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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Charles) 1세와 혁명 전선(前線) 학교 및 사회교육개혁

2023. 3. 27(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찰스(Charles) 1세와 혁명 전선(前線)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1642년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죽음으로 문을 열고 뉴턴의 탄생으로 막을 내린 역사적인 해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국 청교도혁명의 해이기도 하다. 르네상스가 인류에 남긴 유산 중 하나는 “종교개혁”이다. 역사는 르네상스적 프로테스탄티즘의 기원(起源)으로 영국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를, 그리고 그 사상적 결과물로 1517년 독일 ‘루터(Martin Luther)의 95개조 반박문’과 1536년 프랑스 칼뱅(John Calvin)의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를 지적한다. 그 결과로써 바로크(Baroque)가 탄생했고 이는 역사상 최초의 신교국가를 ‘플랑드르’지역에 네덜란드란 이름으로 허락했다.


1603년 ‘잉글랜드’와 결혼한 엘리자베쓰 여왕이 세상과 이별하자,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 헨리 8세가 그녀의 어머니 ‘천일(天日)의 앤(Anne)’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종교적 수단으로 만든 ‘영국국교회’의 직접적 인물들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에게 시집갔던 헨리 8세의 누나 마거릿을 통해 잉글랜드의 튜더왕조가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조로 대체되었음을 또한 의미했다. 이로 인해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제임스 1세’로서 잉글랜드의 왕을 겸하게 되었다. 제임스 1세의 카톨릭 신앙은 왕권이 ‘창조주’와 ‘국민’사이에 존재한다는‘왕권신수설’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찰스 1세는 아버지의 권위적 신앙을 이어받기에는 어려운 세상에서 왕좌에 앉았다. 잉글랜드에서는 이미 ‘국교회’가 카톨릭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고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게 정복당한 아픔을 프랑스로부터 위로(慰勞)받으며 캘빈주의에 친밀해져 가고 있었다. 찰스는 신교도들로 가득 찬 영국의회를 버리고 아직 신의 대리인으로서 ‘군주(君主)’를 인식하는 농민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결과는 영국의회의 권위를 더욱 높였고 의회지도자로 크롬웰(Oliver Cromwell)의 등장을 허용했으며 종교내전을 통해 왕 자신이 의회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는 지경으로 달려갔다. 이것이 영국의 ‘청교도혁명’이다.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역사상 최초의 신교국가(新敎國家)가 탄생한 바로 다음 해 1649년, 헨리8세가 지은 궁전 화이트 홀(Whitehall)의 연회궁(Banquetting House)앞에서는 역사적인 연회가 준비되고 있었다.


1월의 추위에 떠는 찰스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그의 죽음을 연회(宴會)로 즐기려는 크롬웰의 의도는 자신의 당당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남기려는 찰스에 의해 좌절되었다. 따뜻한 옷을 여러 겹 입은 당당한 모습으로 찰스는 단두대 앞에 섰다. 유언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반한 행동을 저지르는 의회를 국민들에게 직접 고할 찰스의 기회 역시 크롬웰의 판단으로 저지되었다. 사형집행이 끝날 때까지 군악대는 그 누구도 찰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웅장한 연주를 진행했다.


1642년 찰스는 의회가 장악한 런던을 버리고 뉴턴의 부모가 사는 울쏘프(Woolsthorpe-by-Colsterworth)로 향했다. 군주의 처지에 분노한 무리 중에는 아이작 뉴턴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 시니어’가 있었다. 그는 아내가 임신중에 있었는데도 국왕을 따라 무기를 들고 나섰다. 그리고는 큰 소득 없이 이 세상과 이별했다. 그 해 12월 크리스마스는 뉴턴에게 그저 유복자(遺腹子)란 지위를 선물했다.


왕권신수설을 공고히 하던 제임스 1세가 1625년 3월 27에 세상과 하직했을 때 왕권을 이어받은 찰스 1세는 25세의 혈기 왕성한 젊은이였다. 그는 왕좌에 앉으며 자신이 언젠가 궁정의 연회장에서 사람들의 환호와 악단의 연주속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가능성조차 가늠할 수 있었을까? 혁명의 불길이 운명을 태우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못한다. 그것이 현재의 우리이고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이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저리 두고도 400여년 전의 찰스 1세의 오늘을 보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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