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박*하
스노보드를 탔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겄은 벡사이드 슬리핑 이였다.
왜냐하면 뒤로 도는것부터 백사이드 슬리핑을 하는것까지 잘 못했기 때문이다.
4학년 이*성
이전까진 스키밖에 않타봤는데 학교에서 처음 해서 무서웠다.
그래도 꾹 참고 수업 하는데 평소에 스키타러 가던 웰리힐리를 가서 살짝 안심했다.
처음엔 넘어지기 일어서기 등을 배웠는데 일어서기와 넘어지기는 잘해서 좋았는데
슬립핑은 너무 어려워서 가슴이 덜컥 찌릿했다.
그래도 계속 연습하다보니 벌써 하루가 지났다.
방에 들어와서 형들과 눈술을 했는데, 거의다 잡히지 않고 살아남았다.
다음 날이 되서 보드를 2시간 타는데 놀랍게 슬립핑이 잘 돼서 놀랐다.
다음엔 Tow엣지로 뒤돌아서 하는 연습을 하는데 계속 넘어지기만 했다.
근데 성환이는 엄청 잘해서 부러웠다.
연습하고 있을 때 팬들럼도 배웠는데 로지쌤이 가르쳐 주셨다.
그러다 시간이 벌써 다되서 점심 먹던 도중 오후시간 말고 저녁시간에 타자고,
해서 방에 들어가 침대어서 뒹굴다가 장비를 입고 다시 타러 갔다.
이번엔 리프트를 타고, 가서 코스에서 타기로 했는데 올라가는 내내 이렇게 높았었나 생각하며 아찔했다.
올라가서 천천히 가는데 좀만 빨라져도 무서워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점점 내려갈 때 따른 코스로가는 리프트가 있는데 거기가 푹 파져 있어서 거기만 가면 빨려들어가서 *엽이와 블랙홀이라 부르며 피해 다녔다.
그렇게 타다 보니 9:20쯤 들어 갔는데 장비를 벗을려고 보니 헬멧 끈이 풀려있었다.
방으로 들어가서 있으니 피로가 몰려오며 마지막날이 됐다.
일어나니 다리가 알이 배긴 느낌이었다.
하기 싫기도 했지만 참고 했다.
마지막은 라이딩을 했는데 난 Tow엣지가 부실해서 하다 넘어졌다.
그렇다 힘들어서 쉬려고, 하는데 마침 시연이 누나도 똑같은 마음이여서 같이 만나 푸드코트로 가는데 마침 교장쌤과 할아버지가 계셔서 아이스크림 김밥 떡볶이를 먹다 사람들이 안 와서 교장쌤께서 데리러 갔는데도
한 20~30분 후에 도착해 합류했다.
이렇게 나의 아쉬움이 남는 첫번째 보드타기는 끝났다.
4학년 문*환
드디어 보드를 타러 간다니 너무 신났다.
이번에 갈 보드 캠프는 총2박 3일이었다.
게다가 선엽이와 수혁이 형도 참가했다.
보드 첫날에는 차를 타고 1~2시간쯤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웰리힐리 스노우 파크로 갔다.
렌탈샵으로 가서 보드를 배울때 필요한 장비를 빌리러 갔다.
대여해야 할 것들은 보드복과 부츠도 필요하고, 헬멧과 보드를 렌탈해야 되었다.
키도 적어야 하고, 몸무게, 신발 사이즈를 다 적었다.
각자 다 맞는 장비를 가지고 부츠를 넣은 빨간 가방과 짐을 실은 파란 가방을 들고 이동했다.
식사 장소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었다.
숙소로 가서 짐을 클리프쌤 방에 두었다.
그러고 난 뒤에는 장비 보관함에 갔다.
락커가 여러 개 있었다.
하나당 2명이나 3명이 사용했고, 그 가운데 1명에게 키가 주어졌다.
은성이와 선우 형이 같이 쓰는 우리 락커의 열쇠는 선우 형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제 보드를 타기 위해 장갑을 쓰고 언덕같은 곳으로 가서 보드의 기본 중에 기본을 조금 배웠다.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바인딩에 부츠를 고정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또 뒤집는 방법과 엎드리는 방법 일어나는 방법과 넘어지는 방법까지도 배웠다.
이때까지는 쉬웠다.
그리고 슬리핑을 사용해서 내려가는 방법도 배웠는데, silp이 미끄러진다는 뜻이고, 이 기술은 힐 엣지를 사용해 미끄러지며 내려가는 기술이여서 silping이 됐다. 이때부터 계속 넘어졌다.
그래도 연습하다 보니까 나아진 듯 했다. 마지막 마무리로 팬들럼을 아주 조금 했다. 요원들이 나가라고해서 나갔다.
이제 또 락커가 있는 장비보관함으로 갔다. 안에 보드를 넣는데 테트리스처럼 끼워 맞춰야 됐다.
힘들었다. 보드를 넣고서 숙소로 올라갔다. 짐을 놓고 잠깐의 휴식시간을 즐겼다.
저녁시간이 되자 팀을 나눠서 저녁을 먹으러 엘리베이터로 내려갔다.
우리팀은 식사매뉴를 정하기 위해 치킨, 편의점 음식같은 여러가지 의견이 나왔지만 족발로 정해져서 쌍디 족발이라는 족발집으로 직행했다.
돈이 없어서 로지쌤에게 받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솜사탕을 사 먹고 오락실에서 놀다가 숙소로 갔다.
눈 감고 술래잡기를 하다가 9시 정도에 둘째날 아침을 사러갔다.
베이글과 주스2개, 라면을 샀다. 새벽까지 마피아 게임을 하다 잤다.
