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10(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교육과 문화예술의 정치적 중립성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아테네와 이페수스(Ephesus)를 지나 타르수스(Tarsus)에 도착한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의 부(副)와 군사력을 이용하기 위해 클레오파트라의 도움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에게 타르수스로 와서 만나자는 전갈을 보냈고, 클레오파트라는 금으로 수를 놓은 덮개 아래에서 미의 여신 비너스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선미(船尾)는 금으로 장식하고, 은으로 만든 노를 저어 오는 배 안에서 그녀는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시녀와 신하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만남이 역사에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고딕(Gothic)시대가 역사에 빛을 심던 14세기 서양역사에는 태피스트리(Tapistry)가 예술로 각광받고 있었다. 프랑스어로 태피스트리를 의미하는 고블랭(Goblins)은 염색과 카펫 제작에 능숙한 가문의 이름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들의 후손이 빛을 잃자 프랑스 정부는 문화부서로 하여금 그 이름과 제품생산읗 잇게 했다.
프랑스의 제3공화국은 프러시아에게 짓밟히고 있는 나폴레옹 3세의 무능함에서 탄생했다. 4대 대통령 카르노(Sadi Carnot) 정부는 고블랭 공장에 타르수스에서 안토니를 맞이하는 클레오파트라를 태피스트리로 만들 것을 주문했다. 지금 프랑스 대통령이 거주하는 엘리제 궁에 “클레오파트라의 방”이 있게 된 이유다.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는 시대는 여러 형태로 유지해 오던 고전주의적 형상들을 사실주의로 바꾸던 시절이었다. 예술의 오브제는 객관적 물리적 묘사에서 이를 통해 내면적 추상을 끄집어내는 역할까지 떠안았다. 그림은 공간세계를 평면에서 구현해야 하는 작업이다. 공간을 평면화하는 작업은 실제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역사를 통해 미술가들은 원근법, 명암법 등으로 평면을 공간으로 착각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의 완성을 르네상스라고 불렀다. 오백여년에 가까운 시대를 누린 이 고전적 생각은 작품이 보이고자 하는 사실의 재현이 얼마나 정확한가 하는 문제보다 그 작품의 물리적, 형식적 완성도에 찬사를 보냈다.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통해 인간의 삶이 신을 위한 것으로 정해져 있다는 단순구조에서 존재 자체를 인간 스스로 고민해야 하는 실존의 개념이 더 해지자 기술적 완성도라는 객관적 개념의 예술은 예술이 아닌 기술로 전락해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 본질을 찾고자 이 세상의 모든 학문과 예술은 해체작업을 통해 도대체 그들이 쫓던 오브제들을 이루는 근본적 요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림은 색과 선을 구분하고 색은 가시광선의 극한치를 향해 나누어져 들어갔다.
통영(統營)의 전혁림(全赫林)은 그림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그는 시대적 책임에 민감했다. 그리고 그의 색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색인 오방색(五方色)에 근거를 두었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다섯 방향은 색으로는 각각 청색, 백색, 붉은색, 검은색, 그리고 노랑 또는 황색이다. 그는 충무의 바다를 통해 청색에 더욱 집중했다. 코발트블루(Cobalt blue)를 중심으로 흩어지고 엮어지는 다른 색들은 구상적 대상을 위해 쓰여지지 않는다. 충무와 한국이란 지명들이 지도상의 구상을 떠나 영혼의 모습으로 예고없이 캔버스에 뿌려진다.
일설에 의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외국수뇌부들과의 만남에서 예술에 관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잡아가는 것에 강한 느낌을 받았다 한다. 우리의 예술세계를 찾던 중 자신의 어린 시절이 점철된 모습을 보았다. 전혁림의 그림이었다. 그에게 청와대에 걸 그림을 주문했다. 그것이 전화백의 대표작 ‘통영항(한려수도)’이다. ‘통영’이란 말은 위대한 이순신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1593년 한산도에 설치한 우리 민족의 가슴에 살아 있는 군영이 아닌가? 색과 그림과 그리고 역사와 우리 민족의 철학 등등을 현대에까지 이어서 울며 웃고, 슬프면서 환호하는 인생의 모습 자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추상으로 모습을 택한 그 무엇 아니던가?
교육은 이러한 이야기와 관념을 내면화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다. 우리 나라는 경제적 발전을 위해 이 진정한 인간상을 포기한 채 몇 십년을 보냈다. 이 상태에서 길러지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는 도대체 무엇을 남겨야 할 것인가? 노무현정권에서 이명박정권으로 바뀌자 전혁림의 ‘통영항’은 청와대 인왕실을 떠나야 했다. 문재인정권이 청와대의 주인이 되자 그 그림은 다시 청와대의 인왕실에 걸렸다.
교육과 예술이 정치의 하수에 있다는 인식은 조상을 후손으로 인식할 정도의 괴이한 일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기성세대가 손대기 힘든 매우 변화된 모습일 것이다. 이를 자신만의 정체성으로 객관적이고 외생적인 오브제에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헤쳐나가는 인격자로 우리의 후손들을 길러내야 한다. 그것이 교육개혁이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기원전 49년 1월 10일 루비콘 강을 건넌 시이저가 한 말이다. 2000년도 더 지난 지금의 어른들이 도대체 추상적 오브제를 구체화하지 못한다면 그 과오를 어떻게 역사에 새길 것인가? 이 시대를 기성세대가 바꾸지는 못한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은 인격을 물질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그저 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 철학적 근거만이라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