 태어나지를 말지’

 

죽은 자식은 죽은 어미를 만나 원망했다. 살아 생전에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아끼는 존재였던 부모와 자식이 죽어서는 철천지 원수처럼 서로를 미워하고 욕하며 끝없는 이승의 땅에서 끝없는 세월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다니~

 

 

선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나 선문은 이승에 죄를 떨친 자만이 저승길에 들 수 있게 할 것이며 심판을 통해 깨끗한 자를 골라 다시 이승의 삶을 이어가게 할 것이다. 들어라. 영원한 안식은 없다. 그것은 천지대왕의 세상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우주만물의 조화와 균형을 깨는 것이다. 너희들 중 이승의 죄가 없는 자들은 지금 이 앞으로 나와라. 내 직접 살필 것이다”

 

 

죽은 자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 볼 뿐 감히 앞으로 나서는 자가 없었다.

 

 
한편,
강림은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자 부하장수들을 불러 말했다.

“마부는 곧장 군사를 몰아 수명장자의 맹수들이 숨어있는 곳을 찾아 없애거라. 그리고 분명 맹수들의 음식을 저장하고 있는 곳이 있을 터이니 그곳은 철융이 반드시 찾아내거라”

마부와 철융은 인사를 하고 급하게 떠났다. 강림은 맹수들이 움직이기 전에 선수를 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명장자 역시 그냥 구경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성루에서 모든 광경을 분노와 함께 지켜봤다.


‘이놈들~~!!’
수명장자의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자신의 부하들이 도륙을 당하고 있으니 그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수명장자는 저 강림을 비롯한 후문의 군사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 버리겠다고 맹세했다.

‘니~ 놈들은 단 한 놈도 곱게 못 간다. 내 진정한 공포를 맛보게 해주리라’

수명장자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천천히 칼과 채찍을 흔들기 시작했다. 벼락, 풍우, 번개, 천둥, 비룡 비천형제 등이 모두 긴장하였다. 수명장자의 채찍은 동서와 남북으로 춤을 추었는데 한번 거둘 때 마다 촤악~ 하고 공간을 때리니 그 위력에 모두가 절로 뒷걸음질 쳤고 다른 손에서 휘두르고 있는 칼은 공중에 무슨 글씨를 쓰는 것 같이 움직이더니 수명장자가 채찍으로 그 글씨들을 회오리처럼 휘감아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괴한 채찍의 움직임과 칼에 따라 맹수들이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우오오오~

 

성안에 있는 동물들이 하나 둘씩 울부짖기 시작했는데 외양간의 가축들도 함께 울부짖었다. 땅 속에 있던 들쥐와 두더지도 고개를 내밀고 울었으며 풀숲의 두꺼비도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조그맣게 시작한 그들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높아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단순한 울음소리가 아니 분노와 절규를 토하는 울음으로 바뀌어 갔고 그것들이 모여 하나로 섞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이한 소리의 조화였다. 그에 따라 수명장자의 춤도 점점 격렬해지고 그가 흔드는 칼과 채찍도 무서운 바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병사와 주민들은 모두 집안으로 피신했는데 대신 파리해진 입술을 떨고 있는 수명장자의 장수들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둥 두둥, 둥 두둥, 둥 두둥~

 

북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미친듯이 커지며 기괴해 졌다. 귀를 막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괴이한 울음소리는 바람을 타고 병사들의 마음속을 헤집고 다녔다. 붉은 눈에서 피덩이를 쏟아내고 입에서는 썩은 고기 냄새가 흘러나왔다. 맹수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자 뜨거운 침이 뚝 뚝 떨어졌다. 무엇이든 찢어버릴 듯이 긴 발톱을 드러내고 몸을 숙였다.

 

콰앙~, 콰앙~, 콰앙~

거대한 종이 울리자 맹수들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피맛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인간의 살덩어리를 뜯어 한입에 꿀꺽 삼키고 싶은 욕구에 누구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눈에서는 목덜미를 물고 흔들리는 가엷은 인간들이 떠올랐고 발버둥치는 하얀 허벅지살이 짐승들을 미치도록 흥분하게 만들었다. 맹수들이 날뛰었고 점차 통제 불가능한 흥분상태에 도달해 갔다.

 
하악 하악 하악~

우오오오오~~~

 
짐승들이 거품을 물고 울부짖었다. 벌게진 눈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고 있다.

문이 열리자 그들의 눈에 수많은 먹이감들이 들어왔다. 공포에 떨고 있는 먹이들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삶을 포기하고 자신들을 기다린다. 빨리~ 빨리~. 이들은 주인의 명령만 떨어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이윽고 수명장자의 춤이 멈췄다. 그는 놀랍게도 땅에 박힌 칼끝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수명장자는 채찍을 높이 들더니 눈을 떴다. 수명장자의 맹수들은 그의 손에 달린 채찍만 바라보고 있었다. 수명장자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 내려와 그의 입술로 들어갔다. 자신의 땀 맛을 본 수명장자는 입술을 찡긋하더니 이내 채찍으로 바닥을 치며 외쳤다.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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