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원장회의를 마치고 밤늦게 도착하여 그 감회를 더듬다가 새벽녘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셨습니다.
정신을 놓고 헛소리를 하시는 칠순노모의 모습이 어찌나 띵하던지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받으십니다.

"어쩐일이냐?"
"예, 아버지 별일 없으시죠? 어머니는요?"
"김치담근다고 염산에 젓갈사러 갔다."
"아 예, 오늘이 제 생일인데 전화도 안하시길래 전화해봤어요."
"허허허..."

전화를 내려놓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욱 흘러내렸습니다.
생일상을 차린다고 분주하던 아내에게 그만 눈물을 들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아내와 아이들이 꿈에도 소원하던 새 아파트 입주 전 구경가는 날입니다. 아이들 옮겨 갈 학교도 둘러보기로 했구요.

"여보, 우리 그냥 시골에 갈까? 어젯밤에 어머님이 당신 생일이라고 전화하셨는데 미처 말을 못 전했네."

오늘은 왠 황사가 이리도 심한가요? 온통 뿌옇더군요. 새집 대충 구경하고
아내가 생일이라고 특별히 요리한 잡채 좀 싸고 시골친구 집에 들러 낚지 몇마리 사고해서 오후 늦게쯤 시골집에 들어섰습니다.

외양간에 여물을 주러 가시던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발견하시곤 놀라신듯 하더니 금새 미소를 머금으십니다.
어머니께서는 비에 흙을 잔뜩 묻힌 모습으로 샘터에서 굽은 허리를 일으키시며 연락도 없이 워쩐일이냐며 깜짝 놀라십니다.
아내가
"이 사람이 갑자기 어머니 보고 싶다 글잖아요!"
차 안에서는 할머니 집이다. 할머니!하고 소리쳐 부르던 다섯살박이 아들녀석은 막상 할머니를 보고는 인사도 안하고 뒷걸음질칩니다. 우비에 흙을 잔뜩 묻히고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다가오는 할머니가 순간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수술을 해서 좀 낳아지신 한쪽 다리에 의지해 아침부터 5리는 족히되는 길을 걸어 버스를 타고 가셔서 젓갈을 사오시고 나서는 밭에 가서 파며 갓동이며 배추를 뽑아 오시고 이제 그것들을 손질하고 계십니다.

"어무이, 뭣허요?"
"아 요새 갓동이 하도 좋길래 너도 좀 담어다 주고 느그 성도 좀 부쳐주고 헐라고 근다."
"안그래도 오늘 니 생일인디 떡을 좀 해갔고 갔끄나 어쩌끄나 허다가 느그 바쁠 것 같아서 그냥 말아불었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이 준비해 온 케익에 롱사이즈 초를 딱4개 꽂고 노래를 부릅니다.

"벌써 느그 아부지가 마흔이 댜브렀다 잉~, 참 징허네 잉"
막내아들 나이가 새삼스러우신 모양입니다.

언젠가 어니스트 소장님이 강의하시던 중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엄마, 사랑해~~"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저도 하고 싶었습니다.

오늘 저는 저의 생일이기도 하거니와 간밤의 꿈도 있고 해서 오늘은 꼭 우리 어머니께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고야 말리라고 다짐하고 시골에 갔습니다.

몇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면서 어머니 보자마자 꼭 안아드리면서 "어무이, 사랑허요." 징그럽게 한번 할 수 있었습니다.

케잌에 초 4개 꼽고 나서 훅 하고 끄기 전 또는 끈 후 "어무이 징허게 사랑허요!" 꼭 한번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밤길에 조심해서 가라고 배웅해주시는 어머니 손, 구부러져서 다 펴지지도 않는 곰의 발처럼 무뎌져서 퉁퉁 불어 있는 그 어머니 손을 막둥이의 두손으로 꼭 쥐어드리며 "어무이 사랑해~~" 애교있고 다정하게 꼭 한번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 눈길만.. 어째 이리도 못났을까요?
사랑한다는 말이 왜 이리도 입안에서만 뱅뱅 돌고 말까요?

지금이라도 크게 한번 소리쳐 보아야 속이 후련할 것 같습니다.

" 어무이~~ 사랑허요. 어무이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