두번째 날에는 아침에 간단하게 베이글만 먹고 장비를 착용하고 나갔다. 주머니에 장갑을 넣고 출발했다.
락커에서 보드를 꺼내고 나서야 생각했다. 주머니에 넣은 것이 장갑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부츠를 조이고 난 뒤에 로지쌤한테 말 했다.
언덕으로 이동할때 '로지쌤 언제 오지?' 라는 생각 뿐이었다.
교장쌤이 강의 할때도 그 생각 뿐이었다. 로지쌤이 드디어 오셔서 장갑을 주셨다.
강의가 끝났다. 어제 내용을 복습하고 위로 올라갔다.
이제는 드디어 타는 시간이다. 빠른 속도로 내려가며 보드를 탔다. 교장쌤이 갑자기 우리를 집합시켰다.
어제했던 팬들럼을 할 시간이라고 하면서 더 위로 올라가 타라고 했다.
처음 몇 번은 잘 안됐지만 하다보니 다들 되는 것 같았다. 선우 형이 가장 잘했다.
근데 올라가는 것이 힘들고 너무 귀찮았다.
팬들럼이 다 능숙해지자 이제는 토우 엣지를 사용해 내려가는 거꾸로 슬리핑을 가르쳐 주셨다.
이거는 모두 어려웠는지 선엽이와 선우형 마저도 못했다.
모두 넘어지며 "이거 어떻게 하지? 못하겠다" 라는 말들을 뱉었다.
그 때는 이게 제일 어려웠다. 그래도 내려가는 재미는 있었다.
교장쌤의 말씀으로는 오늘 초급 올라간다고 했다.
너무 기대됬다.
계속 연습을 하고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갈 시간이다. 뷔페에서 먹기로 했다. 여기도 빵이 제일 맛이 있었다.
그런데 옆자리에 정호형에게 선엽이가 실수로 포도주스와 우유를 섞은걸 부어버렸다.
그래서 티켓과 패딩에서 포도냄새와 우유 냄새가 둘다 났다.
4시간 동안 있을려니 심심해서 정호형과 선엽이와 같이 보드를 타러 갔다.
장비 착용속도가 너무 느려서 둘이서 먼저 타러 갔다.
정호형이 선엽이에게 저주권이라고 장난으로 말했는네 진짜 걸린듯이 일어나지를 못했다.
타고난 뒤에 숙소로 가서 저녁으로 우리가 어제 먹었던 쌍디 족발집을 갈지 말지에 대한 토론 후에 뜻이 만장일치여서 쌍디 족발로 갔다. 3개의 테이블로 나눠서 먹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초급을 타기로 했다.
장비 보관함에서 장비를 꺼냈다.
교장쌤은 체어 리프트에 대한 설명과 함께 리프트 권을 나누어 주었다. 우린 기대에 찬 마음으로 타러 갔다.
사람들이 먼저 가버려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때 혼자가서 약간 무서웠다.
아무튼 첫번째로 보드를 타고 내려가는 중에는 한번도 안 넘어졌다.
정인이형이 오더니 같이 가자고 말했다. 그런데 중급으로 가는 구멍에 빠져버렸다.
정인이형도 날 따라오다가 빠졌다. 앞으로 가서 출발했다.
그 후로 우리학교 학생들은 이 곳을 블랙홀이라 불렀다.
2번째 부터는 선엽이와 같이 내려갔다. 그리고 교장쌤이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냥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스키와 보드가 앞으로 지나가더니 스키는 넘어지고, 보드는 자국을 남겨서 스키는 피하고 보드가 남긴 자국에 걸려서 힐 엣지가 올라가면서 앞으로 4미터정도 비행하고 땅에 박았을때 엄청 아팠다.
다 내려가고 몇분뒤에 턴을 알려주셨고 선엽이가 가장 잘했다. 나도 선엽이를 따라해봤지만 안 됐다.
약 11시30분에 올라가서 보드장비 정리하고 아침으로 뭔지 모를빵과 음료수,핫바를 사고 잤다.
셋째날은 아침부터 일어나 사놓은 음식을 먹고 갈 준비를 했다.
옷을 갈아입고, 모든 짐을 다 챙기고, 1층에 갈때 너무 힘들었다. 리프트권을 받고 마지막 보드를 타러갔다.
몇번 타다 보니까 턴이 가능해졌다. 7번 정도 정호형에게 붙잡혀서 같이 타고, 또 선엽이와 같이 보드를 탔다.
선엽이가 중급으로 가자고 했고 갈려다가 교장쌤이 와서 그냥 안갔다. 이제 선엽이를 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다.
교장쌤은 우리를 데리고 중급으로 갔다. '드디어 중급을 가보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갈때도 강의를 들으면서 내려갔다. 선엽이와 1번 더 탔고, 지금까지 탔던 초급에서의 보드보다 재미있었다.
2박3일이란 시간이 하루가 된 것 같다. 너무 재미있었고, 더 많이 타고 싶다.
5학년 박*우
첫날엔 보드를 타러 숙소에 오자마자 보드를 타러 갈 준비를 해서 약간 정신없었다.
보드를 타러 스키장에 도착하고 나서 교장샘께서 강의를 하셨는데 신발이 너무 커서 앉기 불편했다.
그리고 보드를 신발에 binding 하는 방법을 배우던 도중 뒤에서도 수업을 한다고 비켜달라고 해서 기분이 조금 나빴다. 그리고 다른 곳에 앉아서 강의를 마저 듣고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했다. 먼저 넘어졌을때 몸을 돌리기를 했는데 보드를 들어올리기를 못해서 안 됬다가 슬슬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몸 뒤집기를 했다. 몸 뒤집기는 별로 연습할수록 달라지는게 없었다. 그리고 슬리핑을 하려고 일어나는 연습부터 힐 엣지를 거는 연습을 했다. 그런데 일어나려고 했는데 무릎에서 자꾸 우둑! 소리가 나고 고통스러워서 타는데 방해가 됬다. 그래도 일어나서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힐 엣지를 잡으면서 슬리핑을 했다. 많이 넘어지고 너무 잘 될때 팬듈럼을 했다.
