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7(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P 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P 선생님! 저는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툭하면 잠만 자던 학생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제가 앉던 걸상, 그리고 그 앞의 책상, 같은 반 친구들, 그리고 교탁을 두고 저희와 마주 서 계시던 선생님, 수십 년 전의 어느 가을날이 생각납니다. 아이들이 대부분 공부보다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단풍잎과 이를 흔들던 바람에 괜한 마음으로 골몰할 때, 과학과목을 맡으셨던 선생님은 수업내용을 중단하시고 때 아닌 인생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계절의 오고 감 속에서 이번 가을도 왔다느니, 인생이란 결국 시간의 흐름 속, 매 순간에서 ‘무엇을 했는가?’로 정해진다느니, 선뜻 이해하기 힘든 말씀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한꺼번에 여러 개의 계단을 오르려고 한단다. 하루에 한 계단씩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아. 그런데 그렇게 열흘이 지나고 나면 열 계단을 올라가 있지. 그러나 대부분은 이것을 성공으로 보지 않아. 그래서 한꺼번에 열 계단을 오르는 방법에 몰두한단다. 열 계단씩 오르는 일은 발견된다 해도 힘이 들어서 계속할 수가 없거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속임수에 불과하단다.
그저 가을풍경 중 하나로 흘러가버린 그날, 그 교실에서 선생님이 하셨던 이야기는 세상을 살면 살수록 그저 진리 중의 진리임을 점점 명확히 스스로 증명해 나갔습니다. 저의 인생이 마치는 날까지 선생님의 그날, 그 표정, 그 이야기는 저의 입을 통해 저의 제자들과 자식들을 통해서 역시 앞으로의 후손들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요즈음 주변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대부분 선생님들이 ‘스승’으로의 자존감을 세울 수 없는 이 시대의 사회적 환경 때문이라 합니다. 문득 그 아름다웠던 선생님과의 시간과 제가 선생이 되어 가르친 아이들과의 행복했던 추억들이 뇌리를 지나칩니다. 그 때와 지금은 어떤 세상환경의 차이가 있는 걸까요? 하나하나의 순간들을 면밀히 기억하려 노력해 봅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저의 인생을 깨우치게 했던 그 아름다운 가을날의 회상에서 더 깊이 들어가 평소 조용하고 화를 잘 내지 못하던 선생님을 그 교실에 다시 세워봅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시간을 마음대로 자고, 떠들고, 집중하지 않는 것으로 낭비했습니다. 선생님들은 각자의 성격과 맡은 과목의 성향에 따라 학생들을 구타나 체벌로 다스리기도 하고 그저 속이 상해 가슴으로 슬퍼하며 시간들을 넘기기도 하시는 것이었지요. 우리는 그런 선생님들을 무서워하거나, 비난하거나, 비웃거나 하는 일로 시간들을 채웠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나라는 경제적 발전을 신속히 이루어 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생인권조례를 갖는 혁명적 변화까지 쟁취해 내게 되었습니다. 그걸 보며 우리나라가 발전되어가는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선생님들의 일은 아무리 힘든 것이라도 주목받지 못하지만, 아이들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일까지에도 학부모님들과 교육당국으로부터 주의와 벌점을 받는 일도 현실의 장면 중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의미를 알려주시던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국가의 지도자가 있어 교통시설이나 학교체계를 돌보아 주어야 너희가 학교에 올 수 있고, 부모님들이 키워주고 뒷감당을 해야 너희가 학교에 있을 수 있고,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성장하면서 가장 필요한 정신적 자양분을 얻을 수 있다. 선생님의 해석은 너무나 온당한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그토록 속을 썩여서 죄송합니다. 선생님이 주시는 자양분은 마시는 대신 나약해 보이는 선생님을 비웃기까지 했네요. 그러나 결국 국가가 있어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유지되고, 부모님이 감당해 주신 배경으로 성장했고, 선생님이 주신 것 중에 만분의 일도 안 되는 것만 주워 담고도 평생을 살 수 있는 양식으로 삼았군요. 이제 사죄를 드립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부탁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의 선생님들 그만 죽게 해 주셔요. 그들은 누가 뭐라던 자존심이 땅 속까지 꺼져 들어가는 경우에서도 자기의 생명을 걸고 후손들을 키워 내야할 사회적 의무를 짊어진 성스러운 자리에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기대게 해 주셔요. 이 나라가 유지되고 빼앗기고 다시 독립을 맞는 과정 속에 이 사회적 의무 때문에 함부로 죽지 목하고 벌레만도 못한 상태로도 삶을 유지시킨 분들 그들 중에 대부분이 ‘선생님’들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짓밟지 못하게 해 주셔요.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P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