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3(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미국의 독립과 자유의 역사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프랑스 최고의 보물인 모나리자가 전시되어 있는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 6번방이 위치한 구역은 루브루 초대관장을 지냈던 드농 남작(Le Baron de Vivant Denon)을 기려 드농 구역(Denon Wing)으로 명명되었다. 6번방의 용마루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쎄느강(la Seine)을 건너면 '에꼴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라는 이름으로 세계 미술계를 호령하는 프랑스국립예술학교가 있다. 그리고 그 블록(block)은 '자꼽'가(街)(Rue Jacob)'로 경계가 지어진다. 자꼽가의 56번지, 지금은 사라진 요크호텔(Hotel d'York)에서 1783년 9월 3일 미국과 영국은 미국독립전쟁의 종식을 선포했다.
현대정치제도의 모범으로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는 고전기 그리스(Classical Greece)의 직접민주주의는 도시국가인 폴리스(Polis)라는 작은 규모의 집단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모집단이 큰 경우 이로부터 도출한 모수(母數)가 그 집단의 표본으로부터 얻은 통계량(統計量)보다 오히려 신뢰도가 떨어지듯이 큰 정치집단에서는 직접민주제가 왕정이나 간접민주제, 즉 대의제민주주의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리하여 표본이 모집단보다 우월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정치에서 구현한 것이 왕정(王政)이고, 그 시스템에 국민의 의견을 중심에 놓는 것이 간접민주제이다. 고전기에도 시행되었던 직접민주제와 공화정이라는 정치체제가 중세를 거쳐 근대국가에 이르기까지 왕정에 매몰된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기인하며, 또한 근대의 민주주의가 대의제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다수의 국민을 다스리는 가장 효율적 방법은 왕이 국민을 직접 다스리는 것이라는 의식과, 신에 의해 주어진 권력의 향유자이자 동시에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현명함을 교육받은 계급은 왕 이외에는 없을 것이란 주장을 왕정옹호자들은 혁명전야(革命前夜)의 긴박함 속에서도 자신들의 계급유지에 이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진정한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존재가치를 추구할 자유가 사람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있다는 생각은 자본의 축적을 통한 산업자본의 형성이 새로운 정치시스템을 지지할 때가 되어서야 현실화될 수 있었다.
그 과정이 자유를 가진 보통사람들인 '시민'을 잉태했다. 이들은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자유의 자급(自給)을 통해 자신을 직접 다스리는 주권자(主權者)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시민혁명'을 일으켰다. 그 시민들이 도모한 국가 시스템이 미국이었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단순히 영국으로부터 미국이 독립을 쟁취한 사건이 아니다. 영국의 왕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스스로의 정치체제를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요구였으며, 그로 인해 역사가 왕의 피지배자로써의 '국민'을 스스로의 자유를 결정하는 '시민'으로 이동하게 한 사건이었다.
교육의 역사는 교육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제시한다. 교육을 '안정적 직장'을 얻는 물리적 방법으로 해석하면 역사가 사람들의 피로써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키우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은 사람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자유의 주체로 인식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때의 자유는 물리적 육체적 자유에 가까운 개념이 아니다. 존재의 의미에 대해 적어도 자기 자신의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갖고자 했을 때 이를 도모할 기반을 주는 일을 교육이라고 하며, 총과 칼로써도 제압할 수 없는 자유의지를 갖게 하는 수단을 교육이라 하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역사공간에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의 제공을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다. 교육의 정의를 올바로 알면 교육의 구체적 방법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은 교육의 정의와 존재가치가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미국독립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났음을 선포한 날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자유를 향한 의지는 그 어떤 장해(障害)도 극복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육이 그 본질을 바탕으로 스스로가 가진 강인한 힘을 증명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