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1519년 마젤란의 함대가 세비야 항을 떠난 날입니다. 교육개혁의 방향성과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2021. 8. 10(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마젤란(Magellan) 대모험과 교육개혁의 방향성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서양이 르네상스로 바쁜 1500년 전후는 전 세계가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각축장이었다. 이 두 나라는 지구 북쪽의 그린란드에서 지금의 브라질을 지나는 경도 46도 37분을 중심으로 그 동쪽을 포르투갈이 지배하고 그 서쪽은 스페인이 지배한다는 매우 콧대 높은 조약을 스페인의 또르데시야스(Tordesillas)에서 1494년에서 맺었다. 이로 인해 아메리카에 대한 지배권은 브라질만 빼 놓고 거의 스페인이 가져갔고, 당시에 ‘동인도제도’를 포함하는 아시아에 대한 지배권은 포르투갈에게 돌아갔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통일 스페인의 왕이었던 칼 대제에게 있어서 동쪽으로의 항해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몰루카제도에 도달 할 수 있다면 또르데시야스 조약의 의미를 반감시키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터였다.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는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동쪽으로 가는 항로를 이미 독점하고 있는 터에 대서양이라는 망망대해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나아가 동인도에 도착하겠다는 위험천만한 마젤란(Magellan)의 계획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되는 마젤란의 요구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마젤란이 칼 대제를 찾았을 때 황제는 마젤란의 요구를 들어줄 모든 준비를 마음속에 끝낸 뒤였다.
마젤란은 고향을 버리고 ‘세비야’로 이주했다. 싼루카르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과달퀴비르(Guadalquivir) 강은 스페인 내에서 유일하게 선박이 항해할 수 있는 넓고 깊은 강이다. 마젤란은 스페인의 무적함대 소속의 배와 군인들을 포함 5척의 배와 270명의 선원으로 항해의 물적 그리고 인적 요소들을 채웠다. 1519년 8월 10일 그는 이 대규모의 원정단의 대장으로써 세비야 항을 출발했다.
태평양을 건너 지금의 필리핀 세부(Cebu)에 도착한 마젤란은 섬의 왕이던 라자 후마본(Raja Humabon)과 친교를 다지고 인근지역의 지도자들까지 기독교로 개종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동쪽 해안에 딸린 작은 섬에 불과한 막탄(Mactan)과 그 지역의 왕인 라푸라푸(Lapu-Lapu)를 무력으로 개종시키기 위해 벌인 막탄전투에서 마젤란은 전사한다.
항해가 가능했던 단 한 척의 배는 엘카노(Elcano)가 선장인 빅토리아호(Victoria)였다. 엘카노는 선원 중 남은 17명의 유럽선원들과 4명의 인디언원주민을 태운 채 쓸쓸히 그러나 처음으로 지구를 완전히 돌았다는 위대함을 역사에 새기면서 1522년 9월 6일 싼루카르항으로 돌아왔다.
교육의 의미를 생활을 위한 안정적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사회구조의 일부분으로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것이 교육인 시대는 이미 지난 세기에 마감했다. 그 어려운 전쟁과 가난을 환경으로 하고서도 지난 세기의 사람들은 꿈을 가졌고 그것을 이루어 내었다. 그리고 자기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들을 이루어 다음 세대에 선물로 남겼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이들은 왜 꿈을 잃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까?
그 이유는 바로 꿈을 가지지 않도록 설계된 사회구조 때문이다. 더 이상 아이들은 큰 꿈을 꿀 수도 없고 꾸어보았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의 구조에 휘말려 표류하고 있다. 물리적 조건이 만족의 척도가 되어 그들은 이전 세대들이 가져보지 못한 온갖 희한한 것들을 손에 움켜쥐고도 그것으로 음식을 탐하고, 눈앞의 일들에 분노하고, 잔인한 장면들에 교감하며 그것을 인생을 통해 이룰 수 있는 목표들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진정 그들의 탓인가? 인간은 유전적 환경과 생활적 환경을 통해 인격과 인성 그리고 정체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것들이 한 인격의 존재가치와 그 크기를 결정한다.
1519년의 오늘 마젤란은 콜럼부스가 스페인의 4대지역의 대표들에 들리워 공중에서 편히 쉬고 있는 도시 세비야를 출항한 날이다. 그의 인격과 신앙과 물질적 환경을 논하는 것은 그가 품었던 세계일주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도전할 호기심과 열정을 논하는 사람에게 의미없는 일들에 불과하다. 지금 한국에서 교육개혁이라는 것이 가져야 할 방향과 의미는 그래서 중요한 일이다. 교육개혁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미래의 이 땅의 주인공들이 거대한 창조적 도전에 흥분할 수 있도록 설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