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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인식, 그리고 교육의 본질 학교 및 사회교육개혁

2024. 1. 2(목)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존재와 인식, 그리고 교육의 본질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기원후 3세기를 살았던 전기(傳記)작가이다. 그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고대철학의 기원과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유명한 철학가들의 생애와 사상”이란 책을 남겼다. 이 책은 철학의 시대구분에 있어 소크라테스를 기준으로 그 이전(以前)과 이후(以後)로 나눈다. 소크라테스 이전철학은 카오스(Chaos)로부터 가이아(Gaia)를 거치며 세상이 전개되는 종교적 관점에서 벗어나 우주의 본질을 자연자체에서 찾으려 했다. 이들에 의해 시도된 인간 최초의 철학이 ‘자연철학’이라 명명된 이유이다. 


역사상 최초의 철학자인 탈레스(Thales)는 언제나 아래를 향해 흐르는 물이 다른 모든 물질의 맨 아래를 채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상황을 준거(遵據)하면 모든 물질의 존재는 물에서 출발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기록에서도 카오스에서 시작하여 가이아, 우라노스, 크로노스, 그리고 제우스(Zeus)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물을 근원물질로 만들었다는 표현은 찾을 수 없었다. 신학과 현상에 대한 인간의 경험은 같지 않을 수 있고, 신학적 설명은 때로는 객관적 관찰과 일치하지 않았다. 즉, 인간은 신학과는 다른 인문학이라는 독자적 분야를 가지고 있고 이는 신학적 논리가 아닌 과학적 논리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서 철학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것이 반사회적 사고가 아니라는 증거를 만들 수 있었다. 


철학은 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아니라 지식 자체에 대한 사랑과 믿음 즉 애지(愛知)였다. 철학의 영어표현은 philosophy다. “philo”는 사랑이고 “sophy”는 지식이다. 그러므로 ‘지식에 대한 사랑’이란 표현자체가 신화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를 반영한다. 이쯤 되자 지식을 사랑하려면 먼저 지식이란 객체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머리를 내밀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은 신화가 아닌 자연에서 우주의 근본물질을 찾으려 했다. 이는 존재의 근본에 대한 고민을 이끌었다. 그러나 근본물질이 무엇이던 간에 그것이 어떻게? 그리고 왜? 존재하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없다면 철학은 허무함을 대신하는 어떤 고민에 불과할 터이었다. 


먼저 인간이란 존재를 더 이상 증명이 필요치 않는 공준(公準)의 테두리 안에 두어야 하는지에 관한 철학적 결론이 있어야 했다. 존재를 공준집합에 있는 하나의 원소로 삼으면, 인간이 모여서 이루는 가정과 국가 등의 존재 역시 공준이라 해도 논리가 성립될 수 있었다. 서양의 고대철학이 소크라테스를 필요로 했던 시점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는 존재론에 인식론을 추가하여 지식이 있는 상태와 지식이 없는 상태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이 세상이 모두 빨강이라면 ‘빨간색’은 인식의 대상이 되지 않듯이 무엇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모른다는 것과 같이하여 존재하는 것이었다. ‘안다’와 ‘모른다’에 관한 개념이 인식론을 길들여서 결국 ‘지식’을 형성하는 과정을 들여다보게 했다. 따라서 ‘안다’는 사실은 ‘모른다’라는 사실이 실재해야 생성되며 한 인간이 얼마나 스스로의 무지를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를 기반으로 지식의 탑을 쌓을 터가 얼마나 큰가의 문제와 동치(同値)하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라고 세상에 고백함으로써 그 깨달음이 바로 인간존재의 본질을 탐구할 지식의 둥지를 틀 공간임을 확인한다. 


하나의 사회와 한 인간의 존재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한 사회와 한 인간이 서로에게 가진 연관성을 인식해야 한다.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연구는 ‘윤리학’ 또는 ‘도덕학’이라 명명된 철학분야를 드러나게 했다. 한 인간은 자신의 개인적 존재에 관한 철학적 인식과 그가 속한 사회의 존재를 정의하는 일에 형이상학적 동시성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독립적 존재를 보장받기 위해 생각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며, 동시에 그는 사회에 도덕적으로 조화해야 한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자유와 도덕의 불일치 가능성이다. 개인적 자유는 사회의 구성을 힘들게 할 수 있고 사회의 구성은 자유를 구속할 여지에 친화적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충돌하는 지점이 이곳이며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나쁜 정치형태로 기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적 존재와 국가사회의 존재를 연결하려면 소크라테스는 개인의 가치와 사회의 건강한 구성이 상호보완적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 부분을 채우는 것이 도덕이며 이 철학적 개념은 인간에게 교육이 필요한 기본적 이유를 만든다. 이에 대한 인식의 정도가 ‘교육’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게 하고, 그것이 개인의 존재가치와 자유를 사회라는 객체로부터 찾아 낼 수 있게 한다. 


물리적 계산으로는 모르는 것이 많을수록 아는 것이 적고 아는 것이 많을수록 모르는 것이 적다. 그러나 형이상학적 인식은 이와 반대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그 밖의 범위에 존재하는 무지와 닿는 면이 많기 때문에 인간은 많이 알수록 모른다는 인식을 가지며, 반대로 아는 것이 적을수록 모르는 것과 닿는 부분이 적으므로 모른다는 인식 또한 적어진다. 이에 따라 사람은 아는 것이 적을수록 알고 있다는 인식을 크게 갖으며, 아는 것이 많을수록 모르고 있다는 인식을 크게 갖는다. 


교육은 인간의 존재를 물리적으로 해석하는 도구가 아니다. 철학이 물리성에 집중하여 처음 탄생했던 기원전 7세기를 거쳐 더 이전으로 돌아가 그저 ‘물질’에 인생의 수준을 연관시키는 것은 역사의 후퇴이다. 숫자라는 시험성적으로 지식을 평가하고 숫자라는 점수로 아는 것의 적고 많음을 판단하는 일은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이 아니고 그들로부터 철학적 공간을 빼앗아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물리적으로 인식하여 숫자와 대응하도록 하는 일이다. 다음 세대들에게 합법적으로 가해지는 이 인격적 폭력을 우리는 ‘교육’이라고 한다. 안타깝고 무서운 일이다. 


벌써 2025년이다. 그 첫 날, 무엇보다 본질적 교육현실을 같이 고민할 어른들이 있어 2025년이 살 수 있는 시공간이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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