팬듈럼에 한창 익숙해져 있을때 숙소로 돌아갔다. **호형, *하, *성, *환,*협이와 함께
수육으로 저녁을 먹고 오락실에 가서 게임을 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서 마피아 게임을 즐기고 잤다.
다음날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보드를 타러 갈 준비를 하고 연습장에 가서 백사이드 슬리핑을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안 될거라 생각하고 했는데 연습할수록 달라지는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이 다 되서 보드를 털고 들어가서 뷔페로 점심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서 핸드폰을 했다.
저녁을 또 수육으로 먹고 보드를 타러 갔다. 벤치형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갔는데 겁이 나서 슬리핑으로만 내려왔다. 한창 하고 있을때 교장샘께 혼나고 이제 에스 턴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될때 들어가서 아침밥을 사고 숙소로 돌아가서 또 마피아 게임을 하고 잤다.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다른 분들은 보드를 타러 갈 준비를 하고 난 집으로 갔다.
다음에 어른이 됐을때 무조건 또 올 것이다.
좋은 추억을 또 만들었다!
6학년 조*후
보드 수업 감상문(1)
1일차
사실 보드를 타러 간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가고싶지 않았다.
따로 티내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키지 않았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겁먹어서 그렇다. 사실 얼마 전부터 내가 겁이 조금 과하게 많은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었다. 아무튼 주말은 스스로 걱정과 걱정을 더해서 조금 힘들었다. 월요일 아침 차에 타기 전까지도 조금 겁먹고 있었다. 학생들은 아침 10시경 학교차를 타고 Welli Hilli Park로 출발했다. 약속은 10시였지만 이런저런 체크하느라 조금 늦쳐졌던 것 같다. 차에서는 창문 밖을 어떤 방해도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차에서 밖을 보다보면 알 수 있다. 뭐든지 다 문학에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단지 누가 더 잘 활용하냐의 문제이다. 이걸 잘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해봤다. 그 결과는 나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나의 문제라 하면 당연히 책을 안 읽는 것이다. 근데 책을 읽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참 바보같다… 진짜 바보같다. 문제점을 알면서도 안 고치는 게 문제도 그런 문제가 없다. 사실 그것 말고도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좀 많이 심란한 상태였다. 간단히 말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공부도 열심히 하면 되고 책도 이제부터라도 습관을 들이면 될텐데 이제 앞으로는 모두 발전할 텐데 왜 어딘가 비어있는 기분일까.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밥맛이 예전과 같이 맛있을 것이란 장담도 못하겠다. 내가 표현하는 웃음, 슬픔, 화, 등등이 결국 행복을 가리킬가 아니면 절망을 가리킬가. 잡생각 오래 하다보니 벌써 장비 대여점에 도착했다. 근데 대여점에 들어서자마자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아니 기운같은 것이었다. 시각 말고도 후각으로도 처음 받는 자극을 느꼈다. 시원하고 오래된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내 코는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일 새도 없이 대여점 주인님의 주도 아래에 신발, 상하의, 헬멧과 보드까지 입어보고 신어보고를 반복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자극이라 느껴지던 게 없어져있었다. 처음 해보는 일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지라 모르는 사이에 코가 적응했을 것이다. 신발을 신으면서 보니 주하라는 애가 어디 앉을지 못 찾고 있길래 먼저 말을 걸었다. “내 옆에 앉아”였는지 “여기 앉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닥 친절한 말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까도 말했다시피 정신 없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거라 생각도 안하고 그냥 막 뱉었다. 주하는 형, 누나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처음에는 학교에 적응을 못하는 걸로 보였으나 그건 아니었고 나부터 별로 가깝지 않으니 아마 나이차이가 아닐까. 하긴 지금 우리학교 선배들도 그 전 선배들과 친하다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해가 간다고 마음도 따라주는 건 아니다. 선배라고 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선배라는 길을 어떻게 밟아야 할지 모르겠다. 최고참도 아니면서 뭐가 힘들까. 앞으로는 어떤 사람을 마주할 때 그 사람의 표현 방법이 멍청하고 한심한 게 아니라 그냥 다를 뿐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대여를 마친 뒤 대여점을 나와 식당으로 이동했다. 차 안에서 계속 이 말이 떠올랐다. “나이 40이 되기 전까지는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 선생님 말씀 잘 새겨듣고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믿어보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 까. 애초에 확신하지 않는 게 문제인가. 모르겠다. 그냥 지금을 즐기자고 하면서 넘긴 것 같다. 고민을 하다 중간에 포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냥 잠깐 미루는 것 뿐이지만 그것조차 허용할 수 없는, 이런 면에서는 조금 깐깐한 내 마음이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의 특징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은 좋았지만 고민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옆에 앉아있는 시연이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꺼낸 말이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현이누나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아마 김자매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나랑 시연이누나일 테니까 말이다. 