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7(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교육개혁의 근본과 근거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악티움 해전으로 제2차 삼두정치(三頭政治)를 끝낸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이 공화정을 지지한다는 표시를 여기저기 심기 시작했다. 원로원의 권위를 예전대로 유지하고, 정무관과 호민관 등의 행정관료들과 지금의 국회에 해당하는 민회(民會)의 기능을 회복시켰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황제적 권위를 향한 발톱을 감추기 위해 공화정시대에서 집정관에게 주어졌던 “존경받는 자”라는 의미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을 자신의 호칭으로 삼았다. 그리고 스스로 시민임을 자처하되 “첫째 시민(Princeps Civitatatis)”으로 만족하는 듯한 제스쳐를 통해 원로원과 로마시민 모두를 안심시켰다. 기원전 27년 그는 이런 절차의 내면에서 실질적 권력을 독차지하는 행보를 마무리했다. 세계사는 이를 로마황제정치의 시작으로 기록한다.
갈바(Galba)는 어렸을 때 아우구스투스에게 다정함의 표시로 볼을 꼬집히며 권력의 맛을 좀 볼 인물이 되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로마의 최초 황제가문인 율리우스-클라디우스의 황제들을 많은 노력과 능력으로 보필했다. 율리우스 시이저의 후손으로써는 마지막 황제인 네로(Nero) 때에는 환갑의 나이였지만 히스파니아의 총독으로 임지에 나아갔다. 입지가 좁아지다가 결국 서기 68년 6월 8일 원로원에 의해 ‘로마의 적’으로 선포된 네로는 다음날인 9일 자결을 택했다. 율리우스 가문이 폐문되자 갈바의 정치적 입지는 느닷없이 황제와 연관지어졌다. 그리고 원로원은 네로를 갈음하여 갈바를 로마황제로 선포했다.
이로써 68년에서 69년에 걸친 1년이 좀 넘는 기간은 4 황제시대(Year of the Four Emperors)라는 혼란기로 구분되게 되었다. 갈바와 오토 그리고 비텔리우스라는 세 명의 황제들은 전쟁을 통해 짧은 통치기간과 자신의 목숨을 바꾸었다. 그리고 베스파시안에 의해 이 혼동이 끝나자 제위는 플라비안가문(Flavian Dynasty)으로 옮겨갔다.
보르게제 박물관으로 유명한 핀초언덕이 끝나는 곳에 포폴로 광장이 있고 옛 로마시로 들어가는 북쪽 관문인 포폴로 문이 있다. 이에 붙어 아우렐리아 성벽에 맞대어 있는 산타마리아교회는 라파엘로, 베르니니, 까라바죠, 핀투리끼오, 브라만테 등의 작품을 소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자리는 네로의 시신을 태운 장소로 사람들이 소문을 전하던 곳이었다. 밤마다 네로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 때문에 적이나 로마시민들을 두렵게 했던 이곳은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의 축복받는 터로 변했다. 네로는 이 교회에서 시작하여 보르게제를 품고 있는 핀초언덕에 묻혔다고 한다. 율리우스-클라우디아 가문에서 플라비아 가문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마디는 이렇게 몇 글자로 축약된다.
이렇게 언어를 절약한다고 해도 “삼두정치, 로마의 황제정, 아우구스투스, 정무관, 호민관, 민회,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우스, 4황제시대 등의 정치인문학적 단어들과 보르게제박물관, 핀초언덕, 포폴로 광장, 아우렐리아 성벽, 산타마리아교회 등의 지리인문학적 단어들, 그리고 르네상스를 결정짓는 라파엘로, 바로크의 시작인 까라바죠, 르네상스를 가져온 인물 중 하나인 핀투리끼오, 르네상스 건축에서의 최고봉인 브라만테 등의 인물인문학적 용어들이 내면에 있어야 그나마 적당히 이해가 가능한 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모두 암기의 대상으로 배운다. 따라서 이러한 항목까지 다 배우려면 암기능력이 특별한 극히 소수의 학생들이 학습의 주체여야 한다. 그저 인문학이라는 하나의 과목은 역사와 지리 그리고 미술과 음악으로 갈라놓고, 그중에 몇 안 되는 사실을 객관식 시험의 대상으로 삼고, 이를 조만간에 잊을 것이 온전히 예상되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온전히 예상하는 선생님들이 교육당국이 개발해 낸 완전히 잊혀지는 방법에 의지해 부정적 관심으로만 가득한 교육과정의 영역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교육은 이러한 행태에 붙여지는 이름이 아니다. 인간을 만들고 인간이 존재하는 환경을 인격화시켜 그 안에서 존엄성과 존재의 본질을 찾을 수 있는 정신적, 지식적 능력을 쌓는 일이다. 그것으로 사람은 스스로의 정신에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갈바가 제6대 로마황제로써 원로원의 추대를 받은 날이 1954년 전의 오늘이다. 교육의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근거를 이해하는 것을 생각이라도 해봄 직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