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15(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그레고리우스력(曆)과 교육개혁의 시기(始期)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우리가 사는 지구가 자전(自轉)을 중심으로 하루를 계산할 수 없는 이유는 태양으로부터 빛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스스로 도는 것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360도가 온전한 한 바퀴이지만 태양을 공전(公轉)하면서 원래의 자리로부터 하루의 시간만큼 위치가 이동하기 때문에 태양에서 보는 지구의 한 바퀴는 약간 다르다. 지구의 어느 지점에서 해가 중천(中天)에 뜨는 것을 정오(正午)라고 하면 지구가 정확히 한 바퀴를 돈 후에는 하루의 공전거리 만큼 원래의 자리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정오는 그 이전 날의 지점에서 해를 중천에 둘 수 없다. 약 1도만큼 더 돌아야 지구는 같은 지점에서 같은 각도로 햇빛을 맞이한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를 고려할 필요가 없는 먼 항성(恒星)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구의 자전은 360도 이지만, 태양에서는 지구의 같은 장소를 관찰하려면 지구가 361도를 돈 이후에야 가능한 일이 된다. 항성일(恒星日)과 태양일(太陽日)이 다른 이유다. 먼 항성에서 보면 지구의 1년은 366번의 자전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태양을 기준으로 보면 지구의 1년은 365일이 된다. 지구가 360도 한 바퀴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 즉 항성일은 23시간 56분 정도이다. 따라서 24시간을 돌면 지구는 온전한 한 바퀴에서 하루에 4분 정도를 더 돌아 1년 동안 한 바퀴를 더 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계절을 기준으로 보면 즉, 매년 같은 날에 태양의 위치가 같은 위치에 오게 하려면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예를 들어 춘분점(春分點)을 기준으로 지구가 정확히 태양을 한 바퀴 돌아서 그 자리에 다시 오려면 365일을 달리고도 평균 5시간 48분 45초 정도를 더 공전해야 한다. 그런데 하루의 정해진 시간마다 태양의 위치를 같게 하려면 1년에 365일을 두고 24시간으로 하루를 이루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사건 사이에 발생하는 시간차이를 1년 평균 6시간으로 계산한 다음 4년에 하루를 윤일(閏日)로 추가하여 2월에 넣음으로 이를 메운다.
6시간과 5시간 48분 45초 사이의 간격은 오랜 시간이 지나자 무시할 수 없는 범위를 보이기 시작했다. 1년에 11분 15초의 차이는 128년 동안 축적하니 24시간이 되었다. 즉 1년을 365일로 하고 4년에 한 번씩 윤일을 넣어도 128년에 하루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었다. 그레고리우스 13세 교황이 등극했을 때 이 차이는 율리우스력과 천체의 운행을 약 열흘 정도의 이격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1582년 2월 24일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같은 해 10월 4일 다음날을 15일로 하여 열흘을 사라지게 한다는 교황칙서를 발표했다. 로마력에서 시작하여 율리우스력을 거치며 천체의 운동과 달력을 일치시키려는 역법(曆法)의 발전은 결국 그레고리우스력을 만들었던 것이다.
율리우스력이 기원전 47년에 만들어진 것을 보면 이미 인류는 2000년도 훨씬 이전에 천체의 운동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는데 상당한 지식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위대한 발전의 여정이 과학의 내면을 치장하는 동안 사람들은 이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외면을 치장했다. 그것이 바로 교육의 왜곡을 가져왔다. 과학의 발전과 그 결과가 주는 물질적 달콤함을 누리느라 그러한 사실이 가볍게 만드는 존재의 가치를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했다. 물질적 세상에서 물질이 주는 풍요의 크기가 ‘자유’의 크기로 인식됨으로써 더욱 더 본질적 자유를 잃어가고 있는 사실에 대한 책임을 누구도 지려하지 않는 동안 물질의 발전이 가져 온 존재의 가벼움이 세상을 또다시 계급으로 분화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만들어진 세상에서의 자유를 찾기 위해 가치적 자유를 잃어가는 세상에서 교육은 어떻게 본질을 찾을 수 있는가? 교육개혁의 출발은 이 질문에 답을 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