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26(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보편논쟁과 교육개혁의 철학적 해석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이탈리아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보편논쟁’이 철학과 신학의 주요과제였던 시대를 배경으로 자신의 철학과 종교학 그리고 역사적 지식을 하나로 묶은 뒤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이란 기호학적 해석의 대상이 될 이야기를 내어 놓았다. 종교란 본래부터 신에 관한 기록이다. 신은 인간과는 다르며 그 상이(相異)함의 정점은 인간이 자연에 복종하는 것과 달리 신은 초자연적이라는 것에 있다. 서양 중세의 시작은 기독교의 종교성의 확립과 시기적 관련을 가진다. 기독교의 기초이론이 성립하는 동안 교부(敎父)들은 자연히 예수의 행적을 신적(神的) 존엄성에 근거해 해석했다.
그리고 이 시기가 지난 후에 수도원 운동으로 더욱 조직화 된 시설, 즉 스콜라(Schola)에서 신학을 논리적으로 배울 수 있는 시기가 되자 신의 본질인 ‘초자연성’과 인간의 합리적 생각인 ‘자연석 논리성’은 마찰하거나 화합을 추구해야 했다. 세상의 권력의 정점에 종교지도자인 교황이 있는지 세상의 지배자인 황제에 있는지의 문제에서부터 도미니쿠스파의 신의 존엄성에 대한 관심과 프란체스코파의 자기성찰에 대한 필요성이 우선적 지위를 놓고 대립했다, 그리고 플라톤의 이데아(Idea)론을 수렴하여 결국 추상적 보편이 중요하다는 생각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실제적 존재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대립되었다.
실재론(實在論)과 유명론(唯名論)의 중심으로 스콜라 철학은 기독교신앙으로부터 거리를 둔 모든 분야에 까지 연결되고 이어져 갔다. 추상적 개념의 보편적 성질이 실재하는가 하는 논쟁은 사실 인간의 철학이 시작되던 시기부터 인간의 사고(思考)가 취하는 흔적들이었다. 피타고라스는 ‘직각삼각형’을 현실적으로 그릴 수 있는가하는 고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물질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사람이 설정한 ‘개념’속에서만 존재하며 구체화된 상태들은 그 물체가 갖는 개념 자체의 체화(體化)가 아니라 그저 숫자로 표현될 수 있는 비율 내지는 크기의 현실화라고 인식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본질은 물이나 공기 등의 물질이 아니라 ‘수(數)’라는 원칙을 원리로 하여 생긴 것이어야 했다.
도미니쿠스파의 수도원에서 발생한 사망사건에 프란체스코파의 수도사가 파견되는 긴장으로 시작된 <장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이란 금서(禁書)을 읽고 싶어 하는 호기심을 신성모독이란 기호로 해석하는 인간의 실재론적 의식이 등장한다. ‘금서’라는 개념이 실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유명론적 생각은 영국의 수도사인 오컴(Ockham)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의 경험론은 장황한 설명이 필요한 개념일수록 진리적 명제로부터 멀어진다는 ‘면도날(Ockam's razor)'이론을 성립시켰다.
당시 교황은 프랑스 왕의 지배하에 있는 아비뇽에 있으면서도 탁발이나 일삼는 프란체스코파의 철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모두 하나로 계통화 되어야 종국에는 하나의 존재인 창조주에 연결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요한 22세가 ‘오컴’에게 파문을 내리자 교황이 아닌 자신이 세상권력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신성로마황제인 바이에른의 루이4세는 오컴을 지지함으로써 교황의 권위를 실추시켰다. 오컴이 아비뇽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보편성’은 인간의 편리성에 의해 만들어진 이름만 있는 개념인가 아니면 모든 존재들을 계통적으로 확인하는 실재적 개념인가? 그리고 인간은 이 중 어느 개념을 확신하고 그를 바탕으로 타인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행동을 해석적으로 내어 놓을 수 있는 존재인가?
우리나라의 교육이 삶의 방법을 물리적으로 찾는 기술로 전락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인간 존재의 고귀함은 그가 누리는 직업의 안정성과 경제의 규모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인생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 설정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개혁이란 멋진 이름을 마음껏 내 세워도 자신의 인생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정체성’문제로부터 먼 곳에서만 유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철학과 논리를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조건들은 요즘 세상에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 때라는 단상이 오컴이 아비뇽 교황청의 문을 나서던 날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