시연이누나는 이번 특강이 특별했던 이유가 적어도 나보다 한가지는 더 많을 것이다. 우현이누나의 존재가 그 전도로 소중했을 것이다. 내가 또 함부로 판단하는 걸수도 있지만 일단 나는 최대한 아름답게 기억하겠다. 시연이누나와 대화를 하다 말곤 수혁이한테 관심을 돌려봤다. 수혁이는 여전했다. 여전히 착하고 무엇보다 많이 웃고 정인이형, 연수누나와 웃고 있을 때 행복해 보였다. 못 온 분들은 아쉬운 대로 아쉽고 온 분들은 온대로 좋다. 그래도 고민속에서 헤어나오긴 힘들었다. 다시 시연이누나한테 집중해볼려고 다가갔는데 귀찮아하는 것 같길래 고민에서 빠져나오는 건 포기하고 그냥 밥이나 먹기로 했다. 마침 로지쌤도 나에게 밥을 늦게 먹는다며 지적하셨고 식사에 속도를 붙힐 수 있도록 해주셨다. 선생님들의 지적을 받다보면 기분이 나쁠 때가 분명 있다. 사실 조금 많다. 아무튼 그런데 요즘은 기분이 나쁘다가도 “아니지 나 밥 늦게 먹으니까 서둘어야지!” 이런 식으로 사고가 이어질 때가 많아졌다. 내가 요즘이라고 말하는 게 이 감상문 안에서는 거의 다 새해 이후일 것이다. 이후엔 특강밖에 하지 않았지만 그 특강 이후 많이 바뀌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게 다 바뀌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근데 몇분 전과는 다르게 몸에 또 변화가 생겼다. 분명 보드를 탄다는 게 겁이 났는데 갑자기 ‘내가 하는 고민보다 보드타는 게 더 어려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가 더 어려웠는진 나중에 알려주겠다. 그리고 이제 최종 목적지인 Welli Hilli Park로 이동했다. 도착 직전에 회전교차로에 가운데 원 안에 ‘Welli Hilli Park’로 글씨가 세워져 있었다. 그걸 보자 다시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약간 포장하면 말하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특강때보단 덜 뛰었지만 아무튼 나만큼 긴장한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을 정도로, 그 정도로 긴장했다. 사실 심장이 요동치던 이유중에 설레임도 있었다. 방은 어떨까. 화장실은 깨끗할까. 방에 대한 기대가 과하게 컸다. 내가 생각한 건 완전 집같은 곳이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 적당한 크기였다. 그렇다고 실망하진 않았다. 그렇게 심장이 뛰는데 이런거에 실망할 틈이 없었다. 창 밖 풍경은 내 기대치를 넘었기 때문에 실망이고 뭐고 그냥 즐기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못 온 이들은 아쉬운 대로 남기자고 했는데 그게 도저히 컨트롤되지 않았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카톡에 프로필 사진을 그때 찍었던 사진으로 바꿔놨다. 방에다가 짐을 대충 두고 바로 보드를 타러 갔다. 용어수업을 동반하며 신발 신는 방법, 보드 간수하는 법, 등 하나부터 열까지 맨땅에 헤딩하듯 배웠다. 다를 땐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몸과 머리를 같이 쓰면서 배우면 더 재미있게 도전할 수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잘 해서 보드를 신기까지 성공했다. 보드는 굉장히 무거웠다. 두 발이 묶여있어서 마치 인어공주가 됬는데 지느러미 끝에 쇳덩어리 달아놓은 느낌? 그리고 생각보다 일어서는 게 어려웠다. 처음 하니까 못하는 게 당연하기는 하지만 당황했다. 겁을 쉽게 먹고 많이 먹고 이겨내기는 또 깨닫는 것 만큼 어려워서 어떨 땐 내가 봐도 바보같은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랬다. 거의 대부분이 열심히 하고 한계를 새로 갱신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초반에 나는 겁도 먹고 난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시간만 때우고, 초급자고 중급자고 뭐시기고 난 마지막 날까지 초급도 안가야겠다.(참고로 첫날은 입문자들을 위해서 망이 쳐져 코스와 구분되어 있는 곳에서 수업했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내가 봐도 너무 어이가 없다. 왜 그랬냐면 내 앞, 뒤, 옆에 각각 정인이형, 시연이누나, 은성이가 있었는데 정인이형은 운동신경이 있으니까 잘하고 시연이누나, 은성이도 되게 잘해서 ‘나는 왜 이렇게 못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 난 안되는구나’ 이렇게 사고가 돌아가서 시작부터 거의 반 포기상태였다. 난 일어나지 못하고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다시 이 생각이 들었다. ‘내 고민보다 이게 어려울까?’ 그리곤 별안간 일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저 하늘을 내 목표라고 생각하자. 내가 보드를 잘 타게 되어 리프트를 타고 높은 코스에 가면 내 목표에 더 다가가는 거야.” 그리고 일어났다. 바로 일어난 건 아니고 세번째 시도만에 성공했다. 내가 일어나자마자 본건 다시 하늘이었다. 가까워졌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지만 보드수업중에는 핸드폰을 꺼낼 수가 없어서 사진을 못 찍은 게 안타까울 정도로 예쁜 하늘이었다. 뒤죽박죽 섞인 구름은 한 사람의 인생을 요약해 보여주듯 하고 알록달록한 하늘은 인생 속 수많은 감정을 보여주듯 하여 나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차가운 눈밭에 뒹구르고 앉아서 수업을 듣는데 따듯했다. 가슴에서부터 손끝까지 전부 따듯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옷을 따듯하게 입었으니까.’ 라고 하겠지만 그때는 한발자국 나아간 나에게 하늘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속으로 뿌듯해하고 있었다. 하늘에게 인정받았다고… 들어가서는 대충 저녁을 때우고, 어쩌다 보니까 마피아 게임을 한다고 다같이 둘러앉아있었다. 마피아를 하다보니까 정말 믿을 사람이 없다는 걸 믿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시연, 연수, 성환, 등등, 눈도 깜박 안하고 속이다니 대단하다. 마피아 게임을 하고 난 뒤로 다시 생각했다. 잠자리에 누워 마피아 게임에 참여했던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물론 각자 다 다른 의미로 말이다. 사실 그것보다도 요즘 일들을 회상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냈다. 아쉬운대로 하기로 했는데 그게 잘 되지를 않는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여전히 내 곁에 남아있다. 그렇게 1일차는 끝났다.
