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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체제 (Wiener System)와 교육개혁 학교 및 사회교육개혁

2020. 6. 9(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빈 체제 (Wiener System)와 교육개혁"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18세의 슈베르트(Franz Schubert)가 2만 마디가 넘는 악보를 폭포처럼 쏟아내느라 바빴던 1814-15년의 비엔나에서 오스트리아의 정치를 책임지고 있는 재상(宰相)으로써 메테르니히(Metternich)는 과거의 영광이 모국(母國)을 완전히 떠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나폴레옹만 아니었더라면 '신성로마제국'은 형식적 개념으로라도 유럽의 정신적 유산인 '로마'를 잇고 있을 터이었다. 따라서 합스부르크가의 적자인 로트링겐가문이 나폴레옹과의 조약비준을 위해 퐁텐블루(Fontainebleau) 궁의 계단을 밟고 올라갈 때 그의 감회는 유럽의 다른 왕들과 같을 수 없었다. 


나폴레옹전쟁에 대한 응징과 오스트리아가 유럽의 중심에 있음을 내외에 보여 주려는 의도는 먼저 보나파르트(Bonaparte) 가문이 본래 프랑스의 점령지인 코르시카 섬에 바탕을 둔 보잘 것 없는 집안임을 통찰해야 했다. 보통의 유럽 왕가에게는 있는 고귀한 혈통이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나폴레옹전쟁에 대한 메테르니히 체제의 정의는 신으로부터 천부적 지배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의 반발이며 규칙을 벗어난 인정받을 수 없는 방종으로부터 오는 보통사람들의 무질서에 ‘자유’라는 이름을 준 것에 불과했다. 


메테르니히는 오스트리아가 중심이 되어, 유럽 본래의 군주제를 질서의 축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르시카의 근본 없는 가문이 신성로마제국을 세계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스스로 유럽의 황제가 되려는 야망은 결국 600명 정도의 질서유지인원을 가지고 엘바(Elba)라는 작은 섬만 통치할 만큼으로 축소 당할 일이었다. 이아손이 이끄는 아르고호 원정대가 흘린 땀방울을 아직 안고 있는 이 섬에서의 권리조차 '100일 천하'라는 희극을 무대에 올린 대가로 박탈당한 채 나폴레옹은 대서양의 고도(孤島) '세인트 헬레나'로 이송되었다. 이로써 군주제로의 회귀가 온전히 순탄해졌다는 판단을 가지고 유럽의 군주들은 '비엔나'에서의 파티를 끝내고 하나 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세계 역사에서 혁명의 시대라는 용어가 뚜렷한 모습을 드러낸 경우로 근대시민혁명을 빼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독립혁명으로부터 시작된 구체제(舊體制)에 대한 혐오는 1848년 시민계급의 힘이 군주들의 그것보다 더 정당하다는 인식을 추종했다. '시민'의 정의는 본래적으로 자연법사상을 통해 정의된 천부인권(天賦人權)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메테르니히 체제가 가진 군주제의 옹호로 다시 돌아가기를 거부해야 논리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보나파르트 가문과 나폴레옹의 정신을 '자유주의'로 규정해야 했다. 


1848년 근대혁명의 완성을 위해 오스트리아마저도 3월 혁명의 소용돌이와 새 시대의 사상과는 대척점에 있는 메테르니히의 퇴각을 하릴없이 허락해야만 했다. 정치에 훈수를 둘 수 있는 계급으로 '시민'이 등장하면서 그들은 언론의 자유를 뽐낼 수 있었고 이는 동시에 평등의 확보와 의사소통의 수단인 언어의 공유범위를 설정하는 후속적 사건을 필요하게 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같은 감성을 공유할 낭만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이 족주의와 낭만주의의 의미를 확실히 했고 곧 민족주의 운동과 민족국가 성립에 대한 욕구를 공론화 시켰다. 


사람의 존재에 대한 선천적 차별의식이 세상을 유지시킬 수 있는 시대가 성립되려면 지식과 사고와 감성의 모든 측면에서 특별한 지배성을 확보하는 계층이 있어야 한다. 지식과 사고의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가진 사회에서 이런 일은 언제나 조장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교육과 관련하여 풀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이 상존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인간으로써의 본질에 교육이 의미를 투영하는 대신 물적 생산요소에 아이들을 몰입하게 한다.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기존의 교육해석을 추종하는 것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 '빈 체제(Wiener System)'가 확립을 선언하고 회의를 끝 낸 날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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