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대도호부 관아
2018년 10월 19일
토요일 아침에 학교에서 인문학을 하기 위해 강릉 대도호부 관아로 출발 하였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에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주심포 양식과 다포양식이 내 기억 속에 남는다. 그 이유는 교장선생님께서 계속 설명을 해주시고, 더욱 이해하기 좋게 쉽게 설명해 주셔서 기억을 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대도호부 관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이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고려 태조 19년에 세워졌으며,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객사문만 남아있다. 객사문은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로, 고민왕이 쓴 “임영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대도호부 관아는 지방의 큰 고을을 다스리는 영조 때 출판한 임영자의 기록을 살펴보면 고려초기부터 1971년 1차, 1929년 2차 강릉보통공립고등학교를 세우기 전까지 천년 이상을 보존하였으며, 이 후 일제에 의하여 철거되었다고 한다. 이 후 강릉경찰서를 세웠으며, 1993년 강릉시청을 세우려고 하던 중 유물이 쏟아져 나와 발굴조사를 한 후 복원하게 되었다. 강릉 대도 호부 관아는 임영자의 기록에 의하면, 936년 강릉부 객사로 임영관을 창건하고 전대청 9칸, 중대청 12칸, 동대청 13칸, 낭청방 6칸, 서헌 6칸, 월랑 31칸, (행)랑, 삼문 6칸 등 총 83칸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까지의 건물지 유구가 양호한 상태로 다양하게 나오고 있어 고려시대 이후 관아성격의 건물지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줌과 동시에 강릉 임영관의 객사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객사문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강릉대도호부관아는 동헌권역, 칠사당권역, 임해관권역으로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동헌권역은 건물들이 모두 깨끗하고 단청의 색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동헌건물은 관람 및 체험시설이었고, 그 옆의 별당은 작은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새로 복원한 건물이어서 그런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이렇게 강릉 대도호부 관아에 대한 설명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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