보드 수업 감상문(2)
2일차
아침 7시 10분쯤에 시연이누나가 나를 깨웠다.
하지만 난 일어나지 않았다. 정신은 차리고 있었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되게 행복한 꿈을 꿨는데 내 고집으로 그 꿈을 30분정도 더 꿀 수 있었다. 7시 46분 기상했다. 사실 그 날 컨디션이 영 좋지 못했다. 몸이 아니라 머리가 복잡했다. 원래는 10시에 방을 떠나기로 했었는데 9시 반으로 일정이 바뀌었다. 보드를 타러 가기 전까지는 딴생각밖에 안했다. 보드를 타러 나갔을 때 여전한 하늘과 차가운 코스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제 보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일어나는 건 그렇게 어렵진 않고 slipping, pendulum 등을 배웠다. 선엽, 성환같이 어린 아이들이 더 빨리 터득했다. 애들을 보고 배우려 애썼는데 잘하진 못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자유시간을 가졌다. 자유시간은 방에서 대충 시간을 때우는데 창문 밖이 계속 신경 쓰였다.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아직 pendulum도 다 못 익혔는데 있다가는 어떡하나(저녁을 먹고 나서는 초금 코스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냥 아쉬웠다. 어딘가 계속 비는 느낌? 허전했다.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조금 속상했다. 그게 다였다. 저녁을 먹고 나선 바로 보드를 타러 갔다. 노을이 지난 뒤에 스키장은 방에서 보긴 했었지만 내려와서 공간 안에 들어오니 느낌이 많이 달랐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진을 못 찍는게 한다. 칙칙한 어둠 속에서 등불이 빛나는데 그 두개의 존재가 합쳐지는 부분에서는 땅속에서 오로라가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마치 눈이 끓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리프트를 타고 초급자 코스로 올라갔다. 리프트 타는 것도 전까지는 많이 겁먹었다. 특히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 생각을 제일 많이 했다. 떨어지면 죽는 건 아닌지, 뼈 뿌러지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별의 별 상상을 다 했는데 결국은 아무 일도 없었다. 올라가는 동안에도 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내 긴장을 풀어준 건 리프트를 타고 가며 본 풍경이다. 스키장에서 시각적인 행복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다른 것보다 눈이 너무 행복했다. 위에 올라가선 교장쌤께 설명을 들었다. 우리를 부추겨주시면서도 품위가 살아있었다. 요즘 선생님들이나,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듣다보면 속으로 “오~” 하면서 감탄한다. 그리고 그 말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애쓰는 것 같다. 감탄을 일부러 과하게 하면서 몰입하려 들고 그 말을 반복해서 되뇌이는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좋은 것 같지만 단점도 있다. 그건 바로 다음 말을 못 듣는다. 말을 반복해서 되뇌이다보면 다음을 놓치고 하다가 진도를 못 따라갈 때가 많다. 아무튼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초보자 코스에 도전했다. 잘하는 건 아닌데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있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린 모두 잘하겠지!”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냥 될 것 같았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아무 문지 없겠지”라고 혼자 생각했다. 당사자들의 의견 없이 나 혼자 상상했지만 난 그걸로 족했다. 왜냐하면 믿어야 하니깐, 이제 서로를 믿지 않으면 아무 발전도 이루지 못할 것 같았으니깐… 무서운 게 현실이다. 다만 이 상황을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한계를 뛰어넘기도 한다. 오른발잡이는 왼쪽을 앞으로 두고 타는데, 교장쌤은 초보자들이 계속 넘어지는 이유가 속도 붙으면 본능적으로 오른 쪽으로 무게중심을 기울여서 결국 넘어진다고 하셨다. 그 말을 되새기면서 탔다. 그리고 넘어질때 내 자세가 어땠는지 기억했다. 그랬더니 정말 나는 나도 모르게 오른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걸 고치려고 노력했다. 넘어져도 다시, 또 다시, 아파도 다시, 다시 도전했다. 아마 우리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넘어지는 사람은 있어도 아프다. 또는 힘들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내가 몇번 했었던 것 같기도?) 그래서 결국 beginning turn을 어느정도 익혔다. 그리곤 다시 하늘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나 해냈다.” 요약해서 대충 이런 말을 건넸다. 대답은 안 들렸지만 분명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내가 가장 섬기는 건 아마 사랑일 것이다. 세상의 나만에 신을 만들라고 한다면 그의 이름은 무조건 ‘사랑’이라 지을 것이다. 사랑이 없었다면 난 보드를 타지도 않았을 것이고 가족이나, 친구라는 개념조차 없이 살아갔을 것이다. 모든 걸 사랑한다면 그게 최고의 삶일 것이다. 나도 이제 웃자. 나도 이제 살자.” 사실 오늘 중요한 게 있다. 오늘은 아시안 컵 준결승을 하는 날이다. 오전 12시에 해서 선생님들이 내일을 위해 자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셨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처음부터 잘 생각이 없었다. 결과는 예상하고 있었다. 거의 질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꼭 이겨야 한다며 내 생각은 부정했지만 현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요르단에게 대패하고는 떨어졌다. 예상을 했다곤 해도 그 감정을 억누르긴 힘들었다.
*인이형도 나도 *수누나도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고 그대로 잠들었다.
이렇게 2일차는 끝이 났다.
