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9(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자율형사립고는 폐지되어야 하는가?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 재지정 문제가 전국을 흔들고 있다. 오늘은 서울을 마지막으로 전국 자사고에 대한 재지정 평가가 완료되는 날이다. 탈락을 모면한 학교들의 안도의 한 숨과 모면하지 못한 학교들의 반발이 남아있는 2019년도의 교육계 소식에 사람들의 눈길을 머물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새로운 교육정책에 골몰하던 이명박 정부는 교육수요의 다양성이란 말에 국민의 관심이 쏠릴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해 내었다. 대학과 학과선택의 문제까지도 각자의 적성을 무시하고 수능점수에 맞추어 전국의 학생들에게 하나의 줄서기를 강요하는 우리나라에서 교육수요가 다양하다는 말은 교육당국이 자신의 성과를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 관심을 끌 수 있는 신선한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자사고가 설립되자마자 우리나라교육의 처참한 경직성을 완화하여 교육수요에 탄력성을 줄 것이라는 그들의 예상은 너무도 당연히 빗나갔다. 왜곡된 교육현실을 더욱 고착화함으로써 찾아 낸 좋은 대학교를 들어가기 위한 유리한 방법과 그 것이 창출하는 시장을 국가가 주도해서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었다.
공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몰이에 구조적인 노력을 해 온 결과 얼마 남지 않게 된 공부습관을 가진 아이들을 특목고라는 명목으로 또는 자사고라는 새로운 명목으로 선별하는 것은 나머지 학교들에 대한 자발적 교육포기의 강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도 예상하기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정치적 지지방향이 현 정부를 택했다. 현재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의 대표적 공약사항 중 하나는 바로 자사고의 폐지이며,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이다. 그러나 자사고 폐지 및 일반고 전환문제는 문제의 본질과 발전과정에 대한 인식의 합리성을 전제로 논해야 올바른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일이다. 자사고는 폐지되어야 하는 것일까?
누구나 알고 있듯이 현재 교육 현장에서의 문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실에서 시행되는 교육시행의 형태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수위(首位)를 차지한다. 아이들의 집중력과 관계없이 진행하도록 배려된 진도위주의 수업이 그 원인 중 하나이다. 이러한 문제는 교사들이나 학생들의 실력이나 학습목표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학교공부에 관한 정의와 필요성을 왜곡하여 그들에게 주입하는 시스템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자사고를 세움으로써 해결하려고 했던 교육수요의 다양성 문제는 이미 왜곡된 ‘교육’에 대한 정의에서 도출된 기형(奇形)이었다. 자사고관계자들이 자사고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교육에 대한 의식과 정의가 시대의 왜곡을 바로잡을 만할 것이 될 수 없었을 것이고, 반대로 자사고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또한 그 반대의 의식이 별안간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사고가 있어야 우리나라의 교육시장의 비탄력성이 해결될 것이라는 의견이나, 자사고가 교육탄력성을 왜곡하는 요소 중 하나라는 의견이나 둘 다 그들의 생각만큼 자사고의 존재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자사고가 일반고로 편입되었다고 해서 자사고학생들의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크게 상처받지도 않을 것이고 자사고가 유지된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실질적 교육환경이 크게 잘못되지도 않을 것이다. 자사고 재지정 논쟁이란 교육의 본질로부터 유리된 채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기술적인 방법 중 자기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것에 교육이 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처럼 위장하는 방법만을 놓고 설왕설래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어떤 결론이 나던지 자사고의 문제는 그저 그 정도의 의미 이상을 가지지 못한다. 이제라도 우리나라 교육의 본질을 향해 치열한 논쟁을 주고받는 일에 사람들의 안목이 미치기를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