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6(목)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대한민국의 교육개혁, 그 특별한 의미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2023년의 해가 엊그제 떠올랐는데 벌써 설날 연휴마저 이미 꼬리를 감추었다. 새해가 시작될 즈음이면 일 년을 기준으로 마디를 정하는 대부분의 인간사는 마치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공전한 것이 새로운 시간을 창출해 낸 사건인 양 인식하는 듯하다. 그리고 많은 개념이 이를 기준으로 새로운 의미를 더하거나 적어도 그것에 따른 의식으로 보아야 할 욕구를 사람들에게 요구한다.
우리 사회는 ‘잘하고 있다’, 또는 ‘못하고 있다’라는 표현으로 정책이나 정치인들을 평가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것이 어떤 정치인의 국가와 관련된 행위일 수도 있고, 주변국들의 최근 정치 상황을 어떠한 방향에서 이용해야 할 것인가라는 시론(時論)일 수도 있으며, 혹은 국가정책의 시행에 대한 국민의 인식조사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는 여론을 형성하거나, 이러한 경향을 이용하여 정책 방향에 영향을 주는 의도들을 담으려는 시도들일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인 분석과 행태는 정치적 중립이 지켜진 상태일수록 그 통계량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의 정책이나 인물에 대한 국민여론조사는 그 객관성으로부터 유리(流離)되어 오히려 그를 주장하는 정치집단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느 정도의 지지율을 과시하는가 하는 문제를 역추적하는 역할로 존재 이유를 바꾸는 중이다.
사회가 정치와 모든 부분에서 밀접하면 두 가지 곤란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 하나가 바로 전문분야에 대한 정책 판단에 관한 경우이다. 세상의 역사적 흐름은 그 실수마저 장기적 발전을 위한 반성의 기회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오류가 정치적 몰가치성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경우 역사의 발전은 충분히 긍정적일 수 있는 결과 대신에 인위적인 오류를 생산해 낸다.
두 번째 문제는 더욱 근본적인 부분을 더듬는다. 정책이니 정책의 실현이니 하는 말들이 대부분 ‘교육’의 본질에까지 물리적인 기술과 함수관계를 가진다고 판단해야 국민의 눈으로 확인되는 결과를 생산해 낼 수 있다고 정치가들은 믿는다. 그리고 국민이 지지하는 정책은 이를 생산한 세력을 위해 자기들의 정치적 이득을 총선(總選)이나 대선(大選)이라는 결과에 긍정적 영향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전문성의 발휘 문제를 벗어나서 인간이 삶에 있어서 정치적 결정과 관련된 논쟁이 ‘존재론(存在論)과 인식론(認識論)’의 근본에서 만났을 때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국민의 정치적 성향과 지지도와 관련된 부분에 대한 고려(考慮)로 인간의 소양(素養)과 본질을 논 할 수 있는 정책을 담당하는 분들과 정치인들이 정책의 결과를 정치로만 해석하게 두지 않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아직 우리나라의 정치가 손을 뻗어본 방향이 아니다. 교육이 사회제도를 위한 모든 생성 능력의 본원(本源)을 인간 자체에 두고 오랫동안 정책과 인간의 철학적 존재 자체를 고민한 교육자들이 만들어질 수 있어야 우리는 미래의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교육’이란 객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방법적 문제를 그 상황에 맞게 고민하게 할 것이며, 정치적 성향 이전에 교육이란 위대한 어휘가 주는 본질적 아름다움이 모두를 유혹할 것이다.
2023년은 적어도 이러한 부분의 연구가 교육적 성과로 인정되는 순간들을 만들어 낼 기회를 통해 다양한 시도가 전개되기를 가슴 깊이 바란다. 적어도 지금까지 수년 동안의 교육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기회는 물질과 숫자로 표현되는 방법들을 교육의 성과로 치부하는 정치력을 발휘한 시대였다. 아이들의 인격적 본질을 미래를 위한 철학적 흐름으로 유도하지 못하고 학년과 과목과 진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단시험과 그 점수로 우리의 아이들을 기계적으로 계급화하여 이들이 공부나 학업 체계보다는 ‘게임’이 늘 그 최상위에서 존재하는 시스템만을 인식하게 강제해 왔다. 2023년에는 우리 아이들이 인식의 최상위에 ‘삶의 본질’과 자신의 삶에 주어진 철학적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한 시도를 두도록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