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1(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기호(記號)로써의 언어와 한국의 교육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인간을 실질적으로 구분함에 있어서 말과 글은 중요한 기준이다. 최초 인간의 개념은 직립보행, 불사용, 언어사용이란 세 가지 표현으로 압축된다. 그러나 이들 용어들은 직립보행을 통한 두뇌용적의 확장과 불사용에 의한 구강구조의 변화를 언어사용을 위한 부수적 조건으로 파악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인간과 다른 동물들과의 구별은 ‘언어사용’으로 최초의 기준을 삼는다. 그런데 인간역사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문명의 발생이다.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를 논하기 이전은 ‘선사시대(先史時代)’라는 표현으로 그 긴 시간이 일축 당한다. 문자의 발명은 말을 할 줄 아는 인간의 두뇌에 혁명적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상대적으로 짧은 문자의 시대는 역사라는 개념을 위해 온전히 바쳐졌다.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고 그에 관한 생각을 계측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말과 글이라는 무기를 가지게 되자 다른 동물들과의 경쟁은 너무나 허무하게도 인간에게만 유리하게 흘러갔다.
말과 글의 힘은 바로 오감(五感)으로 인식할 수 있는 물리적인 대상을 뛰어 넘어 인간의 인식능력을 추상적 사고에게 까지 확장할 수 있게 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 인식의 결과들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언어를 바탕으로 해서 세운 것에 있다. 인식의 공유는 인식대상에 관한 의미가 공유자들 사이에서 유사성을 가질수록 용이해 진다. 같은 소리나 글의 의미에 대해 사회구성원들마다 인식하는 바가 다르다면 그만큼 의사소통은 어려워진다. 따라서 사회의 발전은 대상에 대한 인식의 정도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통적으로 존재하는가 하는 사실에 있다.
그런데 이 인식의 공통성이 진행될수록 그 객체의 본질이 인간사회의 공통적 인식으로부터 이반(離反)하는 일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어떤 객체에 대해 자신들이 인식하는 것으로 기준을 삼는데 언어가 가리키는 그 객체의 본유적 존재가치와 인간의 인식이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향은 물질적이고 구상적인 객체보다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인식의 대상에서 더 활발하다. 하나의 사물이 인간의 인식의 대상이 되는 동안 붙여지는 언어적 표현들이 순전히 기호로써의 가치로 근사(近似)하는 이유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 본래의 가치창출을 책임지고 있는 말과 글의 기호성에 대해 사람들은 일상의 삶에서 그 존재를 느끼기 힘들다. 언어적 표현 자체에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본유적 존재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편안함을 떨쳐버리는 일을 사람들은 고통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언어를 통해 진화의 서열에서 당당히 수위(首位)를 차지한 인간이 바로 그 말과 글에 그것이 표상하는 객체의 본질 자체를 투영한 탓에 결국 인간은 진화의 최댓값을 스스로 설정한다. 우주의 존재방식 전체를 아우르는 언어가 필요해서 이를 만들면 그 말은 우주의 존재방식 전체를 이해한 사람이 아니라도 쉽게 쓸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를 나타낼 수 있는 용어를 만드는 순간 그 용어는 그를 사용하는 사람들로부터 실질성이 부여되었다고 착각을 일으키는 기호적 가치만을 갖는 용어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우주의 존재방식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를 논할 수 있는 대상이 되게 함으로써 그 가치를 잃는다. 노자(老子)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란 말로 이를 담담하게 표현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敎育)이란 단어는 좋은 상급학교 진학과 취직의 용이함, 그리고 육체적 편안함을 보장하기 위한 수입을 안정적으로 얻는 행위로 기호화되어 있다. 교육의 본래(本來)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 말의 의미를 확정하려는 노력이 이 시대의 교육시스템을 왜곡시키고 있다. 기호적 인식의 말미(末尾)가 철학의 부재를 드러낼수록 그 의미에 더 집착하는 이 나라의 교육이 안쓰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