보드 수업 감상문(3)
3일차
오늘 마지막 날이다. 로지쌤께서 첫날에 이렇게 말씀해주셨었다. “떠날 때가 되면 허무할 걸?” 이라고.
아침에 짐을 싸면서 정말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보드나 헬멧같은 건 보관함이 따로 보관했기 때문에 보드를 타러 갈땐 보관소에 들렸다. 스키장으로 가야했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다녔던 길이 오늘은 달라보였다. 학생들의 발걸음 소리가 내 가슴을 울렸다. 그 울림을 난 견딜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때 클리프쌤께서 보관함 키를 다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셨는데 모두들 있다고 대답했다. 갑자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이래놓고 있다가 가서 키 없다고 하기만 해봐. 다 엎어버릴 거야!” 표현 방법이 과격했지만 이곳에 겉으로 남기는 미련 담긴 한마디였다. 아무튼 우리는 보관소에 들러 장비들을 착용하고 스키장으로 가 리프트에 탑승했다. 코스 출발지점에서 교장쌤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부담갖지 말고 pendulum, beginning turn 다 하면서 몸좀 풀어” 이제 초보자 코스에서는 그래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흉내내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근데 이제 떠난다 하니 여러가지 의미로 아쉬웠다. 교장선생님께서 그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나랑 정인이형, 선엽이를 데리고 중급 코스로 올라가시겠다고 하셨다. 이것도 지금 생각하면 좋은 기회이지만 당시 내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그때부터 다시 겁을 먹기 시작했다. 추워서 그런 걸수도 있지만 손발이 떨리고 중급자 코스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감탄과 걱정을 동시에 했다. 무슨 걱정을 했냐면 “저 속도로 내려오는데 내가 잘못해서 누구랑 부딫히면 어떡하지?” 하지만 교장선생님께서 그런 걸 신경쓰시는 분이 아니니 그냥 끌고 올라가셨다. 반 강제로 온 나와는 다르게 자발로 여기까지 온 성환이도 있었다. 마피아 게임도 그렇고 보드도 그렇고 이번 보드 수업을 하며 성환이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좀 많이 갈아끼웠다. 성환이는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되는 인재인 것 같다. 그냥 한마디로 해서 용기가 대단하다. 코스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한다. 중요한 건 길이가 2~3배 길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급자는 근육이 받쳐줘야 탈 수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올라갔는데 좀 떨어져 볼때는 경사가 많이 심해보였다. 내가 마얼이고 있을 때 정인이형, 성환, 선엽이는 그냥 갔다. 특히 선엽이는 정말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그래 모두가 다 하는데 내가 못하면 안되지”라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소리내어 말했다. “그래 가보자!” 힘주어 작으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멋진 소리였다. 근데 그 뒤 당황했다. 갑자기 셋이 한번에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속으로 ‘엥 진짜 가?’라고 말했지만 당연히 아무도 못 들었다. 그래서 약간 ‘에라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출발했다. 출발하면서 느낀 건 내가 있던 초급과는 많이 다르단 걸 느꼈다. 분명 교장선생님께선 경사가 초급보다는 있겠지만 별 문제되지 않을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체감상으로는 가속도가 2배 이상 빨리 붙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려가면서 교장선생님께서 무릎을 구부렸다가 폈다가를 해보라 하셨는데 도저히 어떻게 하는건지를 모르겠어서 애먹었다. 이럴 땐 생각이 많은 게 오히려 안 좋다는 걸 느낀 것 같다. 중간정도 내려왔을 땐 넘어지면서 배우고, 야단맞고 하다보니 마음의 안정은 어느정도 찾았다. 두려움을 도전정신으로 바꾸기까지 단 5분이었다. 중급자 코스를 내려오면서 정인이형은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부러웠고, 성환이는 용기 가득한 마음가짐이 부러웠고, 선엽이는 한결같이 멍한 표정이 부러웠다. 원래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더니 겁도 많고 욕심도 많아서 큰 일이다. 아무튼 중급 코스도 무사히 내려왔다. 그 뒤 교장선생님께서는 초급 코스 리프트를 타며 보드에서 한쪽 발만 끼고 타는 법을 알려주셨다. 더 정확히는 안전하게 타는 법을 알려주셨다. 리프트는 탈때마다 긴장한다. 안전바가 있다지만 아레에 떨어져있는 누군가의 소지품들은 항상 주의하라고 나에게 알려줬다. 이제 이 코스를 내려가면 다 끝이었다. 정인이형이랑 같이 비장하게 출발했다. ‘중급도 갔다 왔는데 초급은 이제 쉽겠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출발하자마자 중심을 잃고 넘어져서 굉장히 뻘쭘했지만 벌떡 일어나서 다시 출발했다. 내려가면서 내가 보는 장면을 최대한 기억하려 했다. 가끔식 내 눈이 카메라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흔한 생각이지만 흔한대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마지막 코스를 내려왔다. 밤낮 가리지 않고 영하인 이곳에서 가장 따듯한 건 뭘까. 실내, 이불 속, 패딩, 그런 것도 따듯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한건 마음이 아닐까. 3일동안 잘 안된다고 속상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것과 반대로 자신감 넘치는 사람도 있었다. 서로 다른 이들이 뭉쳐 있을 때, 마피아 게임 할 때처럼 서로 마주보고 앉아 웃고 떠들면, 그 곳에서 무한한 에너지가 나오는 게 아닌가. 슬펐던, 행복했던, 결론적으로는 거의 다 성공했다. Beginning turn까지 대부분 성공했고 못했다 해도 3일동안 한번도 안 웃은 사람은 없으니 그거면 어느정도 목표를 이루었다 할 수 있다. “이제 같이 웃자. 이제 같이 가자.” 내 뒤로 정인이형, 교장선생님까지는 모였는데 성환, 선엽이가 안 온 것이다. 중급 코스에 올라갔으리라고 거의 확신하고 상황을 지켜봤다. 그때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오늘 배운 건 1년동안 유지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마 1년 뒤에 이 곳에 다시 올 것 같다. 그때는 더 완전체인 모습으로 올 수 있다면 좋겠다. 3일동안 몇번의 눈물을 봤는지 모르겠다. ‘뜨거운 눈물’이라는 표현을 굉장히 많이 쓰는데,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로 뜨겁다는 말이 더 와닿는 것 같다. 잠시 뒤 성환이와 선엽이가 안전하게 내려왔다. 마음같아선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지만 속으로 칭찬하고는 말았다. 보드, 옷 등을 air gun으로 씻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직전 바깥을 한번 쳐다봤을 때 더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1년 뒤에 오겠지만 여러가지 아쉬움이 맴돌았다. 식당으로 간 우리는 간단하게 핫도그를 먹었다. 