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6(일)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풍향계/ ‘나의 투쟁’과 교육의 근본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노아(Noah)는 자신의 부인과 셈(Shem), 함(Ham), 야벳(Japheth) 세 아들, 그리고 며느리 세 명과 함께 방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여덟 명에게만 살 수 있는 허락이 주어졌다. 방주사건이 모두 마무리 되고 난 후 어느 날, 포도를 재배함으로써 노아는 포도주에 취하는 경우를 겪는다. 낮에 술에 취해 옷을 입지 않은 모습으로 잠의 요정의 지배를 받게 된 그는 작은 아들 햄이 형제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희롱을 제안한 것을 알지 못했다. 셈과 야벳은 그러나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지 않고 뒷걸음으로 옷을 가져다가 노아를 덮어준다. 잠에서 깬 노아는 이 이야기를 듣고 햄과 그의 아들 그리고 이후의 그들 자손에게까지 저주를 내린다.
이 사건으로 햄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되며, 셈은 햄에게 내려졌던, 그러나 이 사건으로 취소된 축복까지 더하여 유대인의 조상이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솀’에 가까운 발음에서 출발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이름은 ‘셈’이 되어 갔다. 그 결과 ‘셈족’이란 이름이 그의 후손들에게 주어졌다.
기독교(Christianity)는 ‘예수’라는 위대한 인물에 의해 유태인 이외의 모든 민족들에게도 ‘천국’에 속할 수 있는 특권을 정당화한 종교이다. 이 세상 모두가 하나님과 관계를 갖고 내세에서 신의 나라인 천국에 거주할 권리를 얻으려면 ‘유태교’가 부여하는 ‘유태인에 한정된’ 이란 범위를 벗어나야 한다. 이를 부정하는 ‘유태교’ 즉 ‘셈의 자식들의 종교’가 구교가 되었든 신교가 되었든 기독교와 서로 어울릴 확률은 이 세상에서의 물질적 ‘삶’이라는 공통된 굴레 이외에는 없었다. 그래서 ‘반유대주의’는 ‘반셈족주의(Antisemitism)’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게 된다.
콘스탄틴이라는 로마의 황제가 모친인 ‘헬레나’를 통해 기독교를 알게 된 후 로마는 급속도로 기독교화 되었고 드디어 테오도시우스(Theodosius)황제에 이르러서는 국교의 지위를 차지한다. 이후로 유럽의 역사는 기독교인에 의한 유태인 박해로 그 끈을 이어갔다. 그 중에서도 히틀러의 시도는 ‘민족말살’이란 의미의 ‘제노싸이드(genocide)’를 누구나 아는 용어로 변환시켰다.
유태인은 ‘다윗의 별’이라는 문양에 민족의 대표성을 심었다. 삼각형과 역삼각형을 합쳐서 만든 이 별은 기독교 국가들에게는 ‘반유대주의’의 표현방법을 쉽게 고안해 내도록 유도했다. 유태인들은 영어로는 ‘쥬스(Jews)이고, 불어로는 ’쥐프(Juif)‘이며, 독일어로는 ‘유더(Jude)’이다. 이 별의 가운데에 ‘Juif’라고 쓰면 프랑스에서의 반유대주의를 의미한다. 히틀러 하에서 유태인들은 다윗의 별 가운데 ‘Jude’라고 쓴 상징을 가슴에 달고 가스실로 향해야 했다.
히틀러가 자신의 정신을 독일민족주의에 두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마지막 사람이 독일의 시민이 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선언은 ‘나의 투쟁(mein kampf)’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이로부터 시작된 민족주의는 시대적 요청인 후기낭만주의의 물결을 타고 국가들을 ’영토국가(State)’에서 ‘민족국가(Nation)으로 바꾸어 나갔다. 이탈리아에서는 파씨스트들이 뭉쳤고, 독일에서는 나찌가 앞장섰으며, 러시아인들은 국민주의 음악을 들으며 민족적 자긍심을 찾아 나섰다. 이들은 자본주의라는 경제시스템의 선두주자 경쟁에서 밀려난 처지를 민족주의를 향해 선두를 돌리는 기회로 해석했다.
1923년 히틀러는 바이에른의 뮌헨에서 ‘맥주집 폭동(Beerhall Putch)이라는 사건을 일으킨다. 독일민족주의의 기형아인 나치와 히틀러는 이 사건을 통해, 그리고 재판과정을 통해, 독일인들이 뇌리에 깊게 각인되었다. 이 사건으로 형무소에 갇혀있는 동안, 그는 ’나의 투쟁‘ 을 썼다. 그 첫 출판일이 백여년이 가까워가는 1925년 7월 18일 오늘이다.
세상의 모습은 철학과 존재에 대한 관심마저 유행을 타고 출렁여 왔다. 이 경향들이 좋던 아니던 늘 그 저변에는 객관적 의미의 지식이 사회간접자본 중의 ‘간접자본’으로써 존재한다. 교육과 교육개혁의 근본적 의미 그리고 그 방향이 철학적으로 고민되지 않으면 그 결과는 인류의 멸망을 앞당기는 수단으로 인간의 역사를 기록되게 된다.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본질적으로 해석할 욕심이 있는 사람들을 같이 키우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