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a조의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동옥: 윌리엄 1세(william 2 the conqueror)
아내 마틸드 판 플란데런
부 로베르 1세 (robert 1) (1035년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다녀오다 병사 함)
모 에를르바
아들 로베르 2세(robert2) 아들 리샤르(richard) 아들 윌리엄 2세(william2)
딸 아델라(adela) 아들 헨리 1세(henry 1)
1035년 로베르가 죽은 후 노르망디 공작이 되었다 1066년 도버 해협 (Strait of Dover)을 건너 잉글랜드 로 처들어가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잉글랜드 앙 헤럴드 2세에게 크게 승이 하였다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를 점령함에 따라 잉글랜드의 왕조는 노르만 앙조가 되었다
(1066년 10/14 영국 남동부 헤이스팅스에서 노르망디 공국의 정복왕 윌리엄 과 잉글랜드 국왕 해럴드의 군대가 싸운 전투)
다음은 원준이와 서윤이가 윌리엄 1세에 대하여 설명을 해준다고 합니다
원준; 저와 서윤이 누나는 Williom 1세에 대해서 발표 하겠습니다. 먼저 저는 Williom 1세가 어떻게 영국의 왕이 되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정복왕”으로 불리는 윌리엄 1세는 평생 프랑스인으로 살고 프랑스 땅에 묻혔으며, 영어는 한 마디도 말하지 못했다. 읽거나 쓸 줄도 몰랐다. 잉글랜드에 머물렀던 때도 생애를 통틀어 아주 일부일 뿐이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영국을 있게 한 역사인물을 꼽는다면, 그는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갑니다.
자 Britain 섬에 Anglo saxon족이 들어오고 Alffred the great가 Anglo saxon을 통합하였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 Denmark의 Canute가 Britain섬에 들어와 장악을 하고 Denmark와 Norway를 포함한 Scandinavia제국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고난후 따로따로 놀고 있는 각 국가들을 Edward 1세가 잉글랜드 왕조를 복원했습니다. 하지만 Denmark가 계속해서 쳐들어오고 위협을 받는 Edward는 사위인 Harold 2세와 함께 노르망디로 떠납니다. Normandy의 lord는 Williom 1세 인데 자신을 지켜주면 영국의 왕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Edward는 죽게 되죠. 이제 이후 Williom 1세와 Harlord 2세와의 전쟁인 Hastins전투가 열리고 결국 Williom이 이기게 되면서 Williom이 잉글랜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서윤: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헤럴드 2세는 전사하고 윌리엄 1세가 England의 국왕과 노르망디 공작 2가지 모두를 맏게 된다. 하지만 원래 잉글랜드에 살고 있었던 섹슨족이 반란을 일으켜요. 헤럴드 2세의 자식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여러 반란들을 막아내고 반란을 막고 통합을 위해 1081년 웨일즈와 1072년 스코틀랜드도 침략을 한다. 그리고 doomsday book 이라는 대대적인 조사를 실시해요. 소유하고 있는 땅과 인구수와 가축의 수 지금까지 걷지 않은 세금등을 기록한 것으로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과 같이 꼼꼼하게 조사를 하여 이렇게 이름이 붙어졌다고 한다.
정말 알찬 설명이 이었죠? 다음은 종윤이와 세찬이가 윌리엄 2세에 대하여 설명해준다고 합니다 들어 보시죠
종윤,세찬: 윌리엄 2세
William 1세의 아들인 William 2세의 기상천외한 돈 벌이에 대해 이야기를 할거에요. 정복 왕 William 1세는 viking의 후손으로 UK를 Conquest하여 King of conquest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Norman이자 Viking으로 잘 알려진 이들이 원래 정착한 지방은 Normandy로 불려 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Normandy의 Ruler(지배자)이며, Rollo (초대 노르망디공, 노르웨이 바이킹의 한 수령)의 먼 계승자(Heir)인 윌리엄 공작(Duke)이 1066년 잉글랜드로 바이킹의 힘이 쌘 대군을 몰고 정복전쟁을 일으켰고, 결국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정복왕인 윌리엄 1세가 됨으로써 잉글랜드와 노르망디를 자신의 지배하에 통합하게 됩니다. 1087년 윌리엄 1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들이 계승권을 둘러싸고 다투면서 결국 영국 왕이 노르망디의 지배자라는 등식은 깨어졌으며 윌리엄 1세의 전성기는 사라지기에 이릅니다. 한편 정복 왕 윌리엄 왕의 아들이었던 윌리엄 2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아버지인 윌리엄 국왕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떠한 일이라 하여도 마다않고 저질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윌리엄 2세는 노르망디 세력과 전쟁을 치루게 되었으나 엄청난 국고(National treasury, 나라의 재산을 보관하는 곳)를 탕진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기회를 틈타서 다른 형제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 윌리엄 2세는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한 재원(Resource of money) 마련을 위해서 기가 막힌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우선 부왕에게 2만 명의 병사를 징집할 수 있도록 허락 받은 다음 징집된 군대를 영불해협(English Channel,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에 집결시켰습니다. 그리고 승선 명령이 떨어지고, 군사들이 군함과 수송선에 오르기 시작하자 윌리엄 2세는 ‘5파운드만 지불하면 즉시 집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발표합니다. 이러한 발표를 들은 2만 명의 군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5파운드씩 지불하고 모두 돌아갔습니다. 윌리엄 2세는 별 어려운도 없이 10만 파운드나 되는 엄청난 거금을 순식간에 벌어들이게 됩니다. 이 윌리엄 2세의 이야기는 비슷한 인물이 있는데 바로 조선시대의 봉이 김선달과 비슷합니다. 오늘의 명언은 ‘돈버는 재주는 타고 나야된다‘입니다.
1087년 윌리엄 1세가 죽고 나서 England는 Wiliam 2세, Normandy는 Rovert를 준다. 윌리엄 2세의 정복 전쟁에는 잦은 원정으로 스코틀랜드(Scotland)의 왕 맬켐(Malcolm) 3세를 굴복시켜 처형시키고 스코틀랜드(Scotland)를 지배하에 두었다. 그의 형인 로베르(Rovert)의 소유였던 노르망디(Normandy) 지방을 뺏기 위해서 (1089~1096)을 벌여 로베르(Rovert)를 굴복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로베르(Rovert)는 쫓겨나 십자군 원정(Crusades)을 떠난다. 로베르(Rovert)는 1만 마르크를 받고 자신의 왕국을 윌리엄(Wiliam 2세)에게 위임하기로 한다. Wiliam 2세는 Wiliam Rufus, Wiliam the Red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얼굴이 붉었기 때문이다. 1100년 8월 2일에 윌리엄 2세(Wiliam 2세)는 브로켄허스트 근처에서 죽었다. 숲 속에서 귀족들과 헨리와 사냥을 하던 중에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가슴이 뚫려서 죽었다. 윌리엄 2세가 죽자 귀족들은 도망을 치고, 동생 헨리는 왕궁의 보물을 위해 윈체스터로 달려 갔다. 그러다가, 며칠 후, 헨리(Henry)는 런던(London)에서 대관식(Coronation)을 올려버렸다. 윌리엄 2세(Wiliam 2세)는 군사적인 측면이 뛰어났지만, 통치가 너무 거칠었고,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왕이었다. 잦은 원정에 많은 세금을 부과하였기 때문에, 증오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것으로 발표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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