성환이 할머님께서 사주셔서 감사히 먹었다.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아쉬움이었지만 2~3분만에 외로움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에 핫도그 맛이 일그러질 때쯤 시연이누나가 말을 걸었다. “잘 탔어?” 나는 대답했다. “웅” 시연이누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의미심장한 감정이 조금 섞여있었지만 이 짧은 대화로 외롭다는 생각을 접었다. 시연이누나는 나에게 선생같은 존재이다. 님을 붙이면 진짜 학교 선생님같아서 어색하다. 선생이 딱 적당하다. 학교 선생님의 일은 학생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지식을 전파하는 것이 일이다. 내 마음이 폭주하던 시절에는 조금 고독하기도 보였던 소녀이지만, 그 소녀에게서 사랑을 받칠만한 그릇을 선물받았으니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것도 학교 선생님들과 그 전에 선배님들이 없었다면 이 그릇이 그릇이란 것도 모르고 그냥 넘겨버렸을 것이다. 사실 좀 미안하다. 시연이누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했던 잘못이, 이제 없는 사람들까지 전부 미안하다. 3주동안 잠깐 봤던 사람들까지도 다, 전부 다… 이런 후회해도 잘못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나”를 점점 다져가는 것이다. 그게 그들에게 사과하는 최소한의 방법이다. 내가 이제 바뀌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사과하는 방법이다. 물론 생각만 하는 것과 실천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지만 이제 실천하지 않는다면 난 내 미래를 밝다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정말 멍청했다. 모두들 나아가고 있을 때 나는 내 성벽을 쌓고 있었다. 그 벽은 아무 쓸모없는 멋부리기에 불과했고 기대를 품고 성벽의 문을 두드린 사람들에게 상처만을 남겨줬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그랬다. 근데 지나고 보니 내게 남은 건 상처준 이들의 돌변, 무시였다. 소중한 건 잃고 나서야 안다는데 역시 옛말 틀린거 하나 없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나도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오래 걸리겠지만, 그 기간동안 또 무슨 죄를 지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멈춰주지도 않는다. 시간에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끌려다니는 삶, 몇년동안 그런 삶만 살았는데 그것도 지겹다. 난 나아가야겠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병화를 창조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만약 여기까지 읽었다면 내가 했던 잘못중에 하나씩은 떠오를 것이다. 이 글은 뭐랄까, 반성문같은 거라고 받아들여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는 사랑하겠다.
시간이 많이 걸려도 나아가겠다. 이것으로 3일차를 마친다.
보드 수업 감상문(4)
감상평
평소에 고민도 많이 하고, 학교생활하면서 밥 먹을 때 나를 유심히 보다보면 멍때리는 모습을 많이 볼 것이다.
그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안 그럴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밥 먹을때 내가 말을 거는 사람은 귀하게 여겨도 될 정도라고 소신발언하겠다. 아무튼, 아무리 웃고 떠들어도 마음속 한켠에서는 계속 불안했다. 내가 했던 잘못이 그 당사자를 볼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떠올라 내 웃음을 지워버리곤 했다. “근데 이 얘기를 왜 하냐고?” 내가 느낀대로 말하는 중이다. 100% 진심이라고는 못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진솔하게 적는 중이다. 보드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새로운 길을 하나 만든 것 같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뿌듯하다. 기쁘다.”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보드가 더 좋은 이유는 바로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순간의 실수로 중심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보드를 타면 딴생각이 하나도 안난다. 그저 잘 탔으면 스스로에게 칭찬을 건네주고 못 탔으면 별 말 말고 다시 탄다. 보드가 특별한 이유는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하다. 보드도 이렇게 잘 배웠는데 말 한마디 고치는 걸 못할까. 가끔은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지금 그렇다. 당장 모든 걸 내려놓고 여행 비슷한 걸 하고 싶다.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웃으면 된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책도 더 열심히 읽으면서 농담할 땐 농담하고 진담할 땐 진담하면서 잘 지내면 된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주위의 모두들 덕분이다. 이번 학기부터는 고마움을 표현하고 착하게 살아야겠다. 요즘은 작은 일에 감동을 먹는 것 같다. 특강때부턴가 많이 바뀌었다. 이제 바라보는 것 만으로 끝내기엔 마음에 공간이 많다. 두꺼운 성벽을 허물고 그 곳을 노랫소리와 행복으로 매꾸겠다. 그렇게 바꾸기까지 짧게는 몇달, 길게는 몇년까지도 걸리겠지만 꾸준히 가꾸어 나가겠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두려워하지 않겠다. 두려워하고 피한 뒤에는 이별밖에는 없었다. 내게는 형이던, 누나던, 동생이던 다 소년, 소녀다. 이유는, 그 사람의 나이가 얼마나 됐던 내게는 상관없이 빛나는 청춘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하는 말들 모두 요즘 일덕분에 생각난 말들이다. “아쉬운 건 아쉬운대로” 이 생각대로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요즘은 소중한 걸 일찍이 깨닫고 있었는데 거의 다 잃어버렸으니 내가 “아쉽다.”라고 말하는 게 보통적으로 말하는 아쉬움과는 좀 많이 다르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 다시 겪고싶다. 그 시간들을 다시 보내고 싶다. 달을 봐도 해를 봐도 자기 직전에도 밥 먹을때도 그때밖에 생각나지를 않는데 뭘 덜 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더욱 더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그게 그나마 그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교생이 10명도 안되는데 그마저도 가깝지 못하니 얼마나 서러운가. 이제 그럴 수 없다. 반년정도 전까지만 해도 저학년 때가 그렇게 그리웠는데 지금은 하나도 그립지가 않다. 이 말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말이다. 이미 많은 걸 얻었다고 할 수 있지만, 다시는 외롭지 않게, 떳떳하게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노력, 굉장히 중요한 말이다. 바뀌도록 노력하는 것, 외롭지 않게 노력하는 것 전부 노력이다. 앞으로 열심히 살고 전에도 말했지만 이제 웃자. 상대가 누구든 웃자. 원수까지 사랑하도록 또 웃자.
