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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의 ‘미래지향성’ 해석문제 학교 및 사회교육개혁

2024. 12. 3(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교육개혁의 ‘미래지향성’ 해석문제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2024년 올 해 노벨 과학상의 특징 중 하나는 물리학상과 화학상 모두 기존의 과학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했던 문제들을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해결한 분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는 점이다. 그 중 프린스턴 대학의 존 홉필드(John Hopfield)의 ‘연상기억모델’은 인간의 신경망이 사실들을 기억함에 있어 연관성을 통해 최소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정보들이 그물처럼 엮어져 있다면 인간의 기억은 그 중 재생이 쉬운 정보만을 활성화하고 나머지는 휴식상태에 머물게 함으로써 최저에너지위치에서 안정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떤 정보가 활성되어야 할 때가 오면 이미 활성중인 정보에서부터 연관된 신경을 자극함으로써 그 것이 휴면상태를 벗어나게 한다. 이를 컴퓨터 알고리즘에 대입하여 신경과 컴퓨터 메모리를 함수화하면 컴퓨터가 연상기억장치를 알게 되고 이를 통해 갖게 된 자기학습능력을 이용하여 신경망을 구동한다.


‘특이점(Singularity)’은 빅뱅이론에서는 대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태를 이르는 용어로 사용된다. 즉 우주를 탄생시키려는 힘은 그것이 없던 상태를 극복하고 결국은 폭발했을 것이다. 그 상태를 순서적으로 관찰하면 우주탄생에너지가 그 이전의 평온함을 유지하려는 에너지보다 작은 단계에서 시작하여 그 에너지들이 서로 같은 상태, 그리고 결국 우주탄생에너지가 평온상태를 유지하려는 에너지와 같은 단계를 거쳐 ‘빅뱅’을 맞게 된다. 결국 빅뱅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태에서는 빅뱅의 에너지와 그 이전의 평온을 유지하려는 에너지의 크기가 같을 것이다. 이 상태를 ‘특이점’이라 한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egence)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는 인간의 지능이 진화의 속도에서 가장 큰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컴퓨터가 등장하자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은 ‘인간지능’의 발전속도를 가볍게 제압했다. 이로써 등장한 개념이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이 경쟁의 장에서 보여주는 우위의 문제이다. 즉 인공지능이 인간지능보다 낮은 수준에서 발전속도의 우위를 점한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넘어서게 되는 과정을 겪는 것이다. 이 경기장의 트랙을 따라가 보면 결국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과 같아진 상태가 올 것이고 이로부터 더 나아가서는 전자가 후자를 뛰어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사람들은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의 능력이 같아지는 지점에 언제부터인가 ‘특이점’이라는 용어를 부여했다.


상상 속에 존재하던 이 개념이 점점 급속히 우리에게 가까워지더니 급기야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웰(Ray Kurzweil)이 2026년을 못박아 ‘특이점’의 도착시기로 예상하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을 앞서리라는 의견은 예상의 위치를 벗어나 현실에 그 발걸음을 두게 되었다. 이 시대가 미래임을 간파한 사람들이 인간이 이해하는 언어가 아니라 컴퓨터가 이해하는 언어를 ‘컴퓨터 부호(code)’라 명명해 놓고는 이를 익히는 ‘코딩(coding)’에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미래교육을 펼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우리 아이들에게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게 함으로써 미래의 변화를 대비하는 것이 교육개혁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이쯤에서 우리는 인간이 만든 컴퓨터가 어떻게 ‘인공지능’의 상태를 스스로 극복하고 독립된 ‘지능’을 구현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간은 어떤 경로를 택해서 컴퓨터를 창조하고 나아가 자신보다 우위의 존재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인간은 구상적 존재이며 동시에 추상적 존재이다. 이 때 인간의 본질은 구상적이며 물리적인 존재로서가 아닌 추상적이며 철학적 존재로서 더 큰 가치를 갖는다. 인간의 진화가 경쟁의 운동장에서 늘 우위에 서 온 이유는 이 세상의 다른 형태의 생명들보다 추상적 세계를 탐험할 능력을 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념적인 측면에서 부족을 느끼는 힘이 인간을 결국 자신의 창조물에 뒤질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발전시킨 것이다.


물질적 부족이 그 힘을 줄 수 있다면 인간이외의 다른 생물들도 ‘인공지능’에 맞먹는 상태에 이미 도달해 있을 것이다. 물질적 ‘가난’은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여 ‘부유’함 보다 많은 도움을 인간에게 주어왔다. ‘가난’은 그 자체로써는 인간에게 궁핍함을 준다. 그러나 ‘가난하다’라는 심리적 추장적 개념은 인간을 그 상태를 모면할 환경으로 이끈다. 인간이 컴퓨터를 창조하고 ‘인공지능’을 탄생시켜 물리적 환경에 직접적인 여향을 행사할 수 있는 과정은 물리적 노력자체가 아니라 그 노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신적 추상성의 크기에서 나왔다. 물리적 측면에서 보면 ‘특이점’이 있고 이를 지나면 곧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앞서겠지만 추상성의 시각에서는 이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AI가 구상을 생산하는 행위는 추상적 고민으로 보이더라도 알고리즘의 진행이다. 인간의 삶이 물리적 알고리즘에 바탕을 두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람들은 점점 물리적 측면이 추상적 측면을 앞지르는 상태를 위해 산다. 금수저, 높은 점수, 등은 구상인데 이들이 있으면 ‘더 좋은 삶을 산다’라는 AI적인 논리표를 믿으려 한다.


사람은 물리적 알고리즘을 택하는 순간 AI보다 하위에 있게 된다. 물리적, 기술적 접근으로 끊임없이 AI와 사람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가 없다. AI의 영역에서 본질적 추상은 없고, 인간의 영역은 본질적 추상일 때만 의미가 있다. 그래서 AI시대에서 존재하는 것은 진정 의미 있는 철학을 요구하는 일이다.


따라서 AI가 발전할수록 세상은 추상적 이상을 향해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것이 된다. 추상적 부족함을 채우려는 노력이 인간에게 존재의 의미와 물리적 발전의 개념에 바탕을 제공한다. 미래, 즉 AI시대는 이를 깨닫는 지배계급과 물질적 사고에 갇혀 AI의 지배를 받는 계급으로 또 다시 나뉠 것이다. AI시대를 인간과 AI의 대결의 장으로 보는 의견은 인간존재의 본질과 관계없는 일이다. 우리가 걱정할 것은 AI의 높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적, 물질적 측면에 굴복하고 있는 인간 스스로의 철학의 빈곤문제이다.


‘미래지향적’이란 말은 이렇게 생각할 때 올바른 답을 갖는다. 대한민국에서 교육개혁은 인생의 의미를 본질적 측면에서 관찰하는 사람들을 키우는 일이어야 한다. 이것이 ‘미래지향적’ 교육이다. 기능적 발전을 인생의 가치와 교화할 수 있는 가치로 믿는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통과한 미래는 기계의 하수인으로 존재가치를 최소화시킨 인간을 예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지금이라도 미래교육은 스스로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맡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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