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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 학교 및 사회교육개혁

2025. 3. 11(화) 동양일보 풍향계 논설문

그래도 지구는 돈다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에페소스(Efes)는 그리스인들이 에게해를 건너와 세운 도시다. 이 지역을 헬렌(Hellen)의 자손으로 이루어진 그리이스의 네 민족 중 손자 이온(Ion)을 조상으로 하는 이오니안들이 살아서 이오니아(Ionia)라 불리었다. 이들은 원래 그리스반도 남쪽지방, 지금의 아테네가 위치한 곳에 살았었는데 남하하는 도리아인들에 밀려 에게해를 건넜다. 지금 터키의 서해안에 위치한 이즈미르(Izmir)에 이들이 정착했기 이곳이 이오니아가 되었다.


그리이스 신들이 종교적 믿음의 대상이었던 시대에 이들은 아르테미스(Artemis)를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믿었다. 아폴론(Apollon)과 쌍둥이로 태어난 그녀는 사냥과 달, 그리고 순결의 여신이었다. 고대세계의 7대 불가사의란 말이 있다. 에페소스에 세워진 아르테미스신전은 392년 기독교를 국교로 만든 로마에 의해 모두 뜯겨져 기독교 교회와 도시성곽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신전은 폐허가 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7대불가사의 중 하나의 위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431년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와 서로마 황제 발렌티아누스 3세가 공동 발의한 제 3차 종교회의의 장소는 에페소스였다. 아르테미스에 대한 간절함을 지니고 있었던 이오니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적 동질성을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중첩할 수 있다는 것에 안심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남긴 유언에 따라 사도 요한은 마리아를 모시고 이 동네에 와서 살았다는 사실과 사도 요한이 세운 교회와 그의 무덤이 아르테미스 신전터였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여기에서 그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썼다는 말도 믿을 만 한 소문이었다.


다만 그때까지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인지 ‘신의 어머니’인지를 두고 설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인간의 몸을 지닌 예수의 어머니로써가 아닌 ‘신으로써의 예수’를 낳은 어머니로 결론이 난 것은 에페소스의 ‘마리아 교회’에서 진행된 제 3차공의회의 당연한 결론이었다. 이때부터 ‘성모’로 불리게 된 마리아는 ‘신’을 잉태하고 출산하기 위해 죄가 없는 순결함을 가져야 했고 그 증거는 바로 ‘죽어서 땅에 묻히는 것’이 아닌 ‘살아서 하늘로 승천’하는 것이었다.


로마제국의 기독교화에 의해 세계 기독교의 중심이 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에 강력한 카톨릭신앙을 전파했다. 이들은 지역마다 그리스시대부터 내려오던 수호신 대신 기독교인으로 수호성인을 세웠다. 에페소스에서 발원한 마리아 신앙은 순결, 죄없음 등의 위대한 힘을 가지고 각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 동안 로마는 지아니콜로(Gianicolo) 언덕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은 베드로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베르로 성당을 지어 나갔다. 베드로가 사형 당한 장소에 르네상스 건축의 3인 중 하나인 브라만테가 이후에 ‘템피에또(Tempietto)’라는 작은 성전을 세우지만 그 전에 이미 ‘몬또리오 베드로 성당(San Pietro in Montorio)’이 있었다.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곳에는 현재 카톨릭의 본산이 된 ‘성 베드로 성당’이 세워졌다.


쇠사슬의 베드로 성당(San Pietro in Vincoli)은 베드로가 예루살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천사가 와서 이를 풀고 자유의 몸으로 만든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 졌다. 지금도 이 성당은 베드로를 결박했던 쇠사슬과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표현한 회화와 조각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와 돈키호테(Don Quixote)의 저자 세르반테스(Cervantes)가 사망한 1616년에 교회는 ‘지동설’에 민감해져 있었다. 코페르티쿠스라는 학자가 1543년 죽기 직전 출판한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이 지동설을 담았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된 이유도,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게 교황 바오로 5세가 벨라르미네(Bellarmine) 추기경을 통해 지동설을 포기하라고 점잖게 경고한 것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천동설에 대한 반동 때문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과학적 증명이 지동설을 매우 강하게 지지하게 되자 1633년 교회는 갈릴레이에게 그가 신봉하는 이론이 얼마나 비 신앙적인지를 설명하고 이를 철회하는 조건으로 고문하지 않고 평생 가택연금의 상태에 처할 수 있다는 관대함을 보였다. 죽음을 9년 앞 둔 노 과학자는 이 충고에 따라 자신의 지동설에 잘못이 있음을 인정했다.


스스로 갑옷을 입고 칼을 들고 전장의 선두를 누볐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1503년 교황이 되자 자신의 위상을 로마시대의 율리우스 카이사르(Caesar)에게 비견했다. 그래서 이름을 ‘율리우스’로 정했다. 당대의 최고 예술가 미켈란젤로를 시켜 만든 자신의 무덤으로도 유명한 ‘쇠사슬의 베드로 성당’은 갈릴게오 갈릴레이를 판결하는 종교재판의 장소였다. 재판을 마친 뒤 갈릴레이는 성당의 문을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Eppur si muove)”.


아무리 현대가 물질사회라 할지라도, 존재는 철학과 정신 안에서 터를 잡는다. 우리의 교육이 어른들의 판단으로 아무리 정당하지 못한 방향을 향하더라도 그래도 인간은 인격을 바탕으로 역사를 이어 간다. 한 세대가 역사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물질이 아니라 생각과 고민을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는 데 사용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는 인간본질을 고뇌하는 철학이 있음을 의미하며, 자신의 존재에 가치를 심으려는 본능을 의미하며, 결국 그리하며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을 의미한다.


본질과 진실로부터 멀어진 자리에서 눈과 코와 입과 귀의 즐거움을 위해 살고 나서도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1633년의 오늘 3월 12일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쇠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음을 확인한 날이다. 우리의 교육도 물리적 진실을 떠나,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철학을 기반으로 서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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