7학년 김*연
2월 5일 횡성에 있는 웰리 힐리에 갔다.
몇 개월 전에 스키를 타본 경험이 있어서 쉬울 것 같다 생각했지만, 교장선생님께 보드 강의를 듣자마자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첫날은 약 2시간 밖에 못 탔는데, 초급도 못 가고 누워서 일어나는 법 이랑 보드를 옆으로 돌리는 것 등등을 배웠었다. 내가 일어나는 것 마저 제대로 못하는걸 알게 되니 딱히 구르거나 많이 넘어 지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잘하는게 당연하지 않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니깐 기분이 조금 안좋았다. 보드 강의가 끝난 후 저녁식사 시간에는 전체 상의하여 자유시간을 주셔 자유롭게 식사를 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자유롭게 먹는게 아니라 다 같이 먹으러 갔으면 더 맛있는걸 먹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숙소에 돌아와서 다들 체력이 많이 남는지 좀비 게임도 하고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마피아도 했다. 다들 평소 같이 놀 시간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새벽까지 재미있게 놀았다. 둘째 날이 되고 잠에서 깨어나니 전날 보드를 탄 후의 후유증으로 몸이 조금 아팠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밖은 어둡고 사람들은 자고있어서 핸드폰을 보고있는데 금방 선우가 일어나서 같이 떠들었다. 몇 분 후 다들 하나, 둘씩 일어나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러 부엌으로 향했다. 나는 교장선생님을 따라 죽을 구매해 먹었고, 대부분 사람들은 라면을 먹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라면이 식탁에 많이 있었다. 오전 시간에는 팬들럼을 배웠다. 강의를 받고 자유롭게 타는 동안 교장선생님께서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셔서 물 만난 물개처럼 잘 탔던 것 같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보드를 정리하면서 나중에 어머니와 같이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 6시즈음 리프팅을 타고 초급 코스로 올라가 보드를 탔다. 턴(Turn)을 배우는데 Edge가 잘 되지않아 계속 넘어졌다. 계속해도 안되니까 혼나기도 했는데 구르고, 넘어지고, 박고 정말 힘들어서 울음도 나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힘드니까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밤이 되니 온몸이 금방이라도 부서 질듯이 아파왔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아침이 되니까 고통이 조금 완화되어 보드를 탈수 있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마지막 날이라 짐까지 준비해서 가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고, 그냥 너무 힘들어서 조금 타다가 중간에 은성이랑 만나 푸드코트에서 쉬었다. 정말 순식간에 3일이 지났고, 정신을 차려보니 집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학생들과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더 많은 지식을 알 수도 있게 돼서 너무 너무 행복했던 것 같다.
정말로 이런 학교에서 이런 교육을 받고 자라게 해주신 어머님께 감사하게 생각한다.
9학년 조*수
2023년 2월 5일부터 7일, 2박 3일간 Snowboard를 배우러 Wellihilli park에 다녀왔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땐 무섭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전부터 보드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높은 곳이기에 자연스럽게 그리 느껴진 듯하다. 초등학생일 적 스키를 두어 번 타본 적이 있어 나름대로 익숙할 줄 알았으나 막상 가보니 아예 감을 싹 잃었다. 배웠던 스키 자체도 영 기억이 나지를 않고… 설 연휴가 있어 겨울방학특강을 한 후로 가정학습기간을 가지지 않은 채 몸을 많이 써야 하는 곳에 와 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또한 컸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 2시간 정도밖에 타지 않았는데도 상당히 힘들었다. 가장 기초인 넘어지는 법과 일어나는 법, 누운 상태로 몸 돌리기 등을 먼저 배웠는데 보드를 신은 채 다리를 들고 몸을 뒤집어야 해서 그게 가장 힘이 들지 않았나 싶다. 보드를 탈 때 필요한 기본적인 근육이 없어서 그런 것이기에 어쩔 수 없지마는. 때문에 평소에 근력운동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4시 30분부터 눈 정비가 있어 첫날 Board 수업은 여기까지 하고 들어갔다. 이정도 가지고 근육통이 올 줄은 몰랐는데, 다음날이 되니 몸이 꽤나 뻐근해져 있었다. 이날은 오전부터 나가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